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의 신이 사랑한 향기
하데스는 저승의 신이다.
죽음을 관장하는 어둡고 무거운 권능 속에서,
그는 늘 침묵을 지키는 존재였다.
올림포스의 신들이 태양 아래 웃고 떠들 때에도,
하데스는 지하세계에서 질서를 다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도, 한 번은 사랑에 빠졌다.
그 대상은 ‘멘테(Menthe)’라 불리는 산과 계곡의 님프였다.
멘테는 생명력이 가득한 존재였다.
바람처럼 자유롭고, 민트처럼 청량했다.
그녀의 존재는 하데스에게는 일종의 빛과도 같았고,
둘은 은밀하게 사랑을 나누었다.
그러나 하데스의 아내, 페르세포네는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여신의 질투는 무섭도록 조용했고, 단호했다.
그녀는 멘테를 땅에 짓밟아 풀로 만들어버렸다.
그렇게 멘테는 육체를 잃었지만, 향기를 남겼다.
그 향기는 땅 위로 올라와 사람들의 기억에 스며들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민트’라 불렀고,
멘테의 이름은 그렇게 식물의 이름이 되었다.
그녀의 향기는 시원했지만 어딘지 슬펐고,
또렷했지만 금방 흩어졌다.
민트는 그렇게 슬픔과 사랑이 뒤엉킨 풀로,
찻잔 속에 피어나게 되었다.
민트의 기운 — 서양의 청량, 동양의 기순환
서양에서는 민트를 소화 보조제나 구강 청결용으로 주로 사용해왔다.
민트 사탕, 민트 오일, 민트 차… 청량함은 언제나 그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동양에서의 해석은 조금 더 깊고, 다르다.
『동의보감』에서는 민트의 대응 약초로 '박하(薄荷)'를 소개한다.
박하는 매운맛과 서늘한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폐경과 간경으로 들어가 풍열을 풀고,
머리를 맑게 하며, 기운의 흐름을 뚫어주는 역할을 한다.
즉, 동양에서는 민트를 단순히 입 안을 상쾌하게 하는 허브가 아닌,
몸 안의 막힌 기운을 풀어주는 약재로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멘테라는 님프의 신화적 서사,
억눌림과 죽음 속에서도 향기로 피어난 존재와도 닮아 있다.
민트는 감정의 응어리를 풀어주고, 눌려있던 기운을 올려준다.
상쾌함은 단지 향의 문제가 아니라, 기운을 순환시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찻잔 속 신화를 마시는 방법
입하 즈음, 여름의 문턱을 지나며 사람의 기운은 위로 솟고 몸은 나른해진다.
그럴 때 마시는 민트 블렌딩은 단순한 허브차 이상의 역할을 한다.
민트 + 진피(귤껍질) + 감초 :
민트는 기운을 위로 끌어올리고,
진피는 위장을 따뜻하게 풀어주며,
감초는 두 재료의 극단적인 성질을 부드럽게 조율해준다.
이 조합은 마치 신들의 삼각관계처럼,
각자의 역할이 명확하고 미묘하게 균형을 이룬다.
민트는 멘테의 자유로운 영혼,
진피는 땅속의 따뜻함,
감초는 이 둘의 관계를 조화시키는 울림과 같다.
>> 추천 음용 시간: 오후 2~4시경, 기운이 가라앉고 집중력이 흐려질 무렵
>>맛의 톤: 첫 맛은 시원하고 깔끔하며, 끝 맛은 부드러운 단맛이 여운처럼 남는다
찻잔에 담긴 이야기의 여운
민트는 단지 여름날을 시원하게 해주는 허브가 아니다.
그것은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사랑의 이름이며,
침묵 속에서도 존재를 남기는 방식이다.
하데스는 멘테를 지키지 못했지만, 그녀의 향기는 인간의 기억 속에 살아남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향기를 오늘 찻잔에 담아 마신다.
삶이 무겁고 마음이 막힌 날, 민트 한 잎을 물에 띄워보자.
사라진 것들의 향기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다음 편에서는 사랑과 기억의 허브, 아프로디테의 로즈마리를 만나보자.
작가의 노트
※ 민트(Mint)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 설화에 등장하는 님프 ‘멘테(Menthe)’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데스(Hades)의 연인이었던 멘테는, 그의 아내 페르세포네(Persephone)의 질투로 인해 땅에 짓밟혀 풀로 변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이야기는 고전 신화 전문 아카이브 Theoi Project (theoi.com)에서도 언급되어 있으며, 오늘날까지 민트라는 이름으로 그 향기가 남아 있습니다.
오늘도 고맙습니다.
낭만차장 모모
차로 계절을 이야기하고,
약선으로 이야기를 차려내는 티 스토리텔러
이 글은 ‘차창 밖 계절을 함께 여행하는 이야기꾼’
낭만차장 모모의 브런치 시리즈 [신들의 찻잔]의 일부입니다.
허브와 신화, 계절과 기운, 그리고 차 한 잔의 감정을 글로 담아
찻잔 속 이야기와 마주하는 시간.
[계절을 마시다], [신들의 찻잔]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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