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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H Jul 20. 2019

Fall in love with, '채소랑'

NO.4 - 초록초록 새록새록, 느슨하게 채식하는 방법[씨젬므쥬르편]

에디터 & 포토그래퍼 - 수경


사람들과 쉽게 소통하기 위해 나를 페스코테리언 (육류를 먹지 않되, 해산물과 달걀 또는 유제품을 허용하는 채식주의자)이라고 소개하지만, 초보 채식인인 나는 이 레이블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실제 내가 하고 있는 채식은 훨씬  뒤엉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페스코테리언은 유제품이 허용되지만, 나는 우유를 아몬드 우유로 대처하지 오래다. 약간의 고소한 맛이 퍼지는 아몬드 우유에 중독이 되어 일주일에 2~3통은 가뿐히 마신다. 또한, 스테이크나 삼겹살 등의 육류 '덩어리'는 피하되, 육수는 관대한 마음(?)으로 가끔 나 자신에게 허락하곤 한다. 처음부터 그럴 계획이었다기보다는 어쩌다 보니 나 자신이 이렇게 먹고 있더라.


채식을 시작한 지 2개월쯤 후, 간단히 점심을 먹으러 푸드코트에 갔는데 메뉴판을 훑어보자마자 “냉면”이란 두 글자에 설명하기 어려운 강한 유혹을 느낀 적이 있었다. 1분 전에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갑자기 살얼음을 띄운 시원한 국물, 쫄깃쫄깃하며 이빨로 끊으래야 끊을 수 없는 면발, 그리고 아껴 두었다가 피날레로 사각사각 베어 먹는 달콤한 배 한 조각 생각에 나도 모르게 심장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그래! 오늘은 냉면이야!”라고 외치는 기쁨도 잠시, 메뉴판에 “물냉면 (육수 국내산 한우)”라고 적혀있는 것이 아닌가. 앗, 이런 것은 굳이 알려줄 필요 없는데! 


어려서부터 배만 고프면 사자로 돌변한다고 투덜거리던 엄마의 말처럼, 나는 냉면 한 사발을 노리는 도시 사자로 변해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이성이 찾아와 '엄연히 말하자면 이건 채식이 아니야'라고 말하기 전에 빠른 액션을 취해야 했다. 숨도 쉬지 않고 카드를 꺼냈고, 눈을 떠보니 어느새 내 손에는 진동벨과 영수증이 쥐여 있었다. '육수니까 괜찮아'라고 짧게 밀려오는 나 자신과의 어색함을 잠재웠다. 자아성찰은 나중에 해도 되니까, 그 순간은 누가 뭐래도 냉면이 먼저였다.


반가운 놋 그릇에 시원한 냉면이 나왔을 때의 나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가관이었다. 한편으로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아니, 어떻게 이런 맛이 날 수 있지?”라며 미식가처럼 감탄하며 먹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영락없이 며칠 굶은 사람처럼 정신없이 면발을 흡입했다. 최소한의 책임감을 가지고 “고명으로 나온 소고기는 먹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며 한쪽으로 치워 놨지만, 육수 한 모금을 들이마신 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저절로 그릇 구석에 있는 소고기를 입안에 넣었다. 담백했다. 흠…이거 하나 더 안 주나?


이제 와서 이런 소리를 하면 믿지 않겠지만, 채식은 정말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어렵지 않다. 다만, 나는 채식을 시작한 후 첫 3개월의 “조정기간”을 거칠 때가 유난히 고비였다. 의지는 있되 몸의 유산균이 아직 변하지 않았을 때, 동기는 있되 주변 정보나 노하우가 없을 때의  시기를 다른 사람들도 어려워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결심과 타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안 그래도 바쁜 일상에 채식을 시작해보자 한다면 이런 타협은 많이 하면 할수록 좋다고 말하고 싶다. 채식은 힘든 것을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닌 즐거움을 누리는 생활 패턴인 만큼육식 지향의 현대사회를 살고 있다면 목표를 간직하되 최대한 유동적이고 부드러운 태도를 가지자이 글의 제목처럼 느슨하게, 그리고 유쾌하게 채식하자.


하지만 이런 날들이 계속 지속되다 보면, 디톡스를 하듯 나 자신을 리셋하고 싶은 날들도 온다. 집밥 말고 기분전환도 할 겸 온전히 나를 위해, 내가 먹고 싶은 재료로 만든 음식들을 먹을 수 있는 곳을 찾게 된다. 정성스럽게 마련된 음식을 편안하고 천천히 즐길 수 있는 곳. 그럴 때는 평소에 좋아하는 홍대의 햄버거도, 이태원의 그린 카레도 마다하고 잠실 송리단길에 있는 한 프랑스 가정식을 먹을 수 있는 곳, 씨젬므쥬르 (Sixeme Jour)로 향한다.


잠실 송리단길에 어여쁜 케이크 부티크처럼 보이는 씨젬므쥬르는 깔끔하고 세련됐지만 동시에 따뜻하고 온화한 느낌이 풍긴다.




식당 밖에 있는 의자 위에, 르 꼬르동 블루 출신 셰프님의 소개글이 액자에 예쁘게 배치되어 있다. 

내가 여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셰프님 때문인데, 요리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과 신념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단돈 만 원으로 파스타를 시키면 사이드 메뉴와 디저트가 무료로 나와 프랑스 가정식 3코스 요리를 즐길 수 있다는 컨셉만 봐도 그렇다. 분명 씨젬므쥬르는 파인 다이닝이 아닌 캐주얼 레스토랑이지만 음식을 먹어보면 손님은 그저  내는 사람이 아닌 왠지 모르게 대접받는 기분이 든다.



식당 내에는 따로 “채식” 또는 “비건”이라는 레이블을 찾을 수 없었던 것 같고 씨젬므쥬르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식물성 (Plant-based)이라고 쓰여 있다.  메뉴를 보면 “토마토 펜네 파스타”에 해산물과 치즈 추가 옵션이 있으니 비건 레스토랑은 아니지만 그 외에 메뉴들은 모두 식물성이다.



씨젬므쥬르의 시그니쳐 메뉴는 시금치 페스토 파스타인데, Elle Gourmet나 아레나 등의 유명 잡지들이 씨젬므쥬르를 취재하러 올 때 꼭 찍어가는 만큼 인기가 많은 메뉴이다. 페스토 소스와 버무려진 파스타 쫀득쫀득한 식감과 함께, 자극적이지 않고 달콤한 맛을 입안에 퍼지게 하였다. '노미트볼과 신선한 야채 보울(NO-MEAT Bowl)' 또한 인기 메뉴이며, 서비스로 나오는 웨지 포테이토와 식물성 마요네즈마저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모든 메뉴가 맛있으니 씨젬므쥬르의 인스타 계정을 참고해서 메뉴 사진도 보고 가길 추천한다.

(개인적으로는 페스토 파스타와 No Meat Bowl의 믹스 앤 매치를 추천해본다.)




무료로 나오는 디저트는 바나나이다. 바나나가 뭐 대단한 디저트겠냐고 하지만, 바나나가 살짝 탄 듯한 설탕시럽으로 둘러싸여 겉은 바삭하되 안은 부드럽지 않고, 담백한 견과류 가루까지 더해져 소소하지만 멋스럽게 식사를 마칠 수 있다. 다만접시가 매우 뜨거우니 조심하시기 바란다.




결심을 하면, 타협할 순간들이 법칙처럼 찾아온다. 채식은 내가 선택한 즐거움을 누리는 여정이니 굳이 ‘힘들지만 목표를 달성하자라는 태도보다는 ‘부드럽고 유동성 있게 나만의 즐거움에 가까워 지자’라는 마음으로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게다가 내가 흔들림이 잦아졌을 때 찾아가는 씨젬므쥬르처럼 당신만의 편안한 공간을 마련해 둔다면 더욱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Instagram: @sixieme_jour

위치: 서울 송파구 백제고분로 41길 25

전화: 070-4179-4142

운영시간: 월~토 11:00~15:30 (라스트 오더 15:00), 17:00-21:30 (라스트 오더 21:00), 일요일 휴무




※ 위의 콘텐츠에 대한 모든 저작권은 '매거진 랑', 그리고 산하 에디터에게 전적으로 있음을 안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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