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직원들이 만드는 최고의 회사>를 읽고
위계 조직(Rank-driven organization)은 의사결정 권한이 리더에게 집중된다. 직원은 의견을 내고 윗사람이 그 의견을 시행할지 말지 결정한다. 덜 권위적인 사람은 아랫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잡스처럼 뛰어난 리더는 자신이 그린 비전을 향해 전 조직이 달려가게 만들지만 기본적으로 위에서 결정권을 가지는 구조다. 애플과 전통적 미국의 기업, 삼성을 비롯한 우리나라 대부분이 선택한 구조다.
역할 조직(Role-driven organization)은 의사결정 권한이 여러 구성원에게 분산된다. 위아래를 구분 짓고 위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역할에 따라 책임을 지고 의사결정을 하며 업무를 수행한다. CEO는 회사의 비전을 제시하고 총괄하는 역할, 엔지니어는 코드 작성 및 시스템 설계, 프로덕트 매니저는 프로덕트 개선을 위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식이다. 구글, 페이스북 같은 최근에 생긴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선택한 방식이다.
정답은 '우열을 가릴 수 없다'이다. 회사가 속한 산업군의 특성, 시장 상황, 회사가 취하고 있는 전략에 따라 위계 조직이 맞을 수도 있고 역할 조직이 맞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제조업 중심의 패스트 팔로워 전략을 쓰는 회사에서는 '까라면 까'가 작동하는 위계 조직이 나을 수 있다. 어차피 1등은 못하니까 혁신적인 제품이 아니라 기능이 개선된 제품으로 2등, 3등을 차지한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국내 많은 대기업들이 이 전략으로 지금까지 성공해 왔다.
반대로 이제 막 시작하는 스타트업, 혁신기업들에게는 각 개인들의 역량이 최대한으로 발휘되는 역할 조직이 더 맞다. 일단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스타트업에게 일일이 의사결정을 받는 구조는 너무 느리다. (스타트업은 '달리는 기차를 멈추고 바퀴를 갈아 끼우는 것이 아니라 달리면서 동시에 갈아 끼워야 한다'는 비유를 본 적이 있다)
또한 스타트업은 새로운 실험을 통해 가설을 검증해 나가야 하는데 상대적으로 위계 조직에서는 새로운 실험을 해볼 수 있는 여지가 적다. 세상에 없던 제품,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스타트업에게는 역할 조직이 더 적합하다.
위계 조직 구조를 통한 성공 공식은 이제 한계에 달했다고 생각한다. 일단 과거와 상황이 너무 달라졌다. 국내 대기업들은 더 이상 추격자가 아니다.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들이 많아졌다. 이제는 대기업들도 세상에 없던 제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세상의 변화 속도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빠르다. VUCA라고 하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다.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중앙집권이 아닌 분산형 구조가 유리하다.
산업의 구조 또한 IT, 테크 기업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최근에 카카오 김범수 회장이 재벌 대기업 회장을 제치고 대한민국 최고 부자 1위에 등극했던 적이 있다. 2021년에 부가 어디서 창출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IT, 테크 산업에서는 개별 전문가의 역할이 크다.
회사에 입사하는 직원들의 성향과 추구하는 가치도 달라졌다. 일단 과거처럼 뭘 모르는 신입 취급하기에는 새로 입사하는 직원들이 굉장히 똑똑해졌다. (요즘 회사에 들어오는 친구들 스펙을 보면 진짜 후덜덜하다) 이제 회사에 유입되는 직원들은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결정하고 싶어 한다. 이들이 만족스럽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은 스스로에게 충분한 권한이 주어져서 자기 통제감을 느낄 수 있는 회사다.
기존에 위계 조직이었던 회사들은 역할 조직의 요소를 가미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는 매니저 중심이 아닌 플레이어 중심의 회사가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회사 구성원들을 대할 때 위아래의 개념이 아닌 수평의 개념으로, CEO나 이제 막 회사를 들어온 신입사원이나 평등한 동료이나 역할만 다른 것으로 조직 내 기본 가정이 바뀌어야 한다. 최근에 많은 기업들이 겪고 있는 조직문화상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역할 조직의 아이디어가 분명히 도움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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