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갬성 시리즈
흐르는 세월이 가시 같아
온몸이 따가웠다
앞서간 발자국에 보폭을 맞추며
견뎌온 가랑이
어쩌다 만난 좋은 시처럼 너를 만났지만
끝내 다 읽지 못했다
시집 한 권 내지 못한 어느 시인의 얼굴처럼
누렇게 바랜 페이지
그 여백 어딘가에서
길을 잃었다
처음 본 네 이름 찾으려
다시 펼쳐도
낯선 철자들뿐
닫혀버린 시간의 문
나는 실수로 현관문을 잠그고 떠난
호기심 많은 여행자였다
찢긴 페이지 위로
진눈깨비가 내리고
편지 없는 우편함에
반쯤 녹은 눈송이만
소리치고 있었다
가끔은 기약 없는 편지를 기다리다
낮은 문턱에 발목이 꺾일 때도 있었다
사랑은 언제나
익숙하지 않은 귓속말로 시작해
뻔한 눈물로 말라버렸다
그래도 한쪽 신발을 잃은 그림자처럼
걸었다 걷는 것만이
살 길이라 여기며
가끔은 희망의 등 뒤에
절망이 매달려 있었지만
너의 시,
펼치지 못한 마지막 페이지엔
용기가 적혀 있었다
용기만은 배신하지 않았다
나는 기꺼이
현관문을 잠그고 떠나는
호기심 많은 여행자였다
만약 20대 그 시절 갬성으로 돌아간다면~~
어느 원룸촌 계단 한 귀퉁이에 쭈그려 앉아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아직도 나는 그 여행의 끝을 모른다.
누구도 끝을 알 수 없다.
그래서일까, 희망이란 종종
시골길 위의 표지판보다 막연하다.
그 막연함이 때로는 사람을 살리고,
또 때로는 사람을 죽인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지나가던 40대의 재해석 - 내지 설교
희망은 좋은 것이지만, 냉혹한 현실을 외면한 희망이란 희망이라기보다는 순진한 바람에 가깝습니다.
그런 희망은 동전의 앞면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뒷면에는 항상 절망이 있죠.
어떤 계기로 불현듯 뒤집히는 순간, 있는 줄도 몰랐던 절망이 튀어나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절망에서 헤어 나오기 힘듭니다.
때로는 영원한 비관주의에 빠져버릴지도 모릅니다.
'스톡데일 패러독스'라는 것이 있습니다.
스톡데일은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된 장교로 8년간의 포로 생활 끝에 생환했습니다.
한 기자가 그에게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냐고, 누가 가장 빨리 죽었냐고 묻자 대답합니다.
낙관주의자들이 가장 먼저 죽었습니다. 그들은 막연히 언젠가는 반드시 나갈 수 있으리라 확신하고 성실히 포로 생활을 하다가 1 년, 2 년이 지나고 크리스마스가 지나도 나가지 못하자, 갑자기 모든 희망을 잃고 절망에 빠져 스스로를 죽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기억나는 대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만, 스톡데일이 말하려는 내용은 그것이었습니다.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막연한 낙관주의는 오히려 큰 절망에 빠진다는 말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염세주의자들은 웬만한 시련에도 쉽사리 절망하지 않습니다. 특정 사건이나 사람 때문에 상심하여 쉽게 자살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막연한 낙관주의자들이 큰 배신을 당하거나 시련에 직면했을 때, 순식간에 무너져 자살을 하고는 합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 사건 하나로 자기가 그동안 믿었던 세계가 한순간에 무너지고 자신의 신념이 송두리째 부정당했을 테니까요.
사람은 사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커다란 문제나 실패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로 인해 자신이 믿었던 세계나 신념이 무너질 때 극도의 좌절감에 휩싸입니다.
합리적 낙관주의라고들 하던가요.
그러므로 희망을 가질 때에는 그 희망이 무너질 수도 있음을 알고 있어야 하고, 바닥의 바닥까지도 갈 수 있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바로 이때 '용기'가 필요합니다.
용기는 항상 꾸준함과 의지를 동반하지만, 희망은 자칫 그저 감정 덩어리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정한 낙관주의자는 희망의 바닥에 항상 용기를 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희망이 무너져 바닥에 닿으면 언제든 딛고 일어설 수 있게 말입니다.
믿음도 비슷합니다.
회의하는 믿음이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회의하는 믿음이라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 싶을 수도 있지만, 한 번도 의심하지 않은 믿음은 엄밀히 말해 믿음이 아닙니다.
그런 믿음은 얇디얇아서 약한 바람에도 쉽게 부러집니다.
보통 그런 믿음은 사람이나 사건에 쉽게 실망해 믿음을 버리고 오히려 냉소주의로 변하기 일쑤입니다.
(이 주제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오스 기니스의 '회의하는 용기' 라는 책을 추천합니다. 참고로 종교 서적입니다만 꼭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의미 있는 책입니다.)
만약 현실과 상관없이 정말로 순진하게 믿고 싶다면, 철저하게 순진하게, 마치 갓 태어난 어린아이가 부모를 믿듯 믿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한 성인들 중 그렇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한 번의 의심도 없었던 믿음은 일단 한 번 의심이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회의와 의심을 거치며 그것을 이겨낸 믿음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됩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듯, 어떤 사건과 사람, 환경의 변화에도 이제는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성이 되어 나를 지켜줍니다.
모름지기 여행을 떠나려면, 또 그 여행이 멀수록 용기가 필요합니다.
특히 나침반도 지도도 없는 인생이라는 여행이라면
두말할 필요 없겠지요.
갑자기 이 노래가 떠오르네요
용기 냅시다~~ ^^
https://www.youtube.com/watch?v=J_067MeuFUw&list=RDJ_067MeuFUw&start_radio=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