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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부터 귀에서 피가 흐른다.

1년 365일 중, 364일이 고됨의 연속이었겠지만 그날만은.

by 여유

엄마의 생일은 우리 집 유일한 기념일이다.


아침에는 소고기 미역국을 먹는 날.

저녁에는 돼지고기를 구워 먹는 날.

그리고 생일 파티를 하는 날.


아빠는 엄마 생일이 다가오면 사직사거리에 있는 크라운베이커리나 신라명과에서 케이크를 사 왔다.


어린 날의 나와 우리 삼 남매가 집에서 케이크를 먹는 유일한 날이기도 했다. 아빠는 엄마가 좋아하는 푸른빛이 도는 꽃을 사 오거나 연보랏빛 꽃을 한 다발 사가지고 왔다. 예뻤다.


할머니 귀에 피나는 날.

아빠는 새해 달력이 바뀌면 엄마 생일에 표시를 해놨다. 마치 그날만 기다리는 것처럼.


할머니에게는 한 달 전부터 귀에서 피가 흐르는 날.


지금으로 말하면 큰 이벤트 전, 디데이처럼. 그렇게 아빠는 한 달 전부터 할머니 뇌 속에 엄마의 생일을 박아놨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그날만은 건들지 말아야 했다.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날이니까. 어쩔 수 없이 그날은 무탈하게, 행복하게 지나갔다.




엄마가 퇴근하길 기다리며, 숨겨놓은 케이크를 꺼내고, 꽃다발도 주고, 노래도 부르고, 행복한 날이었다. 수십 년간 변함없는 엄마의 생일 이벤트. 놀랄 것도 없었겠지만, 그날만은 행복했겠지? 1년 365일 중, 364일이 고됨의 연속이었겠지만 그날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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