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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H Aug 01. 2019

아침에는 '빵이랑'!

NO.4 - 즐거운 퇴근길 메이트를 만날 수 있는 곳, '폴앤폴리나'

에디터 - 리미

그림 - 융두


프로 통학러, 지금은 프로 통근러


내가 감히 프로라는 단어를 앞에 붙일 수 있는 것은, 근 10년간 서울과 경기를 오가는 빨간 버스에 몸을 싣고 짧게는 왕복 2시간, 길게는 4시간 거리를 부지런히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비가 올 때면 어김없이 꽉 막히는 올림픽 대로를 욕하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도 환승하는데 족히 10분은 걸리는 것 같은 공항철도를 원망하고, 목적지까지 오는데 30분이나(!)걸렸다는 서울 사는 친구를 부러워한다. 거의 매일같이 이 패턴을 반복하며 독립을 다짐만하고 10년동안 못하고 있다.


실행력 부족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사실 나는 어디론가 가고 있는 행위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프로 통근러가 될 자질을 갖추고 태어난 셈이다.

어릴 때부터 여행지에 도착하는 것 보다, 여행지로 가는 차편에서 느끼는 설렘이 더 좋았다. 차를 타고 공항에 가고, 기차를 타고, 자전거를 타고, 아니면 걷는 것도 좋았다. 방법이 어떤 것이든 가는 동안에는 무척 신이 난다. 오히려 도착하면 괜한 실망감에 젖기도 하는 이상한 아이였는데 지금은 그대로 이상한 어른으로 컸다.

그래서 출근길에 백만번쯤 서울로의 독립을 다짐하지만, 퇴근길 버스에서 한강을 건널 때 보는 석양, 쉴 새 없이 올라가는 새로운 건물들, 동네마다 미묘하게 다른 풍경과 매일 다른 하늘을 보는게 나는 좋다. TV를 보고 있는것 처럼 재미있다. (아, 실제로 경기 버스에서 볼 수 있는 G TV도 가끔 웃긴데, 빨간버스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경기도의 딸이라고 불리는 래퍼 키썸이 게임 프로그램에 나와 청기백기 하던 시절을 한 번쯤 봤으리라 예상한다.) 가랑비라도 온 날은 차에서 내리면 풀냄새가 잔뜩 나고 녹음이 짙어 져서 도심에서 멀리 떨어졌음을 느끼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10년간 이 짓을 반복하면서 통근을 미화시켰지만 도무지 적응이 안되는 점이 있다. 배고픔과 허기이다. 책상을 박차고 나와 내 방까지 당도하는데 대략 한 시간 반을 예상해보자. 6시 30분쯤 나오면 8시에 집에 도착하는 것이다! 저녁을 먹는 황금 시간대가 있다면 저 시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배가 심하게 고프다. 그래서 대중교통에 오르기 전 요깃거리를 찾아 헤맨다. 두유를 마시거나 초콜렛을 사 먹기도 하는데 점심을 특히 부실하게 먹은 날은 빵집에 간다. 샌드위치는 과하고, 단팥빵은 달고 휘낭시에는 간에 기별도 안 간다.

그럴 때 먹는 빵이 치아바타이다. 여러 빵을 시도해보며 최적의 퇴근길 메이트를 찾았다. 씹기가 바게트만큼 힘들지 않고 속이 들어있는 것보다 소화도 잘되고 담백해서 부담스럽지 않다. 원래 치아바타는 인공첨가물을 사용하지 않고 통밀 가루, 맥아, 물, 소금 등의 천연재료만을 사용해 만든다고 하니 소화에 부담이 적다는 것이 이해가 된다.



비슷한 종류로는 스콘이나 브레첼이 있는데, 이 맛있는 퇴근길 메이트를 한꺼번에 살 수 있는 곳이 ‘폴앤폴리나’이다. 연희동이 본점으로 여의도와 광화문에는 직영 지점이 있다. 세 곳 모두 밖에서 보면 앉을 공간이 있을 것 같지만, 들어가보면 손님이 할 수 있는 것은 유리 너머에 있는 빵을 고르고, 포장되는 동안 제빵사들이 일하는 모습을 실컷 보는 것이다. 빵이 안쪽에 진열되어 있고 운영시간이 길지 않다는 점 때문에 유럽의 베이커리를 연상시킨다.

11시나 12시에 열고 6시나 7시에 닫아서, 성실한 노예인 나는 퇴근길 빵을 사고 싶다면 서둘러야 한다. 담백한 밀가루의 곡물 맛과 올리브 향이 적절하게 어울리는 치아바타를 먹고 싶다면 책상을 박차고 나올 수 밖에. 브레첼은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스틱은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고 버터브레첼은 주문 즉시 버터 슬라이스를 넣어준다. 눅눅해지지 않게 주문과 동시에 버터를 넣어줘서 쫄깃한 식감, 소금의 간, 버터의 풍미를 놓치지 않고 느낄 수 있다. 이외에도 깜빠뉴, 바게트, 크루아상, 스콘 등 기본에 충실한 식사빵을 만날 수 있어 다양한 맛으로 허기를 달랠 수 있다.


꼭 이런 통근이 아니더라도, 모두가 하는 일상의 여행에는 고단함과 허기가 무한히 반복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열을 내봤자 혁혁하게 달라지는 변화가 있지 않다는 것도 너무 잘 안다. 그러니 언제 찾아올지 모를 로또의 기적을 기다리는 동안 배고픈 채로 다니지 말고 잘 챙겨 먹고,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보자. 지하철에 잘생긴 사람이 타지는 않았는지, 지나치는 골목길 분식집에 신상 닭꼬치는 나왔는지, 길가에는 무슨 꽃이 피었는지 살펴 보자. 매일 같지만 또 매일이 다르기도 하니까. 꼭 비행기 타고 가는 여정만이 여행이 아니니 든든하게 먹고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기다려보자. 새로운 여행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 위의 콘텐츠에 대한 모든 저작권은 '매거진 랑', 그리고 산하 에디터에게 전적으로 있음을 안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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