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진료실의 시계는 너무도 빨리 돌아간다. 대기하고 있는 환자수는 쌓여가고 진료를 보는 의사는 초조해진다. 의사와 환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약 3분. 의사의 말은 빨라지고 환자는 정신이 없다. 뭐라도 하나 더 물어보려는 환자들과 어떻게든 주어진 시간 내에서 진료를 마치려는 의사. 그들 사이의 미묘한 줄다리기가 진료 시간 내내 지속된다. 안타깝지만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이 이러한 걸 의사도 환자도 어떻게 할 방도가 없다. 이렇게 진료해야만 하는 의료체계를 지속할 것이었으면 의사 국가고시 시험에서는 왜 12분 동안이나 환자를 면담하라고 하는 건지 나는 도통 알 수가 없다.
반면 대학병원의 진료임에도 여유가 넘치는 곳도 있다. 건강검진센터가 그렇다. 건강검진은 주요 암의 조기 발견율을 높여주었고, 특정 암에서는 사망률 자체를 줄여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부분이 비보험으로 진행되는 검사들이다 보니, 대학병원의 입장에서는 비현실적으로 낮은 의료수가로 인해 생긴 적자를 메꾸기에 딱 좋은 게 바로 건강검진인 것이다.
사업성이 좋은 의료서비스이다 보니 의료진들의 서비스도 남다르다. 우선 나는 대학병원의 그 어떠한 진료에서도 이토록 너그러운 진료시간을 본 적이 없다. 환자의 모든 궁금증이 끝날 때까지 이어지는 진료. 심지어는 한 의사의 설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곧이어 다른 의사에게 같은 내용의 진료를 두 번 받기도 한다.
면담의 깊이도 남다르다. 언젠가 건강검진을 참관하며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 오랜 시간 상담하는 환자를 본 적이 있었다. 식품명, 영양소, 판매처, 그리고 조리법까지. 문득 간암에 걸렸던 환자의 가족분께서 시간이 부족하여 진료실에서 쫓기듯 나가며 "음식은 어떤 걸 먹는 게 좋나요"라고 던진 질문에, "보통 몸에 좋다고 하는 건 다 간에 안 좋아요"라고 답하며 다음 진료를 준비하던 교수님의 모습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영 이상한 부분에 신경을 쏟아야 할 때도 있다. 부유한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모 지역의 건강검진센터에는 기업을 운영하는 재벌들이 종종 방문한다고 한다. 그런데 종종 그분들께서 '병원에 있는 그림의 격식이 떨어진다'느니, '병원에 비치되어 있는 잡지가 너무 교양이 없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신다고 하니,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대학병원 미술관이라도 지어야 할 판이다.
건강검진 또한 중요한 의학의 영역으로 우리가 더욱 힘써야 할 분야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같은 건물의 다른 진료실에 있는 암환자들은 달음질치는 시간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정보를 얻고자 그토록 고군분투 하고 있는데, 건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건강검진은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유유히 진행되는 것을 보고 있자면아무래도 무언가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