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원장 Oct 07. 2024

노욕(老慾)

나이 들며 생기는 노파심 

 덩 / 덩덕/ 쿵덕 세마치장단의 흥겨운 장구 소리가 들린다. 장구 소리에 맞춰 ~얼~쑤 ~얼~쑤 추임새를 하며 우리 가락의 흥에 몸을 맡기고 걷는다. 절로 흥이 나 얼~쑤를 연신 외치며 걷다가 장구 소리가 멈추면 걸음도 멈춘다. 미리 준비해 둔 나무모형 아랫부분에 적어놓은 본인의 이름을 찾아들고 “지화자”를 큰 소리로 외치는 게임이다. 이름은 본인이 좋아하는 예명으로 적는다. 흥겹게 걷는데 장구 소리가 멈췄다 본능적으로 옆에 있는 나무모형을 번쩍 들었다. 나무를 거꾸로 뒤집어 보니 미리 정해둔 내 이름 들국화다. 깜짝 놀랐다. 이리 쉽게 내 이름이 나오다니  “지화자”하고 손을 번쩍들며  환호 쳤다. 자연 방향제를 선물로 준다. 워낙 그런 횡재를 못 해본지라 기대도 안 했는데 기분이 날아갈 듯하다. 겅중겅중 춤을 추며 나가 선물을 받았다. 

    

두 번째 게임이다. 손바닥을 펴서 작은 방석을 그 위에 올려놓고 자기의 방석은 지키면서 다른 선생님들의 방석을 떨어트리는 게임이다. 첫 게임에서 선물도 받았겠다. 주변에서 슬슬 돌며 소극적으로 게임에 참여하다 보니 가운데로 몰린 선생님들이 뒤 엉겨 아우성친다. 그 틈에 밖에서 쉽게 안에 있는 선생님들의 방석을 툭툭 치니 방심한 상태라 모두 우수수다. 그러다 보니 젊은 선생님 두 분과 나 세 사람만 남았다. 갑자기 승부욕이 발동한다. 두 사람을 번갈아 무섭게 공격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내심 놀랐다. 과한 욕심으로 보일까 봐 이러지 말자 하는 생각을 머리로는 했지만, 몸은 벌써 한 선생님의 방석을 낚아채 떨어트리고 있다. 

   

이제 한 사람만 떨어트리면 최고의 일인자다. 나이 든 사람이 눈을 부릅뜨고 달려드는 모습에 젊은 선생님이 무서웠는지 “무서워요”하며 달아나다 스스로 자기의 방석을 떨어트려 자폭하며 게임은 끝이 났고, 나는 엉겁결에 일등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지도 강사님께서 박수를 치며 선물을 가져오신다. 순간 부끄러워진다. 첫 번째 게임에서도 선물을 받았는데 또 받게 되는 것이 나이 든 사람의 과한 욕심으로 비칠까 봐 민망하다. 받은 선물을 달아나다 자폭한 젊은 선생님께 얼른 건네며 민망함을 조금이나마 덜어내려 애썼다.

 

  ᒥ국악으로 상상하기, 국악으로 감각하기ᒧ 의 교육이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공지가 떴다. 흔하지 않은 국악 교육이다. 접해보고 싶은 마음에 얼른 신청했다. 이십여 명의 참여자 중 젊은 선생님들이 대부분이고 나이 든 원장은 서너 분 밖에 눈에 뜨이지 않는다. 그중에 내가 나이가 가장 들어 보인다. 한켠에서 조용히 교육받고 가야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흥과 장단에 취하였는지, 또 내 본능이 충실하게 작동해 준 탓인지 덕분인지 두 게임 모두에서 선물을 휩쓸었고 최고 열정 선물까지 받고 말았다. 나이 들어 악착같이 선물을 싹쓸이하는 것이 노욕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은근히 주의의 시선이 의식된다. 

   

마음을 비우고 시작했지만, 한번 불붙은 열정을 이성으로 식히지 못하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이 한 살 더 먹으면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덜어내자" 먹었던 마음이 본능 앞에서 무너진 것이다. 맹렬하게 달려드는 나를 보며 무섭다고 달아나던 젊은 선생님의 눈에 비칠 내 모습이 궁금해진다.  선물에 눈이 선물에 눈이 멀어 물불 안 가리며 공격하는 욕심으로 가득 찬 모습은 아니었까 민망해진다. 앞으로 어디를 가거나 그 강한 승부욕을 조금씩 내려놓고 노욕으로 똘똘 뭉쳐진 할매처럼 보이는 일은 없어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