카메라는 카메라니까
기술의 발전으로 휴대폰에 카메라가 달리기 시작했고 그 폰카의 위력은 실로 대단해졌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기술의 발전이 스마트폰에서만 진행되고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우리는 잊고 있습니다. 다양한 기기들이 꾸준히 발전하고 있고, 카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스마트폰 카메라라는 우물에 갇혀 지내는 동안 소위 말하는 똑딱이, 콤팩트 카메라들이 얼마나 대단해졌는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카메라도 충분하다고 말하는 분들의 기준은 언제나 카메라였습니다. 일반 디지털카메라 대비 이렇게나 따라잡았다로 말하는 부분이 많은데, 슬프게도 그 말은 일반 카메라의 우월함을 말해줄 뿐입니다. 스마트폰 카메라가 일반 카메라보다 나은 점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중 결정적 장점이 스마트폰에 속한 기계이라는 점이지요. 따라서 스마트폰에서 가능한 모든 것에 즉시 사진을 사용할 수 있고, 즉시 공유할 수 있습니다. 혹자는 작고 가벼워서 어디든 휴대할 수 있고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는데, 그건 콤팩트 카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콤팩트 카메라는 성능만 놓고 보면 훨씬 우월합니다.
다른 모든 카메라가 그러하듯, 콤팩트 카메라도 필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대략 7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전자 기술이 발전하면서 콤팩트 카메라(자동카메라)도 본격적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죠. 사실 작게 만드는 것은 그전부터 가능했습니다.
다만, 똑딱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 중 가장 큰 부분은 바로 '똑딱'이라는 부분입니다. 셔터만 누르면 사진이 찍힌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죠. 그래서 해외에서는 똑딱이를 P&S(Point&Shot) 카메라라고 부릅니다. 포인트를 잡고 셔터만 누르면 된다는 거죠. 셔터만 누르면 초점을 자동으로 맞춰주는 것은 물론, 조리개나 셔터스피드를 카메라가 알아서 정해주는 카메라는 전자기술이 발전된 후에나 가능했습니다.
캐논의 슈어샷은 그런 의미에서 꽤 기념비적인 카메라입니다. 근적외 발광 다이오드를 이용한 삼각 측량 방식을 적용한, 발매 당시 세계 최초의 렌즈 셔터 식 35mm 자동 초점 카메라였습니다. 이 카메라가 1979년 11월에 발매됐고 이후 많은 브랜드에서 자동초첨을 지원하는, 작은 카메라들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캐논도 슈어샷의 후속기를 꾸준히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필름 시대 콤팩트 카메라는 일본 버블경제 시대에 정점을 찍습니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써보고 싶어 하는 필름 똑딱이들은 그때 만들어졌습니다.
소위 말하는 럭셔리 똑딱이 3대장이 그 주인공인데, 콘탁스의 T시리즈, 미놀타의 TC-1, 리코의 GR 시리즈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고 있고, 써보고 싶어 하죠.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화질은 물론 개성 넘치는 결과물을 보여주고, 조리개 우선 모드나 노출 보정 같은 기능까지 지원하니 인기가 많은 것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필름 시대 똑딱이의 인기 이유는 극명했습니다. 렌즈 교환식 카메라보다 훨씬 작고 가벼운데도 불구하고 만족스러운 사진을 만들어줬기 때문입니다. 특정 모델은 유명 사진가가 애용하면서 더 유명세를 타기도 했죠. 예를 들어 리코 GR 시리즈는 모리야마 다이도가 사용하는 카메라로 알려지면서 더 많은 인기를 얻었고 디지털 GR 시대에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 럭셔리 똑딱이들의 시대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디지털 콤팩트 카메라들이 우르르 쏟아졌기 때문이죠. 디지털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최근까지 필름 똑딱이를 만든 브랜드는 후지필름 정도밖에 없습니다. 후지필름의 네츄라 시리즈, 클래시카 시리즈는 비교적 근래에 단종됐죠.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본격적인 디지털카메라 시대의 시작을 알린 건 콤팩트 카메라였습니다. 렌즈 교환식 디지털카메라의 대중화는 한참 후의 일이죠. 이때에는 필름과 디지털이 공존했었습니다. 당시 디지털 똑딱이의 성능이나 화질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이미지 센서 크기도 매우 작았고 지금과 같은 고감도 성능은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의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애용했죠.
초창기에는 플로피디스크에 저장하는 방식으로 카메라가 나오기도 했는데 그런 제품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지는 않았죠.(크기도 콤팩트와 거리가 멀었습니다.) 저장매체가 좀 더 발전하면서 디지털 콤팩트 카메라도 본격적인 대중화에 접어들었다고 봐도 됩니다.
90년대 중후반부터 대중적인 디지털 콤팩트 카메라들이 대거 선보이기 시작했고, 차츰 필름 카메라의 자리를 대신해나갔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집집마다 한 대씩 들일 정도로 대중화됐죠.
사실 필름 시대에는 카메라 한 대를 들인다는 게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카메라의 가격이 비싸기도 했고, 필름을 현상소에 맡겨야 하는 등 번거롭기도 했습니다. 추가로 비용이 발생하기까지 했죠. 그러나 디지털 콤팩트 카메라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언제 어디에나 들고 다닐 수 있었고, 손쉽게 PC로 사진을 옮길 수 있었습니다.
디지털카메라 기술이 발전하면서 콤팩트 카메라도 많은 발전을 이뤘습니다. 필름 시대 고급 똑딱이들을 생각하면 초창기 디지털 똑딱이들은 쓸만하다고 말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릅니다.
우선 디지털카메라의 심장이라고 볼 수 있는 센서가 월등히 좋아졌습니다. 시그마에서 APS-C 사이즈 센서가 탑재된 DP1을 발표하면서 콤팩트 카메라의 센서 크기 경쟁이 이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후지 필름이 가세해 X100시리즈로 대형 센서 탑재 콤팩트 카메라의 대중화를 선도했고요.
스마트폰 때문에 콤팩트 카메라 대부분이 사라졌지만 간편하면서도 더 나은 이미지를 만들어줄 수 있는 고급 콤팩트 카메라는 지금까지도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소니에서는 풀프레임 센서가 탑재된 RX1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죠. 손바닥만 한 카메라 안에 최고급 DSLR의 이미지 센서가 탑재된 겁니다. 고급 카메라의 대명사 라이카도 이 대열에 합류합니다. 기존에는 파나소닉의 콤팩트 카메라를 껍데기만 바꿔서 선보였지만 최근에는 풀프레임 센서를 장착한 Leica Q로 시장에 큰 충격을 던져주기도 했죠.
전체 디지털카메라 사용자 중 10% 에 못 미치는 정도가 콤팩트 카메라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DSLR이나 미러리스에 비하면 적다고 볼 수 있지만 전체 수로 보면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그런데 왜 똑딱이를 사용할까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우선, 사진이 잘 나오기 때문입니다. 굳이 렌즈 교환식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아도 화질이 좋고 배경을 흐릴 수 있는 사진을 찍을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일반적으로 고급 디지털 콤팩트 카메라에는 단렌즈가 탑재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렌즈는 특정 화각 하나밖에 사용하지 못해 편의성이 조금 떨어지지만 줌렌즈에 비해 화질이 좋습니다. 또한 센서 크기가 큰 경우, 고감도 화질도 준수하고 배경 흐림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사진만 잘 나온다고 콤팩트 카메라를 선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름처럼 작고 가볍기 때문에 언제 어디든 부담 없이 소지할 수 있죠. 그래서 일상을 가볍게 담아내기 좋습니다. 찍히는 대상도 카메라가 작아 부담을 느끼지 않죠. 스냅사진을 찍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사진은 카메라로 찍어야지'라는 말이 꼰대스럽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카메라는 현대적인 카메라의 등장 이후로 150년 이상 사진을 촬영하는데 최적화되어왔습니다. 셔터의 위치, 조리개 링이나 설정 휠의 위치, 조작 다이얼이나 그립의 크기와 위치 등등 디테일한 부분까지 꾸준히 개선되어 왔죠. 사진을 촬영할 때 손가락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그리고 직관적으로 버튼이나 다이얼을 배치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 고민해왔습니다.
스마트폰은 최대한 단순한 디자인을 지향하는 탓에 외부에 버튼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다양한 설정을 하기 위해서는 액정을 터치해서 메뉴를 확인하는 방법을 써야 하는데, 그런 인터페이스가 사진을 촬영하는데 그다지 효율적이거나 직관적이지는 않습니다. 물론, 지금의 카메라도 스마트폰 기술에 빚을 진 부분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액정을 터치해 초점을 맞추는 것이죠. 어쨌거나 카메라는 오랜 시간 사진을 찍기 위한 기계로 발전해왔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이 아닌 콤팩트 카메라를 선택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으로만 사진을 찍다가 카메라를 손에 쥐는 순간 알게 됩니다. 왜 사진을 카메라로 찍어야 하는지. 그리고 결과물을 보면 한 번 더 알게 됩니다. 이래서 카메라를 쓰는구나 하고.
예컨대 리코의 GR 시리즈는 필름 시대 모델과 디지털 시대 모델의 외형 디자인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해당 카메라 시리즈를 계속 사용하는 유저를 배려한 결과기도 하고, 실제로 사용하면서 익숙해지면 마치 카메라가 내 몸의 일부인 것처럼 편리하고 편안하죠. 왜 그렇게 오랜 시간 많은 유저들이 GR 시리즈를 추앙하는지는 써봐야 아는 겁니다.
카메라의 우리말은 사진기입니다. 사진을 만드는 기계라는 거죠. 모든 기계는 사용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에 최적화되어있습니다. 다양한 목적 속에 사진을 찍는 기능이 담긴 스마트폰도 좋지만, 사진을 찍고 싶다면 사진 하나만을 위해 최적화된 카메라를 선택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입니다.
다음 회차에는 본격적으로 브랜드별 디지털 콤팩트 카메라를 간략히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