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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때 기다림은 별이 된다

그 시절 갬성 시리즈

by 글 써 보는 의사


시인은

떠난 자리에 꽃이 핀다

얘기했지만

그 해 봄

아무것도 피지 않았다

담벼락 그림자만

시멘트 바닥을 베고 있었다


주인이 버린 강아지처럼

나는 언제나

그 자리에 돌아왔지만

집은 이미 없고

뉘 집 강아지인지

다른 강아지 한 마리만

내 손을 핥았다


강아지는 아직 주인이 있었다

버려질 줄

상상도 못하는 혓바닥

아직, 따뜻했다


그림자의 무수한 칼질에도

담벼락은

무너지지 않았다

태양을 등지고 서 있을 뿐


천문학자는 말했다

우주는 암흑에서

태어난다고


나는 강아지를 데리고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다


주인 있는 자와

주인 없는 자

그림자 속에서

한 손이 머리를 쓰다듬고

한 손에는 따뜻하지만 거친 혓바닥


지나던 어르신이 우리를 쳐다봤다

- 고놈 참 귀엽네

주인을 닮았어


떠난 자리에 꽃이 피었다

그림자 속에서

또 다른 별이 태어나고 있었다












이번에도 20대 갬성 시리즈입니다.
오늘 아침 어쩌다 정끝별 시인의
'누군가는 사랑이라 하고 누군가는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 를 읽고
불현듯 쓰게 됐습니다



이 시를 쓰기 직전

전유성 선생님의 별세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분인데

이상하게도 슬프네요


누군가가 떠올랐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20대 시절 종종 그분의 농담을 들었기 때문일까요?


꿋꿋이 자기만의 길을 걸었던 분으로 기억합니다.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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