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기대

4

by 한운후

*이야기는 현재(지구에서)와 과거(달)가 번갈아 가며 진행됩니다.




[달]


하나는 벽면 스크린의 ‘월면 실외 활동’ 명단에 자기 이름이 제대로 올라가 있는지 다시 확인했다. 흰색의 격자 칸 안에서 빨간색으로 천천히 깜빡이는 이름과, 일주일 전에 예약된 루나바이크(LunaBike)의 식별 번호가 함께 올라가 있었다.

그녀는 뒤돌아 가볍게 흰색 바닥을 차고서 뛰어올랐다. 달에 오른 첫 번째 발레리나처럼 발 끝을 뻗었고, 검은 고양이 꼬리 같은 머리카락은 도약에 맞추어 어깨 위에서 살랑거렸다. 모든 곳에서 발걸음은 종이처럼 가벼웠다. 한 손에 잡히는 대부분의 생활물품들은 마치 속이 거위의 털로 채워진 것 같았다.
온통 밝은 살구색을 띠는 원통형 모양의 방 안에서 사색에 잠길만 기회가 많았다. 그녀는 직접 몸을 움직이다 느끼는 감각을 즐기곤 했다. 결코 무뎌지거나, 그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흘려보내길 원하지 않았다. 생각의 속도계가 여전히 지구에 맞춰져 있던 탓에, 그녀는 자신의 몸과 정신이 받아들이는 시간에 차이가 있다는 느낌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리고 조금의 욕심이 허락된다면, 그것에 결코 익숙해지기 싫었다. 당장 눈앞의 것들이 만족스럽고 예뻐 보여서,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문을 지나서, 그 너머의 또 다른 문으로 들어갔다. 원기둥 모양의 방들은 아이롤(IROLE)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각각의 요원들에게 배정된 개인 공간이었다. 비교적 조명이 어둡게 낮춰진 방을 지날 때마다 발뒤꿈치를 들어 올린 채 걸었다. 순간, 어느 방에서 크리켓 경기에 쓰이는 방글라데시어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곧바로 잔잔한 코골이가 이어졌다. 똑같은 원기둥 공간이라 할지라도, 전혀 다른 느낌을 풍기는 이유는 그저 실내조명의 밝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방에 거주하는 사람의 취향, 문화, 혹은 국적에 따라 생겨난 특색 때문이었다. 공용 시설을 이용하려 모든 방을 거치는 사람은 마치 작은 세계여행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공간적인 측면에서 복도를 줄이는 게 서브루나 기지의 중요한 사항들 중 하나였다. 주거시설을 위에서 내려다본다면 마치 깨끗한 흰색의 벌집과 닮아있었고, 기지의 모든 요원들은 기꺼이 군집의 전반적인 효율을 위해 자신들의 사생활을 ‘지구’에서와 다르게 받아들였다.

하나는 기지 중앙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복도로 무사히 빠져나왔다. 반투명한 벽 위에서 천천히 펄럭이던 ‘IROLE’ 깃발 사진이 사라지더니, 검은 하늘과 회색 땅 위에서 움직이는 조그마한 흰색 점들이 나타났다. 당장 그녀가 있는 곳에서 위로 100m, 월면의 평평한 우주공항에서 선회활동을 수행하는 요원들의 영상이었다.

태양빛에 반짝이는 용암 동굴 입구의 은빛 테두리, 그리고 야외에 설치된 수많은 카메라에 실시간으로 촬영되는 장면들이 실내 곳곳을 차지했다.
그러한 모니터들이 없었다면, 기지의 인원 대부분은 달의 지하에서 지독히도 단조로운 나날만 보냈을 게 분명했다.



[지구에서]


물이 쓸려내려가는 소리가 한 차례 흘렀고, 병원과 잘 어울리는 버터색 문이 안쪽으로 열렸다. 하나는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뒤로 두 걸음을 물러났다. 아미르의 뒷모습이 화장실 문간에 나타났을 때 한 걸음을 뒤로 더 물러났다.

“되바라진 새끼 같으니라고!”

신음과 투정이 섞인 날카로운 남성의 목소리였다. 하나는 잠시 숨을 죽였다. 보라색 천조각을 목에 두른 깡마른 남자가 시큼한 악취를 풍기며 아미르에게 부축을 받고 있었다. 그는 앞으로 한 걸음씩 걸음을 디딜 때마다 자신의 조력자를 경멸하는 단어들을 내뱉었다. 그녀는 아미르의 이마가 굵은 땀방울 몇 개와 반짝이는 습기로 덮여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설교자’는 그의 팔에 체중의 반 이상을 의지한 채 바닥을 잘 걷다가도, 속도가 조금이라도 빨라졌다 느끼면, 공격적으로 팔꿈치를 휘둘렀다. 철제 스프링 덫에 걸린 야생동물 한 마리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아미르는 어깨를 으쓱였다. 힘든 축에도 끼지 않는다는 표현이었다. 유니폼은 원래 색을 못 알아볼 것처럼 고동색 때로 더럽혀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세탁을 한지 몇 주는 지나버린 상태 같았다.

“누구를 기다리는 거야?” 아미르는 입가에 힘을 준 채 하나에게 물었다.

“타오. 아이들이 그림 그릴 모델이 필요한데, 잠깐 도와주고 온 데서.”

하나가 화장실 앞에 남겨진 하얀 신발 한 짝을 집어 들며 말했다. 그다음 설교자 앞에 재빨리 내려놓고, 병실 입구까지 다시 뒷걸음질 쳤다.

“너는... 미쳤어. 나와 다르게... 미쳐있다고!”
설교자가 잠에 빠져드는 무기력한 표정과 상반되는 힘으로 고함을 쳤다. 허리를 격하게 비틀고는 무릎을 안으로 꺾인 괄호처럼 오므렸다. 축 늘어져버린 그는 만약 아미르가 두 팔을 풀어 버린다면, 곧바로 단단한 석재타일에 턱뼈가 부서질 상황이었다.

보라색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가진 듯 보이는 남자는 자신을 가까이 있으면서 눈을 마주치길 거부하는 사람을 집요하게 노려보곤 했다. 일종의 교감일 수도 있었지만, 그런 행동의 이유가 아직 명확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쳐다보는 방식은 ‘우리 잘 지내보자.’라는 제안이라 보기 힘든 것이었다. 그는 과거 빈사 상태로 안젤로 대원들에게 구조되어, 여러 재활 시설들을 의도치 않게 전전해야만 했다. 뻔뻔하게도, 그는 자기 신체가 놓인 모든 곳에서 높은 편의를 기대했고, 재활원에서 유일한 남자 일꾼이었던 아미르는 의사와 상관없이 집사나 하인이 될 상황이었다.
설교자는 자신이 ‘흰 꼬리’였다는 사실을 결코 숨기려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폐쇄 도시 생존자들이 타인들로 하여금 추측을 하지 못하도록 자기 가진 정신적 힘을 모두 쏟으려는 것과 다른 선택이었다. 되려 그 시절을 두말할 것 없는 낭만의 시기라 여기는 듯했다.

“악마의 여섯 개의 다리 중에 쓸모없는 건 4개야!”

설교자가 목청에 힘을 주어 자칫 ‘고요해질’ 뻔했던 병실을 뒤흔들었다.

“누구도 풀 수 없는 매듭으로 그것의 뒷발을 꽉 묶어두어야 해, 알겠어? 안 그러면 그게 자기 무덤인 줄 모르도 땅을 파고들 테니까. 별들이 반짝이는 가을날 우리가 그걸 똑똑히 봤어! 추운 숲 속에서 말이지...”

설교자는 노란빛이 도는 끈적한 손바닥을 뒤로 뻗어 아미르의 코와 입을 더듬더니, 곧 물풍선처럼 흔들었다. 아미르가 고개를 뒤로 휙 젖히자 그는 움츠러든 부엉이처럼 두 눈을 활짝 뜬 채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손을 천천히 내려 자신이 두르고 있던 보라색 애착 이불의 금속 단추를 주물렀다. 금색 단추가 거무튀튀한 때로 범벅된 천과 차갑게 식은 손가락 사이에서 우아한 광택을 발했다.

아미르가 창문을 열고 이마를 닦는 동안, 설교자는 잠시 온순한 아기로 변한 것처럼(혹은 그 아기의 팔에 껴있는 곰인형처럼) 눈만을 깜빡거렸다. 그러고는 빈틈을 포착한 동물처럼 본능적으로 앙상한 팔을 뻗어 뒷목 옷깃을 움켜쥐었다. 놀랄 건 없었다. 아미르는 이미 옷장에 목이 늘어난 셔츠를 여러 개 갖고 있는 사람처럼 그 손을 뿌리쳤고, 오줌이 덜 마른 환자복 바지를 옆으로 치웠다. 그리고 의연한 눈빛으로 뒤돌아 침대보의 주름을 폈다.

설교자는 마치 자신이 폐쇄 도시에 있는 동안 정성으로 가꿔온 관점을 만천하에 무시당한 것처럼 절규했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화장터 굴뚝처럼 펑펑 쏟았고, 아이 같은 울음소리는 마치 쇠구슬 여러 개가 꿰여 있는 플라스틱 케이블이 바닥에 질질 끌려다니는 소리와 비슷했다. 까만 손톱이 나날이 길어질수록 아미르의 목은 눈에 띄지 않는 자잘한 상처들로 채워졌다.

설교자는 마지막으로 침을 튀기며 아미르에게 괴물이라고 두어 번 소리쳤다. 기대했던 것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반응 때문이었다. 하지만, 비석 위에 새겨진 듯 차분했던 아미르도 점점 한계에 다다라 보였다.

마지막으로 설교자는 국수 가락 같은 다리를 들어 감사를 표하듯 아미르의 아랫배에 발도장을 찍었다.



“너무 늦었지? 미안! 하나.”

타오가 겉옷을 손에 든 채 가볍게 뛰어왔다. 그녀의 비단 같은 앞머리는 물에 젖어 반들거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내 얼굴을 종이로 쓰고 싶어 안달이었어. 이것 좀 보라니까.”

“괜찮아, 그나저나 설교자가 오늘 ‘스타’한테 달려들 뻔했어. 아미르가 바로 옆에 있어서 별짓 못할 거란 건 알았는데, 두 사람 침대가 서로 마주 보고 있으니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야.”
하나가 입을 조그맣게 움직이며 말했다.

“그가 스타를 때리기라도 했다는 말이야?” 타오는가 인상을 쓰고 물었다.

“아니, 그건 아니야. 아미르는 절대 그가 아이를 때리거나 겁줄 일은 없데.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남자 병실에 그 둘만 남아 있으니까. 게다가 둘 다 폐쇄 도시에서 오기도 했고. 그냥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서 껴안았던 거래.”

“그랬구나. 너무 걱정 마. 이제 저 두 사람만 명단에 추가하면 우리도 마음에 짐을 덜 수 있을 거야.”

하나는 수많은 이름들과 그 옆에 초록색 체크 모양이 깜빡이고 있는 차트를 펼쳤다. 목록 사이엔 아주 드물게 빨간색으로 ‘L-2’라고 적힌 칸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이름 옆에 깜빡이는 초록빛 ‘V’가 적혀있었다. 차트의 맨 아래엔 이름만 있거나, 회색의 빈칸들만 줄줄이 모여 있었다. 실종자나 그 외의 선택지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손에 꼽을 정도로 소수에 불과했다.

하나의 시선은 구렁으로 떨어지는 딱한 먹잇감처럼 베루마스, L-2, 회색 칸을 순서대로 훑어 내려갔다. 대략 세 부류로 나누어진 수 백개의 이름들 중 한 네모 칸에서 그녀의 눈이 머물렀다.
ST4R-319.

그녀는 짧은 한숨을 쉬었다.



“등골이 자꾸 저려오네.”
아미르가 한 손으로 반대쪽 어깨를 쥔 채 다가왔다.
“내 직업은 유인원 조련사야.” 그는 허리를 짚은 채 배에 찍힌 발바닥 도장을 자랑했다.

하나는 그의 억지스러운 웃음을 보더니 고갤 저었다.

“이건 해도 너무 하잖아.”

“이제 고작 3일 남았어. 난 괜찮아. 그냥 이쯤 되면 설교자도 나를 친구로 여기고, 때리는 걸 멈출 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아.”

아미르가 엄지로 눈 위쪽을 비비며 말했다.

“저런 사람이랑 친구는 무슨... 아무튼 고생했어. 여긴 나랑 하나가 맡을 테니까 가서 좀 쉬어.”
옆에 있던 타오가 말했다. 검은색 금속 섬유로 된 왼팔을 들어 올리더니, 근육을 쥐어짜는 동작을 취했다. 탄탄하고 볼록한 이두박은 부위에서 철로 이루어진 수 백개의 퍼즐 조각들이 한순간 맞춰지는 청명한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네모난 화면에 빨간색으로 ‘100%’라는 수치값이 나타났다.

“너희들 잘 알지? 성인 남자 80명이 달려든다 해도, 내 한쪽 팔을 이길 수 없다는 거.”

“그럼, 너만 믿을게. 그런데 사실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해도 걱정할 필요 없어.” 아미르가 능글맞게 웃었고, 손으로 뭔갈 가리켰다.

그들은 손가락을 따라 고갤 돌렸다. 각 침대가 있는 자리마다 천장에 둥그스름한 선들이 그어져 있었다. 아미르가 고갤 끄덕였다. “비상시에 저기서 경계선들이 내려오면서 벽을 만들 거야. 너희가 자리에 없더라도 걱정할 것 없어. ‘스타’가 있는 곳엔 어디에나 로필라가 함께 있으니까.”

“정말? 그런 게 있을 줄이야. 이럴 땐 로필라가 마치 부모님 같다니까, 덤불 속 표범 로봇이 아니라.”

타오의 시선이 천장에 고정된 커튼 지주대와 레일을 따라 움직였다. 낮인데 환하게 빛나는 가로 모양의 조명이 가운데에 있었다. 반대쪽 침대에는 설교자가 있었다.
아미르는 오후 기도를 위해 병실을 떠났다. 그의 부재는 어느 정도 재활원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멈추지 않는 설교자의 헛기침 역시 타오와 하나의 귓구멍을 따갑게 찔렀다.

하나는 살구색 커튼 천을 걷기 전 노란색 집게 명찰을 보았다. 이름 칸은 비워져 있었고, 오직 ‘ST4R-319’라는 글자만 적혀 있었다. 팔 한쪽과, 말을 잃은 소년이 ‘스타’라 불리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다. 이제 사람의 이름이라 봐도 어색하지 않았다.
“스타? 우리 왔어.”

커튼 안에선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하나는 매번 그에게 대답을 기대하는 실수를 범했다.

갑자기 어디선가 방망이로 속이 빈 철통을 때리는 듯한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외마디 비명을 지르자, 커튼 안에서 호박색 실루엣이 재빠른 몸동작을 보였다. 그녀는 아주 가까운 곳이란 걸 알았기에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타오가 이제 막 주조된 듯한 왼 주먹을 단단히 쥐고 설교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조금 긴장한 두 눈은 빨갛게 달아오른 강철처럼 열기를 뿜는 듯했다. 설교자 역시 그녀가 화가 난 걸 아는 듯 침대 팔걸이에서 천천히 발을 떼기 시작했다. 발 뒤꿈치 모양대로 조금 휘어져 있었다.

흰 요구르트 방울이 묻은 설교자의 입가 주변으로 골이 깊게 파여있었다. 앙상한 얼굴을 더욱 아리송하게 보이게 만드는 요소였다. 다만 스타를 향한 시샘은 노골적이었다. 마치 원하는 것과 뜨거운 눈물 사이에서 고통받는 철부지 어린애처럼 움츠러들어있었다. 눈가에 오랫동안 굳어 있던 피고름 딱지는 낙엽 같은 갈색을 띠고 있었다.



안개는 산봉우리보다 낮게 내려와 있었다. 바깥의 흰 담벼락 위에 아지랑이가 선명하게 움직였다. 검은 바위산이 제 자리를 지키려고 불굴의 의지 따위를 갖고 있을 리가 없겠지만, 소년은 마치 그것 말고 자신을 구해줄 수 있는 게 없는 듯 바라만 보고 있었다.
타오는 스타의 오른쪽 팔 절단 부위를 정성으로 손보았다. 그녀가 두 손으로 스타의 어깨를 주무르는 동안, 하나는 한 걸음 물러서 스타가 조금이나마 고통스러워하는지 주시했다. 절단된 뼈 가장자리가 충분히 둥글지 않았기 때문에, 스타는 이전 병원에서 2번의 수술을 받아야 했다. 헐렁한 소매는 늘 한쪽 주머니에 꽂혀 있었다. 그는 늘 똑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침대에 앉아있고는 했다. 늦은 저녁엔 발이 시려서 책상다리를 했고, 장마가 시작하는 시기엔 매트리스 끝에 걸터앉아 바닥을 딛고 일어나 있었다. 창턱이 많이 낮았기 때문에, 소년은 한 손으로 단단히 무릎을 짚은 자세로 물방울들의 축제를 여름 내내 관찰했다.

하나는 그를 보며 자연엔 갈등이 없었기에 아픈 교훈도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는 설교자보다 도시락을 더 빨리 비워냈고, 기름기로 반들거리는 입술을 꿈틀거렸다. 꼭 수수께끼 같은 움직임과 표정으로 위장한 멸종 위기종 새 같았다. 하나는 조심스럽게 뒤를 보았다. 아이의 주변에만 머물 때 의도치 않게 설교자에게 소외감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는 평소처럼 똑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경정맥에 마취 주사를 맞은 환자처럼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도토리 같은 두 주먹은 유럽식 건조 햄처럼 두 허벅지 사이에 껴 있었다.

날은 아침보다 푸근해져 있었다. 바람의 촉감도 두꺼운 붓으로 스치는 것 같았다. 하나는 스타의 뒷머리를 관찰했다. 귀에 닿지 않는 옆머리, 그리고 세찬 바람에도 흐트러질 일 없는 정수리. 다듬은 지 2주밖에 되지 않았기에 모양새는 여전히 정갈했다. 그녀가 스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왜?”

타오가 소년의 날갯죽지 부분을 손난로 문지르며 고갤 돌렸다.

“나를 보는 거야? 아니면 스타를 보는 거야?”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하나는 차트를 쥔 손가락을 톡톡 두드렸다.

“거의 다 끝났어. 조금만 기다려.”
하나는 타오만큼 절단 환자의 환상통이나, 혈액 순환과 관련한 문제들을 잘 아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녀는 더없이 선한 동기로 소년의 고질적인 통증을 잠재우고 있었다.

“그래, 스타. 오른쪽으로 너무 많이 누워 있으면 혈액순환에 좋지 않으니까...”

소년은 그녀가 말하는 와중 불쑥 손을 뻗어 쟁반에 놓여있던 공 모양 물 주머니 하나를 입에 집어넣었다. 그의 입에서 톡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타오가 섬세한 기계손을 접었다 피며 물었다.
“너도 한 번 받아 볼래?” 그리고는 짓궂은 얼굴로 간지럽히려는 시늉을 했다.

“난 괜찮아. 고마워.”

“이제 마사지를 해줄 사람이 없다는 게 믿기지 않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기서 저 신발장까지 줄을 서있던 사람들은 도대체 다 어디로 간 거야?”

하나는 차트 모서리에 반달 모양으로 파인 자국을 손톱으로 꾹꾹 눌러댔다.

“그러게. 온갖 병동의 사람들에게 네 기계손 마사지는 참 유명했지.”

“누가 내 마사지를 받고는 레슬링 선수였던 자기 손녀가 생각난다 말하지 않았어? 기억하지?”
스타가 갑자기 침대에서 일어나 서더니, 그들의 대화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화장실로 걸어갔다. 공기를 휘젓는 소년의 한 팔은 뒤에 남은 사람들을 놀리듯 자유분방했다.

“도움이 필요할 것 같으면 불러!” 타오가 한 손을 입 옆에 대고 소리쳤다.

하나는 가까운 침대에 걸터앉아 유리 반지만 매만졌다.
“저 아이에게 결정을 강요하는 게 정말 싫어. 이미 살아남은 것으로 기적인 아이에게 뭐라고 더 말을 해? 이게 무슨 좋아하는 맛 사탕을 고르라는 것도 아니고...”

타오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하나를 끌어안았다.
“한 번 너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는 게 어때? 스타는 가족이 없잖아. 우리도 힘든데 혼자 어떻게 감정을 추스를 수 있겠어.”

“맞아. 그렇지만...”
타오가 하나의 수그린 어깨를 살며시 잡았다.

“스타는 지금 혼자서 무게를 버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을 거야. 이런 세상이 아이가 기대할 만한 게 아니란 사실은 너무도 명백하니까. 네 이야기를 들려줘. 그리고 그가 살아본 적도, 경험하지도 못한 시간과 연결되도록 해줘.”





작디작은 푸른 점 위에서,

<블루닷 이펙트>

The Blue Dot Effect

기억과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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