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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1 신이 나에게 준 최고의 선물

1. 신이 나에게 준 최고의 선물

by 양윤화

장맛비가 내린다.

테라스 데코 위에 물거품 병정들이 신바람 나서 춤을 춘다.

나무와 화초들도 신났다. 소나무에도 뚝~뚝, 소철에도 뚝~뚝, 동백나무, 금귤 나무, 대추나무, 로즈메리, 아마릴리스, 백합, 둥굴레 그중에 엽란, 자란, 맥문동, 수선화, 난초들은 신이 나서 덩실덩실 리듬을 타며 부채춤을 추고 있다. 내리는 빗방울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부모님과의 행복했던 추억에 잠긴다.


아버지께서 들려주셨던 추억 속에 말씀 중에서


“저추룩 많은 빗물들도 다덜 가는 길로 가난 넘치지 안허는 것 처럼 사름들도 순리대로 살아사 삶이 편안헌다.”

“이렇게 내리는 고래장비도 때가 되민 그치는 것처럼, 사름덜 사는 것도 매 한가지여. 아명 지꺼진 일도 한때고, 아명 힘든 일덜도 순간이난 늘 겸손 허멍 살아사 헌다.

“사름이 모가 나민 조끄디 사름들이 어신다. 경허난, 둥글둘글 허게 살아사 되는 거여”

“나이 먹어 가민 귀도 멀고 생각 허는 것도 조금 흐려지난 입은 졸라메곡, 보개띠는 열어사 헌다.”

“말은 아끼곡, 남이 말을 많이 들어서 헌다.

“말헐때랑 조짝 조짝 말허지 말앙 세 번씩은 생각 허지 못해도 한번만이라도 생각허영 말허라.”

“놈말 허기 좋댄 허당 보민 같은 사람 되난, 맘에 안들어도 맘 속으로만 생각허곡, 놈 흉이랑 보지 말라.”

“사람은 손해 보듯 살아사 헌다. 욕심 부령 살아도 훼께 잘 살지 못 허는 거여.”

“어신 사름안티 호쏠 준댄 굶어 죽지 안허난, 베풀멍 살아사 삶이 편안헌다.”


비가 오는 날이면 아버지랑 앞마당을 바라보며 아버지께서 들려주셨던 많은 이야기, 아버지께서는 살아있는 명언 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철학적인 말씀을 많이 해 주셨다. 눈 쌓인 날이면 함께 만들었던 우리 집 표 눈사람. 칭찬과 채찍질을 조화롭게 해주셨기에 자존감 높은 아이로 성장할 수 있었다. 내가 부부 싸움했을 때, 부모님과 신랑 흉을 보다 보면 어느새 웃게 만들어 주셨던 해결사. 감정이 풍부하셔서 말씀 하나하나가 시적이고, 재미있고 맛깔나게 이야기하셨던 아버지. 오빠에게 있어서 유독 엄격하셨지만, 나랑 언니에게 있어서 아버지란, 다정다감하시고 재미있고 시적인 삶을 사셨던 분이셨다. 존경하는 우리 부모님께서는 친척들에게나 주변 분들에게 늘 솔선수범하셨기에 인자하시고 좋은 분으로 남아 있다.


70년대 어린 시절, 겨울이면 우리 집은 만남과 회의에 장소였다.

문중회, 동네일, 제(친목 모임 종류) 등등 초겨울이 되면 겨울 준비로 며칠 동안 장작을 만들어 차곡차곡 쌓아 놓아야 했다. 오시는 손님들께 따뜻한 방과 음식을 제공해 주기 위한 겨울 준비였다. 엄마께서는 고팡(광)에 술 항아리에 엄청난 술들을 만들어 준비해 두셨다. 뒤뜰 김장 항아리에도 김장이 여러 항아리 준비해 두신다. 우리 가족만 먹을 거라면 쉽게 끝날 일인데, 오시는 분들 대접하기 위해 몇 날 며칠 노고를 아끼지 않으셨다. 주변 분들에게 대접하면서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종손과 종부는 하늘이 내리시는 거라 생각했다.


제사 때마다 친척분들께서 오셔서 함께 제사 음식을 만들 정도로 많은 양의 음식을 해야 했기에, 며칠 전부터 준비하셨던 모습을 보고 자랐다. 그래서인지 나 역시, 결혼 후 시댁에서 처음 맞는 제삿날, 제사 음식을 만드는데 시어머니께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옛날 말에 종손 집 딸들은 아명 어신 집 (없는집)이라도 집에서 보고 배운 게 이시난 다르댄 말이 이선게 마는, 니 보난 알아지켜. 막둥이랜 손하나 까딱 안 허멍 살아 실건디, 사돈님이 솜씨가 좋으난 한 번 보난 이쁘게 잘도 만들엄신게.”


또한, 우리 집 고팡은 음식 보물 창고였다. 종갓집이라 제사도 많고, 차례 지낼 일도 많았기에 고팡에는 다양한 음식들이 많았는데, 그중에 언니랑 나랑은 몰래 먹어도 티가 덜 나는 품목인 쌀독 속에 박아 놓은 감이랑 사과를 몰래몰래 먹는 재미가 쏠쏠했었다.


음식이 귀한 시절이었는데도 부모님께서 워낙 부지런하셨기에, 제철 과일은 늘 부족하지 않게 먹을 수 있었다. 과수원이 있었기에 겨울에는 귤을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었다. 오빠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심어놓은 밤나무, 큰언니가 입학할 때 심어놓은 복숭아나무(황도), 작은언니가 입학할 때 심어 놓은 딸기, 내가 입학할 때 심어 놓은 복숭아나무(백도). 과수원 한편에 계절마다 참외, 수박, 토마토, 물외, 땅콩, 옥수수 등등. 집에 닭장 속에는 닭들을 키웠기에 달걀은 빼놓을 수 없는 반찬거리였다. 부지런하시고 다정다감하신 부모님에게 늘 고마운 마음이다.


화초 가꾸기를 좋아하셨던 부모님을 보고 자라서인지 우리 형제들은 화초 가꾸기를 좋아한다. 애들 입학할 때마다 기념수를 하나씩 심는다. 나도 내 아이들 입학할 때마다, 큰애 주현이 초등학교 입학할 때 본가에 감나무 심기를 시작으로, 작은 애 소현이 초등학교 입학할 때 과수원에 배나무를, 테라스에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입학할 때마다 심어 놓은 나무와 꽃들이 잘 자라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0년, 엄마가 돌아가신 지 15년이 지났다.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주변 분들을 챙기시는 모습, 특히, 임종 전까지도 가족들에게 용돈을 주시고 가신다. 내 뱃속에 5개월 된 손자까지 잊지 않고 챙겨 주시면서 행복해하시는 모습에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위암 말기라 본인의 통증도 참기 어려웠을 텐데.......)


중양절 날 (음력 9월 9일, 극락전에 위패 모신 분들에게 지내는 절간 행사) 친정 동네 절에 가면 동네 삼촌들이 우리 손을 잡고서 하셨던 말씀



“느네 보민 성님 보는 거 닮당 막 반가운다 게.”

“성님께서 덕을 하영 쌓아 노난, 느네 형제들은 다 잘 되언, 얼마나 좋으냐 게. 성님이 오래 살아서 느네 사는 모습 봐 시민 더 좋아실건디.”


우리 형제들도 동네 삼촌들 보면서 부모님 생각나서 눈물이 나고 삼촌들도 덩달아 울곤 했었는데, 이제는 삼촌들도 몇 분 안 계셔서 안타까울 뿐이다.


뭐가 그리 급하다고, 늘 주기만 하고 제대로 효도 한번 못해 드린 막내는 부모님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엄마에게 원망에 한마디 했었다.


“엄마는 오래 살아서 막내 효도 제대로 받아 봐야지. 늘 주기만 허여 신디 이렇게 아프면 어떵 헙니까?”

“그게 무슨 말이고 게. 느네 추룩 착헌 아이들이 어디시니. 느네 키우멍 얼마나 지꺼진 줄 알암시냐. 힘들당도 느네 보민 웃어져라. 어멍 어성 서러웡 허지 말곡, 귀하게 낳은 주현이 소현이 잘 키우곡, 어신 사람들 보이민 도와 주멍, 지금추록 재미지게 잘 살라이.”

사랑하는 부모님에 대해 글을 쓰다 보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고마운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는 책 몇 권을 써도 다 못 쓸 것 같다.


신이 나에게 준 최고의 선물

사랑하고 존경하는 나의 부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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