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숫자에 갇힌 성과 - 1. 숫자가 말하지 않는 진실들
2019년 어느 월요일 아침, 한국의 대형 유통업체 A사 임원진 회의실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전년 대비 매출이 15% 증가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는데, 정작 현장 직원들은 모두 지쳐 보였고, 고객 불만이 급증하고 있었다.
"숫자로 보면 우리는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왜 현실은 이렇게 다를까?"
CFO의 한 마디에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매출 증가의 비밀을 파헤쳐보니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증가한 매출의 80%는 과도한 할인과 무리한 영업 압박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직원들은 불가능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번아웃 직전까지 내몰렸고, 고객들은 품질 저하와 서비스 악화를 경험하고 있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런 방식으로 달성한 매출 증가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다음 분기부터 매출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우수한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다. 고객 만족도는 업계 최하위로 추락했다.
숫자는 15% 성장을 말했지만, 진실은 정반대였다. 회사는 미래를 담보로 현재의 숫자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숫자의 달콤한 유혹
현대 조직은 숫자에 중독되어 있다. 매출, 수익, 시장점유율, 고객 수, 직원 만족도... 모든 것을 숫자로 측정하고, 숫자로 평가하며, 숫자로 의사결정한다. 숫자는 객관적이고 명확하며 비교 가능하기 때문에 매력적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위험한 함정이 있다. 숫자는 현실의 일부만을 보여줄 뿐, 전체를 말해주지 않는다. 숫자 뒤에 숨어있는 맥락, 과정, 질적 요소들을 놓치면 완전히 잘못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맥킨지의 연구에 따르면, 성과 측정에만 의존하는 조직의 65%가 실제로는 장기적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숫자에만 매몰되어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웰스파고의 "800만 개 가짜 계좌" 스캔들
2016년 미국 금융업계를 뒤흔든 웰스파고 스캔들은 숫자에 매몰된 조직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웰스파고는 "크로스셀링"을 핵심 전략으로 삼았다. 한 고객당 보유 상품 수를 늘려 수익성을 높이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직원들에게 강력한 숫자 목표를 부여했다.
"고객 1명당 8개 상품 판매"
"일일 신규 계좌 개설 목표 달성"
"월간 크로스셀링 비율 향상"
숫자로만 보면 웰스파고는 대성공이었다. 고객당 상품 보유 수는 업계 평균을 훨씬 웃돌았고, 분기마다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주가는 치솟았고, 경영진은 보너스를 받았다.
하지만 이 놀라운 숫자들 뒤에는 충격적인 진실이 숨어있었다. 직원들이 고객 동의 없이 무려 350만 개의 가짜 예금계좌와 190만 개의 가짜 신용카드를 개설한 것이었다. 불가능한 숫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사기를 저지른 것이다.
스캔들이 터진 후 웰스파고는 30억 달러의 벌금을 물었고, CEO는 사임했으며, 5,300명의 직원이 해고되었다. 무엇보다 고객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
숫자는 성공을 말했지만, 진실은 참담한 실패였다.
아마존의 "숨겨진 지표들"
반면 아마존은 숫자를 다르게 접근한다. 제프 베이조스는 "숫자가 말하지 않는 것에 더 주목하라"고 강조했다.
아마존의 주주서한을 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일반적인 기업들이 강조하는 분기 매출이나 수익보다는 다음과 같은 지표들을 더 중요하게 다룬다.
고객 강박 지수(Customer Obsession Index)
단순한 고객 만족도가 아니라, 고객이 얼마나 아마존에 "강박적으로" 의존하는지를 측정한다. 재구매율, 추천율, 서비스 이용 빈도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장기 사고 지표(Long-term Thinking Metrics)
단기 수익을 희생하더라도 장기적 가치를 만드는 투자들을 추적한다. R&D 투자, 인프라 구축, 신규 시장 진출 등에 대한 독특한 측정 방식을 갖고 있다.
실패 학습 지수(Failure Learning Index)
실패한 프로젝트에서 얼마나 많은 학습과 개선이 있었는지를 측정한다. 단순히 성공/실패로 나누지 않고, 실패의 질과 학습 효과를 평가한다.
혁신 속도 지표(Innovation Velocity)
새로운 아이디어가 실제 서비스로 구현되기까지의 시간과 과정을 측정한다. 아이디어 제안부터 실행까지의 단계별 소요시간을 줄이는 것을 중요 목표로 삼는다.
베이조스는 "이런 지표들은 재무제표에 나타나지 않지만, 아마존의 진짜 건강상태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넷플릭스의 "컨텍스트 중심 측정"
넷플릭스는 "자유와 책임(Freedom and Responsibility)" 문화로 유명하다. 이 회사는 전통적인 성과 측정 방식을 거부하고, 맥락(Context) 중심의 평가를 한다.
넷플릭스에는 다음과 같은 독특한 측정 철학이 있다.
"컨텍스트, 낫 컨트롤(Context, Not Control)"
직원들을 숫자로 통제하지 않고, 상황과 맥락을 제공해서 스스로 최선의 판단을 하도록 한다. 예를 들어 "시청률 10% 향상"이라는 목표 대신 "사용자들이 정말 사랑할 만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맥락"을 제공한다.
"키퍼 테스트(Keeper Test)"
직원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만약 이 직원이 다른 회사로 이직한다고 하면, 우리가 반드시 붙잡으려고 할 것인가?"이다. 이는 숫자로 측정할 수 없지만 가장 정확한 성과 지표다.
"정보 밀도(Information Density)"
회의나 보고서에서 정말 중요한 정보가 얼마나 밀도 있게 전달되는지를 중시한다. 숫자의 양이 아니라 정보의 질을 평가한다.
넷플릭스의 전 CPO인 패티 맥코드는 "숫자는 과거를 말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가진단: 당신의 조직은 숫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다음 질문들을 통해 조직의 성과 측정 문화를 점검해보자.
숫자 의존도
□ 모든 의사결정을 숫자에 기반해서 내린다
□ 숫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 정성적 요소도 숫자와 함께 고려한다
□ 숫자 뒤의 맥락과 과정을 중요하게 본다
성과 측정 방식
□ 단기간에 측정 가능한 지표만 중시한다
□ 개인별 숫자 목표 달성에만 집중한다
□ 장기적 가치도 측정 체계에 포함한다
□ 과정과 결과를 함께 평가한다
숫자 목표 설정
□ 전년 대비 일정 비율 증가가 기본 목표다
□ 경쟁사 대비 우위만 확보하면 된다
□ 고객 가치 창출과 연결된 목표를 세운다
□ 조직의 장기 비전과 연결된 지표를 만든다
문제 상황 대응
□ 숫자가 좋으면 과정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어떤 방법도 용인한다
□ 숫자 뒤의 문제점도 함께 분석한다
□ 지속가능한 성과인지 항상 검토한다
체크 결과:
위쪽 답변이 많다면: 숫자 중독형 조직
아래쪽 답변이 많다면: 균형잡힌 성과 문화
사우스웨스트항공의 "보이지 않는 지표들"
미국의 저비용 항공사 사우스웨스트항공은 40년 이상 연속 흑자를 기록한 유일한 항공사다. 이 회사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숫자가 말하지 않는 것"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항공업계에서 일반적으로 중시하는 지표는 승객 수, 좌석 점유율, 수익률 등이다. 하지만 사우스웨스트항공은 다른 것들을 측정한다.
"Fun Quotient"
직원들이 일을 얼마나 즐겁게 하는지를 측정한다. 웃음 소리, 농담, 유머 등을 실제로 관찰하고 기록한다. 이것이 고객 서비스 품질과 직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Proactive Problem Solving Index"
문제가 터진 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미리 발견하고 예방하는 능력을 측정한다. 이는 숫자로 쉽게 나타나지 않지만 회사의 핵심 경쟁력이다.
"Employee Family Feeling"
직원들이 얼마나 가족 같은 느낌을 갖는지 측정한다. 생일 축하, 개인적 관심, 서로 돕기 등의 행동들을 관찰한다.
"Customer Love Stories"
단순한 만족도 점수가 아니라 고객들이 자발적으로 전하는 감동 스토리의 수와 질을 측정한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창업자 허브 켈러허는 "숫자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지만, 감정은 우리가 어디로 갈지 알려준다"고 말했다.
구글의 "OKR 혁신"
구글이 전 세계에 널리 퍼뜨린 OKR(Objectives and Key Results) 시스템은 숫자와 목적을 균형 있게 다루는 대표적 사례다.
전통적인 KPI와 OKR의 차이점을 보면,
KPI: "얼마나 많이, 얼마나 빨리"
매출 20% 증가
고객 수 2배 확대
비용 15% 절감
OKR: "왜, 무엇을 위해"
Objective: 사용자들이 정말 사랑하는 제품 만들기
Key Result 1: 일일 활성 사용자 30% 증가
Key Result 2: 사용자 추천률 40% 향상
Key Result 3: 고객 지원 요청 50% 감소
OKR의 핵심은 숫자(Key Results) 뒤에 명확한 목적(Objectives)이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숫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왜 그 숫자가 중요한지를 항상 명시한다.
구글의 전 CEO 에릭 슈미트는 "OKR은 숫자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만든다"고 설명했다.
숫자 뒤의 진실을 찾는 5단계 방법
조직에서 진정한 성과를 측정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한다.
1단계: "왜?"를 세 번 묻기
모든 숫자 지표에 대해 "왜 이것을 측정하는가?", "왜 이 숫자가 중요한가?", "왜 이 방식으로 측정하는가?"를 반복해서 묻는다.
2단계: 반대 지표 찾기
긍정적 지표와 함께 반대되는 지표도 함께 측정한다. 예를 들어 매출 증가와 함께 고객 불만, 직원 이탈률, 품질 저하 등도 동시에 관찰한다.
3단계: 프로세스 지표 추가하기
결과 지표뿐만 아니라 과정 지표도 측정한다. 어떤 방식으로 그 결과를 달성했는지, 그 과정이 지속가능한지를 평가한다.
4단계: 정성적 스토리 수집하기
숫자와 함께 구체적인 사례, 스토리, 에피소드를 수집한다. 숫자가 말하지 않는 맥락과 의미를 파악한다.
5단계: 장기 영향 평가하기
현재의 성과가 6개월, 1년, 3년 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시나리오를 만들어 평가한다.
숫자는 나침반이지 목적지가 아니다
숫자는 분명 중요하다. 객관적 측정 없이는 개선도 없고, 성장도 없다. 하지만 숫자는 나침반일 뿐, 목적지가 아니다.
진정한 성과는 숫자로만 설명될 수 없다. 고객의 마음, 직원의 열정, 조직의 문화, 사회적 가치... 이런 것들은 숫자로 완전히 포착되지 않지만 실제로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다.
성공하는 조직들은 숫자를 존중하되 숭배하지 않는다. 숫자를 통해 현실을 파악하되, 숫자에 매몰되어 본질을 놓치지 않는다. 숫자가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을 모두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당신의 조직도 숫자와 건전한 관계를 맺어보자. 숫자를 무시하지도 말고, 숫자에만 의존하지도 말자. 숫자 뒤에 숨어있는 진실을 찾아내고, 그 진실을 바탕으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자.
숫자는 현재를 설명하지만, 미래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미래는 숫자가 아닌 사람이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