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아이돌 덕후, 주현
by양 윤화 Aug 01. 2021
내 딸은 연예인을 정말 많이 좋아한다. 특히나 남자 아이돌의 경우는 대부분의 이름과 생일, 노래를 다 외우고 다닐 정도다. 하지만, 이 아이가 연예인을 좋아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너는 또래 친구들과 다르게 왜 연예인에게 관심이 없냐.’라는 내 질문에 ‘연예인이 밥 먹여줘?’라 거나 ‘걔네는 내 이름도 모르고 내가 존재하는지도 모르는데 친구들은 왜 걔네를 좋아하는지 모르겠어.’라고 대답하면서 오히려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주도라는 뚝 떨어진 환경 속에서 연예인을 보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젊은 시절의 나는 ‘연예인이 온다.’라는 말이 들리면 꼭 표를 구해서 보러 가고는 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가끔 친구들을 만날 때면, ‘주현이는 엄마를 안 닮앙 연예인에 별 관심이 어쪄이’ 라는 소리도 듣고는 했었다.
하지만, 딸이 연예인을 좋아하지 않아 또래 친구들과 조금 다른 것 같다는 걱정도 기우였는지,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부터 ‘인피니트’라는 남자 아이돌 그룹의 뮤직비디오를 찾아보고 노래를 계속해서 듣더니 여름방학이 되면서는 오히려 연예인을 좋아하는 정도가 지나친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푹 빠져버렸다. 가족 모두가 잠에 든 시각에도 혼자서 컴퓨터를 하면서 ‘인피니트’의 영상을 찾아보다가 밤늦게 잠들기 시작하더니, 인터넷 강의를 본다고 하면서 컴퓨터를 차지하고 앉아 흔히 ‘덕질’이라 부르는 것을 하면서 강의를 미루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6시에 일어나 학교에 가야 하는데, 새벽 4시가 넘도록 몰래 덕질을 하다가 잠에 드는 생활을 반복했다고 한다. 하지만, 학업에 대한 긴장 때문인지, 낮 동안에 절대로 졸거나 잠을 자지 않아도 괜찮았다는 것이다. 연예인을 향한 딸의 애정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 중학교 3학년이 되고 나서부터는 미리 준비하고는 했던 시험공부도 계속 컴퓨터로 연예인을 보다가 3일 전이 되어서야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름 벼락치기를 하는 와중에도 새벽 3시에 자고 새벽 5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반복하여 전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받으며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고,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결과로 학교를 빛내 주었기에, 학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딸의 덕질을 막지는 못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모두가 힘들다는 고3 시절, 남들에게 공부가 힘들 때 어떤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잡느냐는 질문을 하면 대학 생활에 대한 로망 같은 것들을 말한다고 하는데, 우리 딸은 서울 가서 애들 콘서트도 보고 제대로 된 덕질을 하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 한다며, 재수를 하면 아이돌을 보지 못하고 1년을 더 견딜 자신이 없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서 나와 주위 분들을 당황하게 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각종 대회나 성적에서도 똑소리 나게 제 역할을 확실히 해 주었기에 믿고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또, 신기한 점은 딸이 한 아이돌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이 아이돌 그룹을 좋아했다가 활동이 끝나 공백기를 가지거나 하면, 또 처음 보는 아이돌 그룹을 보며 너무 완벽하지 않냐며 그 아이돌의 영상을 찾아보고 있고, 또 이 아이돌마저 공백기에 접어들면 또 다른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래서 딸아이가 거실에 있는 커다란 텔레비전으로 유튜브에 들어가 아이돌의 무대 영상을 찾아보고 있을 때, 가끔가다 괜찮게 생긴 아이돌이 있어 물어보면, 이름부터 시작하여 어떤 파트를 맡고 있으며, 고향이 어디고 생일이 언제며, ‘내가 이래서 얘네를 좋아한다. 엄마도 당연히 좋아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며 아주 일장 연설을 한다. 그러니 관심을 가지기도 전에 질릴 수밖에……. 이로 인해 수능이 끝나 약 3개월가량의 여유 시간이 있었을 때는 ‘동생의 공부에 방해가 되니 방에 가서 노트북으로 보던지 거실에서 조용히 봐라.’라고 말하면서 혼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확실히 자주 보고 듣다 보니 딸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나 역시 좋아하게 되었고. 나 또한 아이돌 노래를 부르며 즐기고 있다.
대학생이 되어 서울에 올라가서는, 이제부터는 어릴 때부터 차곡차곡 모아두었던 돈으로 콘서트도 맘껏 보러 다니고 더욱 열심히 덕질할 거라며, 음악 방송 퇴근길도 가서 인사도 했다고 자랑하고, 해당 아이돌이 나오는 뮤지컬도 예매해서 보고 왔다며 자랑에 자랑을 한다. 또, 지난번에는 애들 군대 가기 전 마지막 팬 미팅인데 티켓팅에 실패했다고 전화로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딸이 연예인을 좋아하며 힐링을 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연예인을 좋아하여 연애를 못 하는 것 같아 한편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족과 떨어져 힘들게 공부하는 데 아이돌을 향한 관심과 함께 다양한 취미생활로 즐겁고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대견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믿음직하고, 배려 깊고, 해맑은 미소를 지닌 자랑스럽고 예쁜 내 딸 주현아
밝고 긍정적으로 지금껏 잘해 왔듯, 앞으로도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즐겁고 신나게 파이팅!
2018 년 7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