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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장 Oct 14. 2024

시간이 멈추어  버린 공간

부모님과의 추억 

                                                              

거미줄과 먼지가 켜켜이 쌓여 세월의 흔적을 덮어쓴 커다란 괘종시계가 거실 벽에 걸려 있다. 녹슨 초침은 멈춘 지 오래인 듯 요지부동이다. 곁에는 색 바랜 달력 한 장이 쓸쓸하게 덩그러니 걸러져 있다. 달력의 숫자는 2004년 12월을 알리고 있다.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멎는 듯 먹먹하다. 아뿔싸! 어느새 이십 년의 세월이 흘렀구나! 세월의 흐름을 느끼지 못하고 쫓기듯 바쁘게 사느라 무심했음에 죄스러운 마음으로 목이 멘다. 이듬해 2005년 일 월 시어머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달이다. 아직도 그대도 남아 세월의 흐름을 일깨워 주고 있다.


고조 대에 터를 닦고 집을 지으셨고, 증조 대를 거쳐 시조부모님께서 아래에 사랑채를 이어 붙이셨단다. 시부모님께서는 대청마루를 현대식 거실로, 불 때는 아궁이가 있는 부엌을 입식 주방으로 개조하시며 살뜰히 가꾸고 보살피며 살아오신 공간이다. 삼 대, 사 대, 오 대, 육 대를 거쳐 종손들이 이어 사시며 지켜내셨다. 시어머님의 오랜 지병으로 고생도 많이 하셨던 공간이기도 하다. 시어머님께서 돌아가시고 시아버님을 모시고 우리가 사는 인천으로 급히 올라오며 그곳의 시간은 멈춰졌다. 올라오셨던 시아버님께서는 다시 돌아갈 줄 알았던 고향 집에 다시는 돌아가시지 못하고 같은 해 구월에 영영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셨다. 시부모님께는 칠 대종손인 우리가 고향을 지키기를 바라셨다. 하지만 칠 대 종손인 우리는 아버지처럼 살기 싫다고 고향을 박차고 도회로 떠나왔다. 떠나간 큰아들이 언젠가는 돌아올 거라 기다리며 고된 삶을 사셨을 그분들의 삶이 마음 아파 차마 지우지 못하고 미루고 미루다 너무 늦어 버렸다.     


고향이 싫다고 떠나왔던 칠 대종손도 이제 나이 들고 보니 고향이 그리워진다. 다시 돌아갈까 하고 오랜만에 찾은 고향 집이다. 시아버님께서 아픈 허리에 차셨던 복대며 시어머님의 부자연스러운 손에 자주 쥐고 굴리셨던 반질반질하게 닳은 호두 두 알이 방바닥에 뒹굴고 있다. 연로하셨던 부모님께서 자식을 기다리며 병마와 싸웠을 가슴 아픈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곳곳에 걸려 있는 시아버님의 작업복도 그분들의 고되었던 삶의 흔적으로 남겨져 있는 공간이다. 부모님께서 사용하셨던 안방 벽에 걸린 사진틀에는 자식들의 결혼식 사진에 손주들의 돌 백일 사진 부모님의 젊었을 적 사진도 그대로 걸려 있다. 표현할 수 없이 가슴이 시리다. 내 가슴이 이리 시릴 진데 남편은 오죽할까? 자기가 태어났고, 근 삼십 년의 시간을 부모 형제와 함께한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곳이다. 남편의 눈치를 살피며 촉촉 해지는 눈가를 살며시 훔쳐냈다. 


 오래 묶어 쓸만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집도 이미 수리할 수 없을 만큼 낡았다. 거실 한쪽에는 빗물이 샌 흔적과 주방 벽기둥이 옆으로 살짝 기울어 위태로워 보인다.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물건들이 방과 주방 창고에 그득하다. 그러나 누군가의 추억이 될만한 물건들도 있다. 무엇부터 정리해야 할까? 손을 댈 수가 없다. 시간이 멈춰 버린 이 공간의 시계 초침을 다시 돌게 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 좀 일찍 찾아왔다면 이 정도까지는 안 되었을 텐데 너무 늦게 찾아왔음에 내 발등을 찍고 싶다. 때론 아팠고 때론 행복했을 그분들의 흔적을 차마 내 손으로 지우기 힘이 든다. 남편에게 부탁했다. 남편도 힘이 드는지 그냥 다 버리란다. 눈물을 머금고 마당 가에 화덕을 걸고 불을 지폈다. 태워야 할 것은 골라 태우고 쓰레기봉투에 담을 것은 담았다. 재활용이 가능한 것은 재활용품으로 분리했다. 몸과 마음이 고된 작업이었다.


 시간이 멈춰버린 공간 속에서도 세월은 흐른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계절은 바뀌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있다. 누가 심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지붕을 덮을 만큼 큰 감나무에는 붉은 감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감을 따고 조상님들이 농사짓던 땅에서 나온 감자며 마늘이며 고추며 쌀이 차 트렁크 가득 무겁게 실렸다. 조상님들이 주시는 곡식은 풍요롭게 잘 받아먹으며 그분들의 공간은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시간이 멈추도록 방치해두었다. 송구한 마음이 트렁크에 가득 실린 짐만큼이나 무겁다. 근 이십여 년간 멈추었던 시계를 하루아침에 다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틈틈이 고향 집에 찾아가 멈추어진 시간이 째깍째깍 선명한 소리를 내며 활기차게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열심히 시계를 갈고닦으며 기름칠해 보자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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