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틈이 열린 날

벽 뒤의 부름

by ASTER

출근길이었다.

바람도, 사람도, 시간도 모두

누군가 자로 그은 듯, 각져 있었다.

늘 보는 익숙한 풍경들이다.

윤해인은 오늘도

정해진 동선을 따라 정해진대로 움직였다.

직선의 도로, 계단, 지하철, 엘리베이터, 복도.

그 모든 것이 네모진 흐름 안에서 무심히 반복됐다.


“오늘은 생산지수 리포트 마감일입니다.”


천장에 매달린 스피커가 또박또박 외쳤다.

그 말은 ‘당신은 오늘 무사하다’ 또는

'당신의 상태는 관심없다, 중요한 건 당신이 하는 일이다'

라는 뜻이었다.


모듈형 블록도시로 구성된 이곳 네모라(Nemora)는

모든 것이 스마트타워와 연결되어 각 개인은

생산지수(PPI)에 따라 삶과 생존권이 결정된다.

비생물학적 지능이 생물학적 지능을 넘어서면서

개인의 감정과 사적 언어는 철저히 관리되었다.

혹 감정의 불균형이 감지되면 '불규직차'로 분류되어 곧장 보정센터로 보내진다.

오늘 아침, 해인의 사무실 책상 위엔 붉은색 불빛 하나가 계속 깜빡이고 있었다.


⟪ 감정 로그 미입력. 미입력시 보정이 필요합니다. ⟫


해인은 무심히 클릭하고,

눈을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늘 같은 풍경..

그 순간—


그녀는 그것을 봤다.

유리창 사이, 정확히 각진 선들 사이에

‘둥근 것’ 하나가

물처럼 반사되고 있었다.

말이 되지 않는 광경에 해인은 눈을 빼앗겼다.

이윽고 더 생생히 떠오른 것은

마치 오래된 기억,

잊힌 꿈의 파편 같았다.


“윤해인 팀장님, 지금 바로 회의실로 오시죠.”


건조한 소리 하나가

그녀를 다시 현실로 붙들었다.


회의실은 차가웠고, 공기는 눅눅했으며,

공중의 말들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해인은 주간 보고서 수치를 읽고 있었지만

단어들이 자꾸 입에서 멎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엔 유리창이 아니라

공기 속에서, 눈 앞에서—

서서히 회전하는 둥근 형상.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지만,

분명히 전하고 있었다.

어떤 파동같은것.


“여긴 아니야.”


숨이 막혔다.

갑자기 폐 속으로 밀려드는 공기,

해인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책상 아래로 몸을 구부렸다.

순간

앞에서 무언가 보였다.


벽 속에 그어진 완만한 곡선.

금이 간 듯하지만 분명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그어둔 문장의 시작처럼.

희미하고 완만하게 빛나는 둥근 빛.

부르는 듯 머물러 있는 그것에

그녀는 손을 뻗었다.


벽은 물처럼 흔들렸고,

그 너머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원형의 문이 열렸다.

그녀는 가빠오는 호흡을 고르며

잠시 숨을 들이쉬고 깊이 내쉬었다.


'바다..'

그건 바다 같은 냄새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고요함이었다.


그리고,

그 틈 속으로 들어갔다.


[다음화 예고]

2화. '무중구(無重區)의 바닥-말이 사라진 공간'

- 가장 깊은 고요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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