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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bobusang Mar 31. 2024

프롤로그

호우시절

    “당신의 호우시절은 언제였나요?”

    “저의 호우시절은 여태까지 살아온 모든 날 있었고 살아갈 날도 그러하리라 믿습니다”

라고 자문자답합니다.


 ‘호우시절’(好雨時節)은 시기적절하게 내리는 좋은 비를 말합니다. 중국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가 쓴‘춘야희우’(春夜喜雨)라는 시의 첫 구절인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 에서 나온 말입니다.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라는 뜻이지요.



열차를 타고 가는 지금 창밖에는 곧 비가 올 듯합니다.

 다양한 인간군상의 삶을 실은 열차는 지구의 축소판이자 인간의 인생을 닮았습니다.


그래서 출발지와 도착지만 있는 비행기보다 중도에 내릴 여지를 주는 열차가 그렇게 좋았나 봅니다.


 당신의 열차가 언제 종착역에 도착하느냐고 묻는다면 절반은 온 거 같은데 모르겠다고 웃을 수밖에요.


 그날이 먼 훗날이 될지 지금이 될지는 하늘의 일이니까요. 지금, 이 순간 내가 알고 있는 단 한 가지는 아직 내릴 간이역이 더 남았다는 겁니다.


 

 앞만 바라보던 시선을 무심히 창밖으로 던지니 대유산(大乳山)이 눈에 들어옵니다. 여성의 유두를 닮은 산이라는 친구의 직설적인 농에 산을 가리키는 친구의 손가락마저 쳐다보지 못한 채 애꿏은 노을 탓을 하며 얼굴에 노을 물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자세히 보니 산의 형상이 정말 닮았습니다. 한 고승이 불법을 구하러 가는 여정을 쓴 기행문에 어머니의 가슴을 닮은 산이라며 대유산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삶의 이야기도 고정된 시선을 밖으로 돌릴 때 비로소 보이는 게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에게 집중하라고 내면의 소리를 들으라고 합니다. 그 말이 마음과 시선을 내게만 고정하라는 뜻은 아니겠지요.



  고 이어령 교수는 목자의 뒤통수만 쫓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이 되지 말고, 자기 인생을 주도적으로 사는 한 마리의 탕자가 되라고 요구합니다. 또다시 그분의 다그침이 들리는 듯합니다.

‘너만의 이야기로 존재했어?’


 존재란 눈으로 실체가 보인다는 겁니다. 눈으로 보이는 것은 사물일 수도 사람일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데카르트는 정신과 육체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고 역설했습니다.


 이제는 이 이분법을 뛰어넘어 밖으로 표현해 낼 이야기로 존재를 설명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당신의 호우시절은 언제였나요?”


혹자는 어린 시절을 떠올릴 것이고, 혹자는 지금이 인생 최고의 날이라고도 할 것이고, 아직 그때가 오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 인생 이야기를 여기서 함께 나누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 책은 저의 살아온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동시대를 산 사람들이 겪은 아픔이고 연민이며 삶에 대한 애착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또한, 절반의 생을 살아 낼 출발선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이 책이 내 인생을 한 번쯤 정리하려고 자서전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특히, 새 인생의 출발점에 선 분들에게 이 책을 받칩니다.




2024년 3월

목련꽃 봉오리에 잉태된 봄을 깨울 호우를 기다리며 베이징에서

이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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