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는 조직의 50가지 법칙

6. 숫자에 갇힌 성과 - 2. KPI 지옥에서 탈출하는 법

by 유키

2020년 3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기에 미국의 한 대형 병원에서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응급실 직원들이 "환자 대기시간 단축"이라는 KPI를 달성하기 위해 중증 환자를 일반 병동으로 먼저 보내고, 경증 환자를 응급실에서 빠르게 처리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KPI 상으로는 대기시간이 30% 단축되어 "성공"으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정작 생명이 위험한 중증 환자들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고, 의료진들은 "숫자 맞추기"에 지쳐갔다.

한 간호사가 익명으로 제보한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우리는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KPI를 치료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첫 번째로 확인하는 것은 환자 상태가 아니라 어제의 KPI 달성률입니다. 이게 정말 의료진이 해야 할 일인가요?"

이 병원의 사례는 극단적이지만, 수많은 조직에서 벌어지는 일의 축소판이다. KPI가 목적이 되고, 본래의 미션은 잊혀가는 현상. 이것이 바로 "KPI 지옥"이다.


KPI 지옥의 특징들

KPI 지옥에 빠진 조직들은 몇 가지 공통적인 증상을 보인다.

증상 1: 측정을 위한 측정

무엇이든 측정할 수 있다면 측정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의미 있는 지표와 의미 없는 지표를 구분하지 못하고, 측정 가능한 모든 것을 KPI로 만든다.

증상 2: 숫자 게임

직원들이 진짜 성과를 내는 것보다 KPI 숫자를 조작하는 것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 창의적인 편법과 꼼수가 난무한다.

증상 3: 단기 최적화

장기적 가치를 희생하더라도 당장의 KPI 숫자를 맞추는 것을 우선시한다. 미래를 담보로 현재의 성과를 만들어낸다.

증상 4: 사일로 효과

부서별로 다른 KPI를 갖다 보니 서로 협력하지 않고 자기 부서 KPI만 신경 쓴다. 전체 최적화보다 부분 최적화에 집중한다.

증상 5: 혁신 마비

KPI에 없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새로운 시도나 실험보다는 안전하게 기존 KPI 달성에만 집중한다.


소니의 "KPI 지옥" 경험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소니는 심각한 KPI 지옥에 빠져 있었다. 당시 소니는 "숫자 경영"을 표방하며 모든 부서, 모든 직원에게 세밀한 KPI를 할당했다.

각 부서는 다음과 같은 수십 개의 KPI를 관리해야 했다.


하드웨어 부서

월간 생산량, 불량률, 원가 절감률, 신제품 출시 속도, 재고 회전율...

소프트웨어 부서

개발 속도, 버그 발생률, 코드 품질, 사용자 만족도, 업데이트 주기...

마케팅 부서

브랜드 인지도, 광고 효과, 시장점유율, 고객 획득 비용, 전환율...


문제는 이런 KPI들이 서로 상충한다는 점이었다. 하드웨어 부서는 원가 절감을 위해 품질을 낮추려 했고, 소프트웨어 부서는 버그율을 줄이기 위해 개발 속도를 늦췄다. 마케팅 부서는 단기 매출을 위해 할인 정책을 남발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각 부서는 자신의 KPI는 달성했지만, 정작 소니의 핵심 가치인 "혁신"과 "품질"은 사라졌다. 애플의 아이팟에게 워크맨 시장을 내주었고, 삼성에게 TV 시장 1위 자리를 빼앗겼다.

2005년 취임한 하워드 스트링거 CEO는 "우리는 KPI를 달성하기 위해 소니다움을 잃었다"며 대대적인 KPI 개혁을 단행했다.


후버(Hubspot)의 "KPI 다이어트"

반면 마케팅 소프트웨어 회사 후버는 "KPI 다이어트"로 유명하다. 이 회사는 의도적으로 KPI의 수를 최소한으로 줄였다.

전사 차원에서는 단 3개의 KPI만 관리한다.

1. 고객 성공 지수(Customer Success Score)

단순한 고객 만족도가 아니라, 고객이 후버를 통해 실제로 비즈니스 성과를 얼마나 달성했는지를 측정한다.

2. 직원 참여 지수(Employee Engagement Index)

직원들이 회사 미션에 얼마나 몰입하고 있는지, 자발적으로 기여하려는 의지가 얼마나 높은지를 측정한다.

3. 혁신 속도 지표(Innovation Velocity)

새로운 아이디어가 실제 제품이나 서비스로 구현되기까지의 시간과 성공률을 측정한다.

각 팀별로도 최대 2-3개의 핵심 지표만 갖는다. 그 대신 각 지표에 대해서는 매우 깊이 있게 분석하고 개선한다.

후버의 창업자 브라이언 할리건은 "적은 수의 올바른 지표가 많은 수의 그럴듯한 지표보다 낫다"고 말한다.

실제로 후버는 2006년 창립 이후 연평균 50% 이상의 성장을 이어가며 마케팅 소프트웨어 분야의 선두 기업이 되었다.


버퍼(Buffer)의 "투명한 KPI"

소셜미디어 관리 도구 버퍼는 독특한 KPI 문화로 유명하다. 이 회사는 모든 KPI를 대내외에 완전히 공개한다.

버퍼의 공식 웹사이트에 가면 실시간으로 다음 정보들을 볼 수 있다.

월간 반복 수익(MRR): $2,456,892

전체 고객 수: 140,000명

직원 수: 118명

직원 다양성 지표: 여성 47%, 소수민족 32%

평균 급여: $124,000

고객 이탈률: 5.2%

이런 투명성이 가능한 이유는 버퍼가 KPI를 경쟁 도구가 아닌 학습 도구로 보기 때문이다.

버퍼의 공동창업자 조엘 가스코인은 "KPI를 숨기면 게임이 되지만, 공개하면 도구가 된다"고 설명한다.


투명한 KPI의 효과들

내부적 효과

직원들이 회사 전체 상황을 이해하고 주인의식을 갖게 됨

부서 간 갈등이 줄어들고 협력이 증가함

숨길 것이 없으니 정직한 측정과 보고가 이루어짐


외부적 효과

고객들이 회사의 투명성을 신뢰하게 됨

우수한 인재들이 투명한 문화에 매력을 느껴 지원함

경쟁사들도 배우고 벤치마킹할 수 있는 사례가 됨

결과적으로 버퍼는 소셜미디어 관리 도구 시장에서 꾸준히 성장하며 고객과 직원 모두에게 사랑받는 회사가 되었다.


자가진단: 당신의 조직은 KPI 지옥에 빠져있나?

다음 증상들을 체크해보자.


KPI 개수와 복잡성

□ 각 직원이 관리해야 할 KPI가 10개 이상이다

□ KPI 계산 방식이 복잡해서 직원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 KPI가 자주 바뀌어서 혼란이 있다

□ 핵심 KPI는 3-5개 내외로 단순하고 명확하다


KPI 상호 관계

□ 부서별 KPI가 서로 상충하는 경우가 있다

□ 개인 KPI와 팀 KPI가 일치하지 않는다

□ 단기 KPI와 장기 목표가 모순된다

□ 모든 KPI가 조직 목표와 일관성 있게 연결되어 있다


KPI 활용 방식

□ KPI 달성 자체가 목적이 되고 있다

□ KPI 숫자를 맞추기 위한 편법이 난무한다

□ KPI에 없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 KPI는 개선을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


KPI 문화

□ KPI 회의에서는 변명과 핑계가 주를 이룬다

□ KPI 달성 여부로만 성과를 평가한다

□ 실패한 KPI에 대해서는 처벌이 따른다

□ KPI를 통해 학습하고 개선하는 문화가 있다


체크 결과:

위쪽 답변이 많다면: KPI 지옥 위험군

아래쪽 답변이 많다면: 건전한 KPI 문화


스포티파이의 "Anti-KPI" 문화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는 "Anti-KPI" 문화로 유명하다. 이는 KPI를 거부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KPI의 부작용을 적극적으로 방지한다는 뜻이다.

스포티파이의 독특한 접근법들은 다음과 같다.


1. "Health Check" 시스템

전통적인 KPI 대신 팀의 "건강도"를 측정한다. 속도, 품질, 학습, 재미, 미션 등을 정성적으로 평가한다.

2. "실험 중심 문화"

고정된 KPI 목표보다는 "이번 분기에 어떤 실험을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실험의 성공/실패보다는 학습 정도를 중시한다.

3. "Squad 자율성"

각 스쿼드(8-12명의 자율팀)가 자신들의 KPI를 스스로 정한다. 본사에서 하향식으로 KPI를 내려주지 않는다.

4. "맥락 공유"

KPI 숫자만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숫자가 나온 맥락과 배경을 자세히 공유한다.

스포티파이의 창업자 다니엘 에크는 "KPI가 창의성을 죽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핵심 과제"라고 말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Growth Mindset KPI"

사티아 나델라가 CEO로 취임한 후 마이크로소프트는 KPI 문화를 완전히 바꿨다. 기존의 "Know-it-all" 문화에서 "Learn-it-all" 문화로 전환하면서 KPI도 함께 진화했다.


기존 KPI (Know-it-all 시대)

개인별 랭킹과 상대평가

경쟁사 대비 시장점유율

단기 매출과 수익 목표

실수와 실패에 대한 처벌


새로운 KPI (Learn-it-all 시대)

팀 전체의 학습 속도

고객 문제 해결 정도

장기적 가치 창출

실험과 도전의 횟수

특히 흥미로운 것은 "실패 KPI"의 도입이다. 각 팀은 분기마다 "의미 있는 실패"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즉, 충분히 도전하지 않으면) 오히려 문제가 된다.

이런 변화의 결과 마이크로소프트는 클라우드 시대에 다시 한번 기술 혁신의 선두주자가 될 수 있었다.


KPI 지옥에서 탈출하는 7단계 방법

조직을 KPI 지옥에서 구해내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한다.

1단계: KPI 단식(KPI Fasting)

모든 KPI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1-2주간 "KPI 없는 업무"를 경험해본다. 이를 통해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재발견한다.

2단계: "왜?"의 연쇄 질문

각 KPI에 대해 "왜 이것을 측정하는가?", "이것이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주는가?", "이것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를 반복해서 묻는다.

3단계: KPI 다이어트

전체 KPI의 80%를 과감하게 제거한다. 정말 핵심적인 3-5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없앤다.

4단계: 상충 관계 해결

남은 KPI들 간의 상충 관계를 철저히 분석하고 해결한다. 하나의 KPI를 달성하기 위해 다른 KPI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제거한다.

5단계: 프로세스 KPI 추가

결과 KPI뿐만 아니라 과정 KPI도 포함한다. "어떻게 달성했는가?"도 "무엇을 달성했는가?"만큼 중요하게 평가한다.

6단계: 투명성 확보

모든 KPI와 그 달성 현황을 조직 내부에 투명하게 공개한다. 숨길 것이 없게 만들어 게임을 방지한다.

7단계: 학습 중심 문화

KPI 달성/미달성보다는 KPI를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실패도 학습으로 전환한다.


도요타의 "개선 중심 KPI"

도요타의 TPS(Toyota Production System)에는 독특한 KPI 철학이 있다. "문제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

도요타의 현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역설적 KPI들을 볼 수 있다.


"문제 발견 KPI"

월간 개선 제안 횟수

라인 정지 횟수 (문제 발견 시 즉시 라인을 멈추는 것을 권장)

"왜?"를 5번 물은 횟수


"실패 학습 KPI"

실패 사례 공유 횟수

실패에서 나온 개선책 적용 건수

같은 실수 반복 방지 성공률


"협력 KPI"

부서 간 협업 프로젝트 수

지식 공유 세션 참여도

다른 팀 도움 제공 횟수


이런 KPI들은 단기적 성과보다는 장기적 개선 역량을 키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도요타의 전 사장 아키오 도요다는 "우리의 KPI는 오늘보다 내일을 더 낫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페이스북(메타)의 "연결 중심 KPI"

페이스북(현 메타)은 "세상을 더 가깝게 연결한다"는 미션을 KPI에 직접 반영한다. 단순한 사용자 수나 광고 수익보다는 "의미 있는 연결"을 중시한다.


전통적인 소셜미디어 KPI

일일/월간 활성 사용자 수

페이지뷰, 클릭률, 체류시간

광고 수익, ARPU(사용자당 매출)


페이스북의 "연결 중심 KPI"

의미 있는 상호작용(Meaningful Social Interactions) 횟수

실제 친구와의 연결 강도

긍정적 피드백과 반응의 비율

오프라인 모임으로 이어진 온라인 연결 수


2018년 마크 저커버그는 "우리는 사람들이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며 KPI 전환을 선언했다.

이런 변화로 인해 단기적으로는 체류시간과 광고 수익이 일부 감소했지만, 사용자 만족도와 플랫폼 건전성은 크게 향상되었다.


KPI는 도구이지 주인이 아니다

KPI 지옥에서 탈출하는 핵심은 KPI와 목적의 관계를 올바르게 정립하는 것이다. KPI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훌륭한 조직들은 KPI를 다음과 같이 활용한다.

나침반으로 활용: 방향을 알려주는 도구로 사용한다

학습 도구로 활용: 개선점을 찾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다

소통 도구로 활용: 팀 간 이해를 돕는 공통 언어로 사용한다

동기부여 도구로 활용: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게 하는 요소로 활용한다

반면 KPI 지옥에 빠진 조직들은 KPI를 다음과 같이 오남용한다:

통제 도구로 오용: 직원들을 감시하고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처벌 도구로 오용: 실패한 사람을 찾아내어 문책하는 근거로 사용한다

경쟁 도구로 오용: 동료들을 이기기 위한 무기로 사용한다

면피 도구로 오용: 실질적 성과 없이 숫자만 맞추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당신의 조직은 KPI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KPI가 조직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는가, 아니면 오히려 목적을 가로막고 있는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KPI 지옥에서 탈출하여 KPI를 진정한 도구로 만들어보자. 그러면 숫자는 더 이상 압박이 아니라 성장의 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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