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이아 Feb 16. 2023

하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일도 많아요.

여섯 번째 답장

유로파. 저는 올해 장편 소설을 읽기로 했습니다. 저에게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가 소설을 빚는 만큼이나 집중력을 요하는 일입니다. 그동안 피해오던 소설을 잡은 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주제, 인물, 사건, 배경, 문체의 이해가 얕아졌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조금만 저 다섯 가지의 이해관계가 얽히면 찡그려지는 급하다 급해 현대사회에서는 시야가 좁아지기 쉽습니다. 그러다 보면 타인에의 이해와 공감의 마음이 좁아지기 쉽죠. 그러면 당연히 나의 이해와 공감을 전달하는 것에도 어려움을 겪습니다. 몇 년간 저의 마음은 아주 좁았는데 몰랐습니다. 예전보다 전달도, 집중도 어려워졌죠. 그래서 해보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무언가에 몰입하는 즐거움을 다시 느끼고 싶거든요.


으으. 좋아하는 추리 장르로 도전해보려고 하다가 등장인물이 사건이 터지기도 전에 집중력이 흐트러졌습니다. 으으. 내가 코난이었다면 집중력이 낮아 그냥 멍청한 초딩으로 살았을 거예요. 안 되겠습니다. 단편부터 살살 강도를 높여가야겠어요. 추리물 하니 생각이 났는데, 최근에 <대역전재판> 게임을 했습니다. 이 게임 역시 방대한 스토리를 가진 작품이다 보니 모든 에피소드를 플레이하는데 장장 두 달이 걸렸습니다. 네 맞아요. 백수 때부터 했던 게임이에요. 변호사가 주인공이지만 추리물 못지않은 장르로, 이 게임 역시 사건사고를 추리하는 데에 플레이어의 많은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이의 있소!"라는 대사로 유명한 게임이죠. 여기에는 셜록홈즈도 나오지만 나쓰메 소세키도 나옵니다. 네. 그 나쓰메 소세키요. 저는 그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부터 도전해보자 싶었어요. 아직 이 작가의 책을 한 권도 읽어보지 않았지만 게임으로 만나 작가에 관심이 생겼고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고양이 시점의 소설이라는 걸 알고 궁금해졌습니다. 


소설 읽기에 더해 또 다른 도전이 생겼습니다. 바로 천천히 먹기입니다. 성격이 급하기에 빨리 먹나 싶더니 거의 숨넘어갈 듯 먹어제끼는 모습을 오늘 아침을 먹다 알아챘습니다. 누가 뺏어 먹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래서 의식적으로 천천히 먹기 도전 중입니다.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넘어오니 '천천히'는 아주 몸을 옴짝달싹 못 하게 하더라고요. 천천히 먹자더니 위장 운동을 천천히 하는 것이 아닌 젓가락질을 느리게 합니다. 백번 씹어 삼키는 건 못하니까 입을 천천히 오므렸다 벌렸다 하더라고요. 거의 나무늘보가 유칼립투스를 뜯어먹는 장면이에요. 그래도 습관이 되면 괜찮겠지 합니다. 급하게 먹다 속이 탈 나는 것보다 낫겠죠.








습관 하니 작심삼일이 생각나네요. 한때 유행했었는데 혹시 유로파도 들어봤나요? 작심삼일이 고민이면 작심삼일을 무한 반복하면 된다는 말이요. 유로파는 계획을 아주 구체적으로 세우잖아요. 혹시 길들이기 어려웠던 습관도 있나요? 저의 습관은 일을 벌이는 겁니다. 과정 없이 어느 날 짠하고 결과물을 내놓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신기하다는 피드백이었지만 그만큼 내가 말을 안 하고 살았던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좀 알릴 수 있을까 하다가 sns 프로필에 진행 상황이 날것 그대로 보이는 노션 페이지를 올려두려고 합니다. 


갓생도 취향, 성향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저처럼 일벌이고 다니는 성향은 가만히 있지 못해서 그런 거고요. 워라밸이 유행했을 때는 잘 쉬는 사람이 갓생러였죠. 지금은 화이팅이 갓생러라면요. 제가 지금 앉아있는 책방에는 매일 저녁 6시면 동네를 순찰하는 대장 고양이가 있어요. 이 동네의 고양이들에겐 저 대장이 갓생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눈에는 그저 귀엽지만요. 그런 것처럼 갓생을 추구하는 마음은 비교 대상보다 낫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린 길고양이와 나를 비교하지 않지만, 타인과 나를 비교하죠. 어려운 이야기지만 일단 갓생러가 아닌 단지 뇌가 유난한 제가 벌인 일을 소개할게요.


인쇄물 계획부터 말해보자면 저번에 말했던 소설 <서울 사람입니다>는 빠르면 이번 겨울쯤 출간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이미 한번 출간했던 작품을 고쳐 쓰는 것이라 엄청난 시간이 필요친 않더라고요. 단편집이라 단편 하나씩을 수정해가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이 문체를 다듬고 싶어 하셔서 그것을 집중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유학을 다녀와서 다시금 서울이 새롭게 보였대요. 그래서 그 점을 배경으로 한 현대소설을 창작하셨다고 해요. 작품을 다듬으며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는데 본업이 저와는 완전 다른 계열이라 그 얘기를 듣는 것도 즐겁습니다. 그렇게 2주에 한 번씩 목요일에 수다를 가장한 미팅을 해요. 겨울에 출간하면 1년 정도 걸린 작업이겠군요.


그리고 얼마 전에 드디어 일러스트레이터가 섭외된 <한글 타로>도 펀딩 예정입니다. 펀딩 오픈은 9월쯤이지 않을까 싶어요. 현직 심리상담사와 메시지를 짜고 있고 곧 일러스트레이터도 합류해서 카드를 만들어가게 되겠죠. 카드 제작은 처음이라 업체 찾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컨셉은 한글 그리고 친구입니다. 한글로 된 카드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리고 상담사님이 실제로 내담자에게 하는 조언의 말씀을 담고 싶었죠. 전문 타로라기 보단 메시지 카드, 보조 덱이라고 해야 맞는 표현이에요. 만들어서 저도 타로 볼 때 쓰려고요. 호호. 펀딩 리워드로 팝업 스토어를 열어볼까도 생각 중니다. 그땐 유로파도 타로 보러 오세요!


<사부작 사부작 한방차 만들기>를 그렸던 일러스트레이터와는 또 다른 책을 준비하고 있어요. 구움과자 책입니다. 이번에는 레시피북이 아니고 구움 과자 역사책이 될 거예요. 그러니까.. 룸메가 "구움과자 너무 좋아!"라고 외치면서 시작됐어요. 네. 저 일러스트레이터는 제 룸메입니다. 티 타임에 구움과자를 곁들이곤 하는데 다큐나 역사를 좋아하는 룸메의 구움과자 이야기가 너무 재밌더라고요. 바로 책으로 만들자고 했죠. 이걸 기획했을 당시 저는 리무버블 스티커에 꽂혀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책도 가로로 긴 판형에 왼쪽에는 역사, 오른쪽에는 일러스트인데 풍경에 테이블 그리고 접시와 식기만 놓여있을 거예요. 주인공인 구움과자는 리무버블 스티커로 제작해 독자가 직접 붙일 수 있게 할거거든요! 여름이 넘지 않게 출간하려고 해요. 그러니 만약 좋은 구움과자 가게를 알게 된다면 데려가 주세요. 역시 직접 먹으면서 경험해야죠!


계속된 아트북 출간에 <정직한 수필집>을 만들고 싶어서 작가를 찾던 중 드디어 작가분과 연락이 되어 2월 미팅 예정을 잡았습니다. 밖에서 잠깐 시간을 때울 때 핀터레스트를 보는데요. 핀터레스트는 랜덤 이미지를 모아놓은 사이트입니다. 거기서 겉표지는 아무것도 없는데 안쪽 면에 풍경으로 인쇄한 전시회 초대장 봉투를 봤습니다. 이번 책으로 딱이다 싶었죠. 책의 겉표지는 심플하게, 속표지는 화려하게! 이 작가님의 문체는 담백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고소한 매력이 있어서 딱 제가 만들고 싶었던 책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에 들뜹니다. 이 책은 일반 인쇄가 아닌 pod를 경험해보려고 합니다. pod인쇄는 선 인쇄 후 판매가 아니라 선 판매 후 인쇄입니다. 주문하면 그때그때 만들어 배송하는 책이죠. 새로운 인쇄 세계를 내년에는 경험할 수 있겠어요.








그리고 몇 개의 콘텐츠를 구상하고 있는데요. 하나는 정말 옛날옛날부터 하고 싶어 몸서리치는 중인 <작가의 첫 책>입니다. 전 초판 덕후인데요. 독립출판의 초판은 구하기 쉽지 않아요. 인쇄 수량이 적기 때문이죠. 왜, 처음은 애틋하잖아요. 그 애틋한 첫 책을 조명하고 싶었어요. 작가가 아닌 책을 말이죠. 특히 첫 독립 서적은 더더욱이 작가의 날것이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갖고 싶고 그래서 더 덕후가 되었어요. 누가 보기엔 허술해 보이고 누가 보기엔 이상해 보여도 내 첫 책에 관한 작가의 애정 스토리를 듣고 싶더라고요. 하지만 단순 인터뷰 콘텐츠는 정말 싫어서 머리를 몇 년 동안 싸맸어요. 제가 전문 인터뷰어도 아니고 인터뷰는 자신 없더라고요. 블로그나 인스타로 다 담을 수 있을까? 고민도 했고요. 유튜브나 팟캐스트는 부가 장치가 필요해 어려워 보이고요. 웹진도 생각해봤지만 플랫폼이 마땅치 않더라고요. 책으로 만들까 했는데 온라인 텐츠로 만들고 싶어서 적당한 플랫폼을 찾는 중입니다.


다른 하나는 <단어장>을 만드는 거예요. 1. 한정적인 매일 쓰는 단어에서 벗어나고 2. 기존 단어의 뜻을 내 식대로 해석하는 과정을 겪어보고 싶어서요. 각자가 매일 하나의 단어를 정해서 사전적인 뜻을 남기고 아래에는 내가 느끼는 뜻을 남겨요. 서로 생각하는 느낌도 공유하고요. 그렇게 한 달 치 단어를 모아서 단어장을 만들어주려고요. 찾아보니 단어사전이나 단어 책이 있더라고요. 근데 뭔가 정해진 단어를 나누기보다는 각자가 주변을 돌아보며 찾은 단어는 어떤 건지 더 궁금하더라고요. 이건 워크숍으로 먼저 열어볼 계획이고 하게 되면 4월쯤 열어보려고 합니다.


하나는 <편집장은 토크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독립매거진을 본 적 있나요? 정말 매력적인 매거진이 많아요. 전 원래 잡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독립출판에 빠지면서 잡지에 눈을 떴습니다. 다양한 소재와 관점이 너무 흥미롭더라고요. 그런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의 생각과 스토리가 궁금했어요. 하지만 매거진이 메인이 아닌, 매거진의 '소재'를 메인으로 한 토크를 열어보려고 합니다. 쉽게 예를 들면 반려동물을 소재로 한 매거진이 있다면 매거진의 제작 과정이나 인터뷰 에피소드가 아닌 편집장이 생각하는 반려동물에 관한 생각이나 방향성, 성향, 취향 등을 나누는 거죠. 참여자도 자신만의 반려동물에 관한 생각을 나눌 수 있고요. 이건 학연지연책연 하나도 없는 맨땅에 헤딩인데요. 그래도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 자리를 잡아가겠죠? 이것도 해보고 싶은지가 너무 오래라 이제는 구체적인 계획을 2월 안에 짜서 3월부터 섭외해 보려고요. 혹시 유로파도 얘기를 들어보고픈 매거진이 있다면 추천해 주세요. 섭외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시도는 해볼 수 있으니까요.


메이트로서 <펀딩을 돕는 일>도 계속하고 있어요. 본업도 고객에게 잘 모르는 상품이나 브랜드를 인지하게 하고 경험하게 하는 일을 하다 보니 펀딩 스토리보드 짜는 게 잘 맞더라고요. 그래서 분야 상관없이 펀딩 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역시 저는 창작자를 돕고 싶은 마음이 커서, 성공하든 실패하든 후원금의 n%로 계약합니다. 펀딩이 실패하면 제가 받는 돈은 없어요. 저도 개인으로 펀딩을 진행하면서 섭외에 관한 부분이 굉장히 스트레스였어요. 저 혼자 모든 걸 뚝딱뚝딱 만들 수 있으면 좋지만 그럴 수 없으니 힘들었고 외주가 필요한 부분은 외주비를 선지급해야 하니 힘들었죠. 돈은 펀딩이 끝나고 2주나 지나야 입금되는데 말이죠. 펀딩에 실패했을 때의 걱정도 만만찮았어요. 그래서 창작자가 부담 없이 저를 찾을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저 개인적인 욕심으로도 여러 분야의 펀딩을 경험하고 싶었고요. 하고 싶은 게 있는데 걱정으로 펀딩하지 못하는 사람을 돕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성공 실패 상관없이 계약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습니다. <펀딩 스터디>는 1월부터 워크숍에 도전했어요. 창작자들끼리 서로 응원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서 스터디도 계속하고 싶어요.


<독립출판 만들기> 워크숍도 아주 하고 싶은데요. 으쌰으쌰 하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요. 워크숍이 끝나고 완성한 책을 모아서 짜잔할 때의 그 희열이 저에게 큰 응원과 영감이 돼요. 어떤 워크숍보다 하고 싶은 워크숍이지만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워크숍입니다. 많은 작가님의 워크숍을 도우며 보니 저는 아직 나만의 뾰족한 분위기가 없어서 고민 중입니다. 


그와 비슷하게 <글쓰기 워크숍>도 너무 열고 싶어요. 이건 제가 진행하는 게 아닌 작가님 초청 워크숍입니다. 여러 분야의 글쓰기 달인을 모시고 워크숍을 열고 싶어요. 최대한 많은 글 모양의 워크숍을 여는 게 목표입니다. 

그 외에도 업체와 기획 중인 프로그램이나 본업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몇 있습니다. 요즘은 독서 모임을 하고 싶어서 드릉드릉하고 있어요. 소설을 읽어야겠다!와는 별도로 ‘인문학으로 풀어낸 과학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요. (여담이지만 아빠가 물리 쌤이었던 피가 있긴 있구나 생각합니다.) 과학자와 함께하는 독서 모임이 있다면 당장 달려가고 싶다니까요! 과학잡지 <에피>도 꾸준히 읽고 있어요. 과학적인 책이 없을까 찾다가 <토끼와 해파리>라는 SF 단편 소설집도 재밌게 읽었답니다. SF를 읽으며 과학적인 이야기를 하는 모임이 어딘가 있을 거 같지 않나요?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과학 인문학을 읽는 사람의 평균이 되려고요!







지인이 “이아님은 제가 아는 누나랑 성향이 비슷해요.”라며 누군갈 소개했습니다. 무려 자기 계발 인스타 계정이 따로 있는 클래스 101 기획자였죠. 멋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를 뚜렷이 내보이며 사람들을 이끄는 이 시대의 리더였어요. “비슷하다고요? 전 이렇게 멋있지 않은데요?” 일 벌이고 다니는 게 비슷하다고 했어요. 일상 수다에서 일을 만드는 성향이 비슷하다고 했습니다.


어제는 브랜딩 강연을 들었습니다. 좋아하는 강연자여서 그분의 책도 사고 유튜브도 보고 클래스도 구독하고 강연도 꼬박꼬박 듣습니다. 비슷한 주제로 책도 쓰고 유튜브도 하고 클래스도 열고 강연도 하는 데 들을 때마다 새롭더라고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하며 어떻게 하느냐'가 셀프 브랜딩의 핵심이라고 했습니다. 잇는 사람 혹은 돕는 사람을 나의 역할로 잡았는데요. 강연을 듣고 나니 지인이 말했던 비슷하다는 말이 닿았습니다. 저 멋진 리더와 저는 ‘무엇을 하는지’는 비슷하지만 ‘어떻게 하는지’는 자신이 리더가 된다와 자신이 메이트가 된다로 완전 달랐죠. 


유로파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조금씩 ‘어떻게 하느냐’가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막연히 “함께 하는 건 즐거워! 짜릿해!”를 외치며 일을 벌여왔지만 지금은 잠시 정리할 때라는 생각도 들어요. 똑순이 유로파와의 대화는 저에게 많은 용기점을 줍니다. 유로파를 따라 저도 올해의 문장을 생각해 봤어요. ‘느리든 찌질하든 분명하게 태엽을 돌리자.’








요즘 유행하는 동물 짤 성격 테스트가 있다고 하여 해봤습니다. 유로파에게도 보낼 테니 다음 편지에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알려주세요. 헤헤. 저는 ‘떼쓰는 고양이’가 나왔습니다. 될 때까지 떼쓰는 모습의 고양이 짤이 아주 저의 모습이더라고요. 유로파는 협업할 때 어떤 타입인가요? 저는 어린애처럼 잘한다! 잘한다! 우쭈쭈! 해줘야 더 신이나서 활개칩니다. 협업의 특성은 피드백이 오간다는 점입니다. 피드백은 꼭 필요하죠. 더 나아가기 위해 여러 시선을 모아야 합니다. 저는 "다 좋은데, 이건 별로야." 보다는 "이걸 이렇게 고치면 어때?"를 쉽게 받아들입니다. 고칠 방향성을 논의하고 나아지기 위해 나를 불사르죠. 대신 "별로야."가 나오는 순간 급격히 기분이 땅에 붙어서 눈에 쌍심지를 켜고 상대에게 조목조목 따져 별로가 아님을 끌어내야 속이 풀립니다.


며칠 밥을 천천히 먹어서 입도 천천히 움직이는 게 습관이 되었던지 '별로야.' 피드백을 따지려다 타이밍이 늦었습니다. 집에 오는 길 내내 계속 계속 따지지 못함이 너무 너무 분했어요. 하지만 계속 곱씹다 보니 계속 들여다보게 되고 계속 보다 보니 결국 그 말이 맞았음을 인정했습니다. 네. 별로가 맞았어요. 바로 집으로 뛰어와 그 피드백대로 컨셉 보드를 수정했습니다. 이전보다 깔끔하고 보기도 수월했죠. 내일은 피드백을 해준 분에게 고맙다고 해야겠어요. 그동안 빠득빠득 우긴 건 미안했다고도 하고요.


이참에 저의 약점을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합리화가 익숙해진 제 시선으론 생각해내기 어렵더라고요. 그러니 유로파도 괜찮다면 저의 약점을 하나만 말해주세요. 여러개는.. 마음 아프니까.. 하나만요.. 김경일 교수님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나의 발전을 위해서는 약점을 감추기보다 제대로 마주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올해는 솔직하게 찌질하고 솔직하게 느슨하기로 했으니 나를 솔직하게 보려고요. 그러기 위해 유로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를 따져본 적 없어 지금 당장은 어렵다면 편지가 끝나기 전에만 알려주세요. 그동안 유로파가 저를 생각하고 있다면 행복하겠군요. 청색 마음과 함께해도 좋고요.



이전 05화 조명은 빛납니다. 어디서든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