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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승주 May 09. 2021

의사의 권위는 그곳에서 출발한다

권위

권위도 필요한 순간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권위라고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지만, 권위도 분명 우리 삶의 중요한 요소  하나다. 문제는 권위를 형성하는 방식이다. 뛰어난 능력이나 효율적인 일처리뿐만 아니라 훌륭한 인품과 배려하는 자세 또한 리더에게 요구되는 자질이지만 이를 골고루 갖춘 사람은 드물다. 심지어는 별달리 걸출한 능력도 없이 강압적인 태도만으로 권위를 형성하려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다 보니 언젠가부터 권위라는 단어에는 부정적인 느낌만 남게 되었다.


의사들에게도 권위가 필요하다. 의사는 본질적으로 환자의 삶에 개입을 하거나 환자의 몸에 침습적인 처치를 가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존경은 커녕 별로 신뢰조차 가지 않는 사람이 나서서 “약을 챙겨먹으세요”, “운동을 하세요”, “제가 배를 갈라 상태를 보겠습니다”라는 말을 던지면 어떤 환자가 따르겠는가. 하지만 다행히 의사들에게는 권위를 부여해주는 대표적인 도구가 있다. 바로 가운이다. 반듯하고 새하얀 가운을 보면 어딘가 모르게 믿음이 가고 많이 배운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의과대학 학생인 나는 의학과 3학년부터 병원 실습을 시작하면서 ‘선생님’이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책상머리 앞에 앉아 공부만 하던 학생에서 가운을 입고난 후부터는 졸지에 선생님이라니. 실습 초반에는 갑작스럽게 격상된 나의 호칭이 여간 낯간지러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 학생들도 점차 그러한 호칭에 익숙해져 서로를 선생님이라 칭하기도 하고, 평소에는 내성적이라 낯선 사람들과는 이야기도 잘 하지 않던 친구들도 환자를 만나러 갈 때 하얀 가운을 입고 있으면 괜스레 묘한 자신감마저 생기기도 한다.


한편 가운을 벗어던진 의사들도 있다. 감사하게도 나의 모교에는 다른 학교들에 비해 다양한 의학 분야를 접할 기회가 더 많다. 그중 하나가 의료관리학교실에서 교육하는 ‘지역사회의학’이라는 과목이다. ‘질병은 개인의 특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이 서로 상호작용하여 발생한다’는 전제하에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에 대해 다루는 과목이다.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고, 운동할 시설은 도통 찾아볼 수가 없으며, 낮은 소득으로 인해 적은 돈으로도 높은 열량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패스트푸드와 인스턴트 식품으로 삶을 연명하고 있는 사람이 비만과 대사증후군으로 내원하였다고 하자. 그러한 환자에게 적절한 약을 처방한 후 “건강한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셔야 합니다”라고 교육하였다고 하면, 과연 의사는 본인의 본분을 다했다고 볼 수 있을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러한 의문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왜 기껏 환자를 치료하고서는 그가 병을 얻었던 환경으로 돌려보내는가’1


지역사회의학 실습을 하며 강북구 ‘건강의 집’이라고 하는 곳으로 견학을 간 적이 있었다. 건강의 집은 방문 진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원이다. 옛 용어로는 왕진이라 불리는 방문진료는 의사가 환자의 집에 직접 방문하여 환자를 진료하는 것을 의미한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 고령의 환자, 그리고 임종이 임박한 환자들은 병원에 내원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러한 환자들은 지속적인 돌봄이 필요한데 그들에게 직접 이동하여 꾸준히 병원에 내원하기를 기대하는 건 지나친 욕심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 중에는 질병 그 자체의 특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요인들도 있다. 환자의 주거 환경이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낙상의 위험은 없는지, 간병은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영양은 균형적으로 잘 제공되고 있는지, 그리고 병든 삶이지만 그래도 본인이 원하는 형태의 삶을 잘 영위하고 있는지. 이는 진료실에서 단순히 몇 마디 질문을 던진다고 하여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특히 현행 의료 제도하에서 행해지는 3분 남짓의 외래 진료를 통해서는 도무지 이 모든 것들을 고려할 수가 없다. 그렇다 보니 결국 그러한 환자들을 돌볼 사람들이 부족해지고, 결국 환자들은 일정한 순간이 되면 모두 요양병원의 다인실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 의식하에 우리나라는 2019년 1차, 2021년 2차 방문진료 시범수가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과거에는 법적으로 금지되었던 방문 진료를 허용하여 의사가 직접 아픈 환자를 만나러 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시범사업에도 여러 가지 문제점이 많지만, 그럼에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러한 제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한 의사 두 명이 우여곡절 끝에 개원한 것이 바로 ‘건강의 집’이다. ‘건강의 집’의 진료 풍경은 다른 곳과는 사뭇 달랐다. 우선 의사선생님들은 가운을 입지 않는다. 사무실에서 환자의 차트를 확인한 후, 청진기를 비롯하여 필요한 용품들을 가득 담은 배낭을 메고 환자의 집으로 찾아간다. 집에 도착하면 환자와 인사를 하고 간단한 안부를 물은 뒤 평범한 진료를 시작한다. 혈압을 재고, 복용 중인 약을 확인하고, 부작용이 있진 않은지, 효과는 좋은지 꼼꼼하게 확인한다.


하지만 그 이후가 조금 다르다. 나와 함께 진료를 갔던 선생님은 기본적인 의학적 처치를 수행한 뒤 대뜸 환자에게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할머니, 여기 벽지가 안 이랬는데? 왜 이렇게 됐어요? 여기만 색깔이 다 바래져서 보기가 안 좋네...”

   “아이고, 선생님. 말도 마요. 갑자기 삼촌이 오셔 가지고는 풍수지리상 침대의 위치가 좋지 않다면서 방의 구조를 마음대로 다 바꿔버린 게 아니에요. 여기가 벽장이 있어서 벽지가 가려져 있었는데 벽장을 옮기니까 저렇게 도배가 안 된 곳이 드러났지요..”

   “풍수지리에 좋게 잠자리를 옮기고 나서 잠 자는 건 좀 괜찮아지셨어요?”

   “말도 마요. 영 자리가 불편하고 낯설어서 자는 게 시원찮아.”

   “그래도 집주인이 편한 게 최고지, 풍수지리가 다 무슨 소용이야. 아드님은 중국에서 다음주에 돌아오신다고 하셨죠? 다음주에 아드님과 다시 한번 말해봅시다. 자리를 다시 바꿔야지 할머니가 잠도 좀 편하게 자고 집에서 편하게 있지, 안 그래요?”

   “아휴, 그러니까요. 이게 다 뭔 난리래.”

인테리어 기사가 아니라 의사 선생님의 대화다. 이후 선생님이 할머니께 약을 처방하며 알았던 사실이지만 할머니의 진단명은 당뇨, 고혈압, 그리고 우울증이었다. 밝은 집 분위기와 쾌적한 집의 환경 또한 할머니의 우울증에는 중요한 요소였을지도 모른다.


또 재미난 풍경이 있었다.

   “할머니, 밥은 요즘 어떻게 잡숴요?”

   “영 다 맛이 없어. 선생님도 90살이 되어봐요. 고기도 맛 없고, 재미난 게 별로 없어. 언제 죽을 건지 몰라.”

   “다 맛이 없어서 어떡해요. 지난 번에 그 소고기는 다 먹었어요?”

   “아유, 소고기도 냄새가 거슬려서 못 먹겠어요”

   “그럼 닭고기는?”

   “아유, 닭도...”

   “그럼 두부는?”

   “두부는 좀 괜찮아요.”

   “그럼 두부 많이 먹어요. 두부도 좋아요. 그나저나 그럼 밥도 안 드시겠네?”

   “밥은 영 넘어가질 않고, 그냥 라면이나 종종 먹고 그러지요 뭐.”

   “그럼 라면 먹을 때 계란 풀어서 먹어요. 계란 풀어서 먹으면 맛있잖아요.”

라면 광고가 아니라 의사 선생님의 대화다. 이런 경우에서 보통의 의사들은 “라면은 몸에 좋지 않아요. 밥을 드세요. 고기도  많이 먹고요라고 대답한다. 라면에 계란을 풀어서 먹으라니. 고혈압인 환자에게  나트륨이 많은 라면을.


이처럼 방문진료를 하시는 선생님들의 시선과 태도는 조금 다르다. 환자가 최대한 본인의 삶 속에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병 그 자체가 아니라 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그 환경을 바라보는 관점. 나는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에서 교육 받으며 훌륭한 선생님들도 많이 뵈었지만, 환자의 삶 구석구석에 그토록 세세한 돌봄을 제공하는 의사 선생님은 본 적이 없었다.


지역사회의학실습을 마치며 각자 소감을 말하던 중 담당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어떠한 생각을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러한 문제를 마주할 때면 환자들에게 비치는 우리들의 모습에 대해 생각합니다. 삶의 갖은 어려움들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의학적인 조언을  주고, 때로는 의학적일지도 모르는 조언을  주기도 하는, 그런 모습의 의사는 환자들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보여질까요? 우리 사회는 그런 사람들에게  존경을 표하고 따르지 않을까요? 물론 최신 항암제도 중요하고 최신 의학 기술도 중요합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분명 중요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환자의  또한 바라보는  모습. 저는 의사의 권위가 바로 그곳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문득 방문 진료 도중 의사 선생님의 모습이 생각났다. 선생님은 항상 할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할머니의 손등을 어루만지면서 이야기했다. 가운도 없이 그냥 깔끔한 니트와 셔츠차림이었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아픈 몸을 이끌고 문앞까지 나와 ‘의사 선생님 와주셔서 고맙다’, ‘다음에도 또 뵙겠다’, ‘내가 음료를 준비를 못 해서 야쿠르트만 하나 쥐어 주어서 어떡하냐’며 극진하게 선생님을 마중했다.


   “의사의 권위는 그곳에서 출발한다.”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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