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마저 버린 채 구생의 삶을 이어 갔다.
누군가 나의 뺨을 때리는 것 같았다.
목구멍 안으로 무언가가 들어왔고,
입에서는 쉴 새 없이 하얀 물 같은 것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눈을 떠보니 응급실이었다.
해독제라고 하는 검은 물약을 간호사가 가져왔다.
나는 마시는 즉시 그것마저 토해 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중환자실이었다.
동생이 찾아온 듯했다.
하지만 나는 동생을 볼 수 없었다.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동생은 말없이 내 귀에 이어폰을 끼워 주고 나갔다.
잔잔한 찬양이 흘러나왔다.
이후 나는 퇴원을 했다.
집으로 돌아온 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았다.
아무런 생각도 욕구도 없는 상태였다.
그때 우리 집에는 책이 많았다.
나는 책 욕심이 많아서 돈이 생기면 제일 먼저 책을 샀다.
그러다 보니 다 읽지 못한 책도 많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책들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글이 나에게 약이 되기 시작했다.
동생 책도 많이 읽었다.
동생의 책은 대부분 기독교 서적이었다.
나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책을 보며 보냈고,
200권이 넘어갈 즈음에는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회복되고 있었다.
자서전도 많이 읽었다.
책 속에는 나보다 훨씬 더 가혹한 환경을 견디며 살아온 사람들이 많았다.
책을 보며 울고 웃었다.
제목은 가물거리지만, 삼청교육대에 아무 이유도 없이 끌려 들어간
한 목사님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곳에서 인간답게 살 수 없었던 삶의 기록은
내가 느끼던 억울함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책을 읽다가 저녁 무렵이면 동네를 한 바퀴 걷는 것,
그것이 그 시절 내 일상의 전부였다.
어쩌면 나는 그렇게 걷고, 책을 보며
조금씩 나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겨울을 좋아한다.
그해도 겨울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배낭을 메고 기차를 타고 무작정 춘천으로 향했다.
그때부터 겨울 여행을 즐겨 다니기 시작한 것 같다.
대부분 호수나 강이 있는 곳으로 갔다.
나의 여행은 끝없이 걷는 것뿐이었다.
가끔 허기를 달래는 빵 하나면 충분했다.
살면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춘천.
이유도 없이 그곳이 가고 싶었다.
기차를 타고 춘천역에 내려 택시를 타고 공지천으로 갔다.
호숫가를 한없이 걷고 또 걸었다.
한겨울 햇살은 여름 못지않게 따사로웠고,
햇빛이 비추는 호수는 은가루를 뿌려 놓은 듯 아름다웠다.
내가 강이나 호수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위에 반짝이는 윤슬을 볼 수 있어서다.
어둑어둑 해가 지고 호수 옆길을 정처 없이 걷다가 작은 카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카페 안으로 들어가 커피 한 잔을 시키고 앉아
가방에서 연습장을 꺼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몸을 녹였다.
구석자리에는 화초가 많아 내가 잘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더 편안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카페 주인이 다가왔다.
네잎클로버를 모아둔 상자를 보여 주며
그중 가장 크고 예쁘게 코팅된 클로버 하나를 내게 건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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