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5

by 한운후

*이야기는 현재(지구에서)와 과거(달)가 번갈아 가며 진행됩니다.




[달]


하나는 샤워실로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길을 내려갔다. 짓궂고, 힘찬 뜀뛰기라면 단 몇 걸음 만에 굴곡진 긴 복도를 지나는 게 가능했다. 천장이 낮았기에 장난기(혹은 모험심) 있는 사람들에겐 다소 아쉬울 수도 있는 구간이었다.

실외 상황을 실시간으로 촬영한 스크린은 물고기 양식장 통로에 있던 게 마지막이었고, 모든 벽엔 길게 이어진 한 줄의 빛나는 선이 설치되어 있었다. 지금쯤 자기 친구가 잠에서 깨어났을지 생각하며, 앞뒤를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만 어두운 터널에서 기다란 빛에 의지해 걸어갔다.

샤워실 입구 벽에 걸려 있던 흰색 테두리 액자 안에 회백색을 띠는 고운 가루가 납작하게 펼쳐져 있었다. 월면에서 채취한 흙 표본이었다. 그녀는 샤워실 입구를 지나칠 때마다 그곳에 액자가 걸려 있는 이유나 의미 따위를 유추하곤 했다.(지구가 아무리 아름답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밖에 나가면 사방에 널려 있는 흙을 굳이 퍼올려서 액자로 만들 생각을 떠올리지 않았다.) ‘물을 낭비하지 마시오.(Do Not Waste Water.)’ 혹은 ‘어디를 가든지, 너만의 것으로 바꾸어라.(Wherever you go, change it your own.)’ 같은 대차고 어정쩡한 표어들이 떠올랐다.
그녀는 지구로 돌려보낼 옷가지를 전부 벗었고, 기린의 혀처럼 생긴 길쭉한 캐비닛 안에 던져 넣었다. 같은 곳엔 이미 말벌 둥지처럼 생긴 새 옷이 진공 포장되어 준비되어 있었다.

구름 같은 수증기가 피어올랐고,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얼굴을 두드리는 감촉을 느꼈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느낌이었다. 몸의 다른 곳에 비해 자기 발 주변만 유독 물기로 젖어드는 걸 느꼈다. 물줄기가 머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맑은 물방울들은 줄기차게 흐르다가 어느 곳에서 머뭇거리기도 했다. 지구와 달리 확연한 고집을 피우는 물이 얼굴과 몸 전체의 곳곳에 달라붙었고, 다리를 흔들면 수많은 물방울들이 떨리며 비늘로 덮인 인어의 몸처럼 반짝였다.

고갤 든 그녀가 검은 머리카락을 흔들자 겨울나무의 눈처럼 방울들이 쏟아져 내렸다. 이마에 매달린 구슬 같은 물방울은 짧은 자국을 남기며 획 하고 옆으로 움직였다. 움직임에 따라 모습과 성질을 바꾸는 물은 마치 힘 넘치는 춤꾼처럼 살아있었다.



하나는 이마부터 목 뒤까지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리고 두 손을 뒤로 올려 머리카락을 말았다.

“로필라, 예나가 지금 즈음 내 메시지를 읽었을까?”
그녀는 벽에 부착된 골판 재질 벨트에 손바닥을 가져갔다. 잠시뒤, 벽에 내장된 골판의 띠가 재빨리 두 번 반짝였고, 곧고 굵직한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로필라, 메시지는 ‘확인’ 처리되었습니다.”

하나가 드라이룸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면, 지금 그녀 위치가 어디인지 알아봐 줘.”
“로필라, SubLuna-2241, 9A 주방, 일정한 움직임이 감지됨.”

그녀는 갈아입을 옷을 한 손에 쥔 채 서둘러 유리 튜브의 문을 열었다. 천장의 조명이 일직선으로 켜지며 주광색 빛을 발했다. 10m 길이의 엠보싱 패턴 회색 고무 발판 위에 올라서자, 유리 튜브는 반투명한 재질로 바뀌었고, 내부의 바람을 순환시켰다. 강하게 이는 바람에 그녀는 푸른 들판에 혼자만 있는 것 같았다. 반대편 문에 다다를 때까지 두 팔을 벌렸다. 뜨거운 회오리바람은 멈추지 않았다.
따듯한 바람을 타고 구름 위로 올라간 새가 파란 하늘을 활공하는 장면이 그녀의 눈꺼풀 아래에 고스란히 그려졌다.



[지구에서]


맨 윗부분 꼭지가 잘린 피라미드 모양 기기 위에 서른 개가 넘는 홀로그램 화면들이 떠있었다. 그녀는 녹색 빛의 평면 상자들을 멈추지 않고 헤집었다. 스타를 어떻게든 가상 세상으로 데려가고 싶었고, 뒤숭숭한 마음은 어제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일을 마친 시간이 훌쩍 지났어도 걸음이 떼이지 않았다. 아까 전 스타에게 차트를 슬쩍 들이밀며 설득적인 내용을 웅얼거렸던 걸 여전히 후회했다. 적어도 그녀가 소년과 눈높이를 맞추기라도 했다면, 당장의 기분은 훨씬 편해졌을 수 있었다.
AI 로필라는 일시적으로 시스템 동결 상태였기에, 일일이 두 손으로 웹을 뒤적여야 했다. 단순히 스타가 시각적 자료로 간략하게 요약된 ‘다음 세상’을 볼 수만 있다면, 반은 해결한 것이었다. 그녀는 방대한 자료들 중 자기 얼굴로 튀어나와 거미줄처럼 찰싹 딜라붙 은 광고를 잡아 펼쳤다: 핵 벙커, 20년 치 비상식량, 공동 해저 시설 겸비, MWH(분만대기시설)와 의료팀 상주, 농업시설 및 식량작물 종자 보유, 기타 등등.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V-프로젝트의 홍보용 영상’은 건초더미 속의 바늘과 같았다.

하나는 광고 홀로그램을 반으로 접어 휙 던져 버렸다.
그녀 역시도 V-프로젝트를 직접 경험한 적이 많지 않았지만, 늘 잊지 않으려 하는 건 아이의 선택이었다. 사용자가 직접 차원을 이동하는 것만큼 훌륭한 이해는 없을지라도, 꿈같은 환상의 세계를 설명하려 소년의 머리에 마스크를 뒤집어씌울 수는 없었다. 마치 다리 다친 사슴을 기절시키려는 계획과 같았다.



여러 도형들이 한 줄로 둥둥 떠 있었다. 하나는 홀로그램 창을 잠깐동안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노란색 초승달 모형을 잡아당겼다. ‘VERUMARS’를 의미하는 알파벳들이 찰흙 뭉텅이 같은 추상적 모양을 하고 있었다. 각자의 독립적인 자리에서 회전을 하고 있는 도형들은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건드려 주길 기다리는 듯 보였다. 그녀는 한 홀로그램 덩어리를 톡 건드리자 주위 조명이 어두워지고, 영상이 재생되었다.
달에서 지구로 귀환한 후,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베루마스’에 관련한 모든 정보를 살펴보는데 썼다. 그녀가 훑어 넘기는 구간들은 이미 오래전 봤던 것들이었다. 가상 세계를 놀이동산 마냥 포장하는 새로운 영상들도 그 속의 내용은 늘 똑같았다.

주황색 선으로 테두리가 둘러진 청록색 글씨로 ‘Major Update’라고 쓰인 강렬한 단어가 헬륨 풍선처럼 재생 버튼 옆에서 반짝였다. 그리고 화면의 맨 위에 있던 플립 시계의 검은 카드들은 매 초마다 한 장씩 넘어가며 불길한 흰색 숫자들을 바꿔 갔다. 카운트 다운을 하고 있는 시계였다.
그녀는 마음속 한 구석에 도화선이 흰 불꽃을 사방으로 터뜨리며 짧아져갔다.



최근의 홍보 영상들은 마치 새로운 게임이 출시된 것처럼 역동적이고, 빠르고, 화려한 것들 투성이었다. 영상의 어느 부분엔 인간의 손이 전혀 닿지 않은 듯한 자연의 존재가 대다수를 차지한 장면이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연의 다양하고 독특한 특징을 빼닮은 인공물들이 가득한 세상이었다. 물론 호수, 바위, 들판, 안개, 등과 같은 ‘자연’의 요소들도 당당히(혹은 마지못해) 세상의 한 구석을 차지했지만, 그런 장소는 터무니없이 적었고, 그저 부수적인 장식일 뿐이었다. 또한 그녀는 장대한 신전, 혹은 제단처럼 생긴 거대 건축물들이 존재하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전부 인간의 손길이 남아있는, 인위적인 목적을 지닌 환경이었다.

하늘에 흠집을 내거나, 구름을 반으로 자를 수 있을 것 같은 새빨간 첨탑은 붉게 달아오른 바늘처럼 보였다. 옆으로 뉘어있는 항아리 모양의 정거장은 겉이 동양풍 구름무늬로 장식되어 있었고, 그건 절벽 위에서 바다를 향해 지어져 있었다. 도시 위를 떠다니는 장대한 주사위 형태의 시계 위엔, 두 손으로 별을 들고 있는 네 천사의 조각상들이 각각의 모서리를 장식하고 있었고, 땅의 갈라진 틈새에는 심장 박동처럼 밝은 빛으로 번쩍이는 또 다른 지하 도시가 존재했다. 바다나 산간 지방을 위한 공간을 기대하기 어려운 세상이었다.

하나는 층층이 쌓인 샌드위치 같은 도시들을 바라보며 단 한 명의 사람이라도 그곳에서 가치를 지닌 개인으로 취급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영상에 소개된 도시가 고작 베루마스의 한 모래알 같은 일부 일거란 가능성에, 그녀는 벌써부터 멀미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만약 현세만큼이나 불필요한 속도를 가중시키며 굴러가기 바쁜 암울한 도시가 가상 세계까지 이어진다면, 그녀는 자진해서 천진난만하다는 비난을 받아들일지언정, 베루마스 프로젝트를 좋게만 볼 수 없었다.

불덩이 유성이나 하늘을 가리는 검은 쓰나미를 피하는 게 가능하다면, 베루마스 세상의 어떻게 생겼든 시도해 볼만한 가치가 있었다. 소중한 사람의 손을 계속 잡을 수 있는 것, 육체에 얽매이지 않은 채 새로운 세계에서 경이로운 날들을 살아가는 것. 하나는 여하튼 그게 백화점에서 마음에 드는 신발을 고르는 것과 다른 차원의 문제일 거란 생각이었다.



창가 너머의 하늘은 검은 망토가 내려앉으며 황금빛 발꿈치를 가린 듯 금방 어두워져 있었다. 내리 비추는 은색 점들은 하늘에서 소리도 없이 반짝였다. 그녀는 의자를 밀어 넣고 일어나, 두 팔을 앞으로 뻗었다. 굳은 허리가 잘게 부서지는 느낌이었다. 피라미드 모양 기기 위쪽 렌즈를 손으로 가리는 시늉을 보이자, 방 안을 초록색으로 가득 메우던 홀로그램 상자들이 사라졌다. 가방에 안경과 손톱 손질 도구를 집어넣었고, 홀로그램 기기를 집어 들었다. 기하학적 문양이 빼곡한 표면엔 부드러운 고무 재질로 처리가 되어 있었다. 모서리마다 벌어진 얇은 실금의 틈새로 미약한 연두색 빛이 밝았다 꺼지길 반복했다.
하나는 기기를 가방 안에 밀어 넣으며, 내일 스타에게 들려줄 베루마스에 대한 얘기들을 떠올렸다. 이번엔 타오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다. 소년 앞에서 발버둥 치던 그녀의 걱정도 따지고 보면, 부질없는 가능성에서 갈라져 나온 파편에 불과했다.

갑자기 밖에서 빈 컵이 쩔그렁대며 바닥을 뒹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정적이 감돌았다. 복도의 불은 전부 꺼져 있었다. 오직 건너편 창문에 나타나 재빨리 사라지는 파란색 불빛이 전부였다. 특별한 목적을 가진 듯 보이는 파란 안전 경고등은 몇 초마다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그녀를 멍하게 만들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작은 알갱이가 뒤섞이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쉰소리가 벽을 타고 울려 퍼졌다. 그녀는 주위 벽을 두리번거렸고, 습관처럼 로필라를 찾으려 했지만 이곳은 더 이상 최첨단 달 기지가 아니었다.
사람의 소리 같지 않았지만, 약싹 빠르고 교묘한 움직임은 생각이 없는 설치류라 하기에 부자연스러웠다. 그녀는 반쯤 열린 문까지 걸어갔고, 조심스레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파란빛을 받아도 거의 반사되지 않는 검은 천을 어깨에 두른 누군가가 바닥에 금속 물건들을 떨어트렸다. 불쾌한 쇳소리가 복도를 따라 길게 뻗었다. 보라색 천이 어둠 속에선 검은색으로 보인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았다. 복도에 이미 퍼져있는 비릿한 악취는 그녀로 하여금 한 사람을 떠올리게 했다.

“이 시간에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핏기 없는 설교자의 얼굴이 한 줌의 조명 속에 나타났다. 망토 아래서 연신 손이 움직였고, 어둠 속에서 눈은 쓰레기장의 삶에 잔뼈가 굵은 고양이처럼 빛났다. 그는 악의가 없다는 걸 증명하려는 듯 기이한 미소를 드러냈다. 목을 탄탄히 조이는 망토와 벌레모양의 매듭 탓에, 설교자의 얼굴은 평소보다 짙은 자줏빛에 가까웠다. 그의 검은 눈동자와 대비되는 붉은 기는 눈 위에 얇은 붓으로 여러 번의 뾰족한 획을 그린 것처럼 선명했다.




그의 망토 위에서 빛과 그림자가 파도처럼 이어지더니, 바닥에 호두와 캐슈너트가 와르르 쏟아졌다.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와 설교자의 고정된 시선은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조합이었다. 하나는 그걸 겉으로 절대 겉으로 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누가 이제껏 12종 혼합 견과 세트를 훔쳐 다니고 있었는지 놀랍지도 않았다.

그는 하나 앞에서 뻔뻔한 행동을 애써 고수했다. 철제 수납장 옆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그의 손가락들은 땅콩을 포함한 각종 조그마한 견과류는 물론, 해바라기씨 한 알도 빠져나갈 틈을 내어주지 않을 것처럼 부지런했다.

“내일 모자라지 않게 다시 꺼내 줄게요. 그러니까, 거기에 있는 물건들은 건드리지 마세요.”
그녀는 또박또박 말하며, 등 뒤로 주먹을 쥐었다.

설교자는 말소리를 들은 체 만 체했다. 그녀가 모습을 전부 드러내려 복도로 걸어 나왔고, 그제야 설교자는 한 손을 겨드랑이에 낀 채 바닥에 웅크렸다.

“나는 이 빛과 소금을 가질 자격이 있어.”
설교자가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나른한 두 눈은 어둠 속에서 한결 더 파리해 보였고, 그의 입과 턱을 완전히 가릴 듯 커다랬다. 망토 아래로 작은 알갱이 몇 개가 후드득 떨어졌다.

그중 한 알이 수납장 아래로 굴러 들어갔다. 그는 철통을 향해 몸을 던졌다. 곧이어 재활원의 밤을 뒤흔드는 철의 소음이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그는 바닥 틈새로 손을 욱여넣었고, 겨우 머리카락과 먼지 묻은 씨앗 하나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이봐, 너도 살고 싶지? 만약 하늘의 형벌을 용케도 피해서 정말로 살아남고 싶다면, 콧구멍을 높이 쳐들고 나를 따라와야 해. 안 그러면, 너도 다른 되바라진 새끼들처럼 청천 같은 강물 속에 가라앉고 말 테니까...”

“알겠어요. 지금 배가 고픈 거죠? 하지만 지금은 침대로 돌아가야 해요.”

설교자가 씨앗을 보석처럼 여기듯 옆구리로 가져갔다.
하나는 그의 망토 아래 부분에서 잠시 그녀의 시선을 멈췄다. 손바닥 크기의 쇠붙이가 순간 파랗게 반짝이더니 설교자의 팔꿈치 뼈와 장막 아래로 사라졌다. 아미르를 부른다면 아무 일이 없더라도 오기야 하겠지만, 그녀는 눈만 깜빡이며 잠자코 서있었다. 무엇보다 그를 불러낼 마땅한 이유가 없었고,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그녀는 설교자의 얼굴이 머리에서 떠나가지 않았다. 눈썹 뼈는 빛 아래에서 울퉁불퉁 튀어나와 썩은 나무처럼 보였고, 양 볼부터 턱의 한 점까지 이어진 그림자는 발골칼의 등처럼 유려하고 새까맸다.

그녀가 천천히 허벅지를 쓸며 땀을 닦았을 때 설교자는 그녀의 발이 떨어졌나 확인하려는 듯 바닥에 귀를 붙여 엎드렸다. 마치 특별한 이유 없이 쉽사리 잇몸을 드러내는, 사나운 개와 같았다.

“저 사람, 이 사람을 탓할 필요 없어. 우리 모두 숲에서 쫓겨난 거니까, 구원의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면 그뿐이지. 살고 싶지 않아? 보아하니, 너도 지금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살고 있는 것 같은데.”

그녀의 등골에 차갑고 쓰라린 소름이 돋았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예외 없이 전부 역겨울 따름이었다. 설교자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을 한 채 균형을 잡으려는 듯 힘껏 턱을 당기고 있었다.

“그래.”

그의 머리가 오뚝이처럼 일어났고, 하나는 더 이상 아무런 대답도 하지 말해한다는 걸 직감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입과 몸동작을 통해 스스로를 무작위로 표현했다. 그건 수치심으로 두둑이 찬 용기였다. 더군다나, 그는 앙상한 오른쪽 무릎으로 바닥을 찍어내리 길 반복했는데, 소리는 단단한 과일 껍질이 서서히 으깨지는 것과 비슷했다.

그녀는 그가 계단을 향해 사라질 때까지 손가락 한 개 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바닥엔 두 걸음마다 형편없는 추리극의 단서 같은 견과류 알맹이들이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었다. 캄캄하고, 고요하고, 먼 복도의 끝에서 설교자는 정확히 그녀를 응시하거나, 발소리를 죽인 채 그녀가 보급품 저장고 안으로 다시 들어가길 기다릴 수도 있었다. 파란 불빛은 한참 전부터 소리 없이 주변을 나부꼈다. 희한한 얼굴은 자취를 감추었고, 그녀는 다시금 주변 상황이 생생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정신과 체력은 견줄 수 없이 단단하고 고약한 연마재에 갈려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발바닥의 이물감을 느꼈고, 한쪽 발을 들었다. 어둠 속 발바닥이 있던 자리에 조그맣고 희미한 뭔가가 놓여 있었다. 흰색의 작은 뭔가는 제자리에서 빙그르 돌더니 그녀의 반대쪽 신발 앞코로 굴러갔다.

그저 두껍고 둥근 잣 알갱이 한 개였다.




작디작은 푸른 점 위에서,

<블루닷 이펙트>

The Blue Dot Eff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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