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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bobusang Apr 06. 2024

유년의 추억

 깊은 산골짝의 계곡물이 흘러드는 듯 시원한 개울물이 돌부리를 덮치며 콸콸 흐른다. 바지를 정강이까지 둥둥 걷고 개울 한 가운데 선 여자는 뼛속까지 요동 치는 냉기를 느끼면서도 가냘픈 다리로 용케 버티고 서 있다.


 미동도 없던 눈동자가 잠시 한 낮의 햇빛과 반짝 마주치는 순간이었다. 여자의 동공이 흔들리며 물끄러미 바라본 곳에는 낯익은 슬래브집들이 반신만 들어낸 채 들어서 있다. 큰 방울이 정수리에서 길게 달린 모자를 쓴 예닐곱 되어 보이는 계집아이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파란 대문을 들어선다.


 좁은 마당을 한껏 차지하고 있는 우물에는 파란 이끼가 꼈고, 문도 없는 부엌에는 가마솥 하나가 덩그러니 앉아 있다. 방에서는 멥쌀을 씹어 먹으며 일본으로 수출할 비단을 틀에 끼워 홀치기를 하는 아낙들의 들뜬 농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계집아이는 어른들의 세계에 끼어들 자신의 자리가 없다는 걸 눈치채고 어느새 소쿠리를 쥔 손으로 균형을 잡으며 개울을 건넌다.



 슬래브 집 맞은편에는 개울을 사이에 두고 잿빛 시멘트로 낮게 지은 양송이 버섯 공장이 있다. 그 공장에서 한 젊은 남자가 손수레를 끌고 나오더니  흙더미를 개울가 둑 아래로 부어 놓고 돌아선다. 계집아이는 이미 예견이라도 한 듯  앞으로 단걸음달려간다.


 버섯을 키우는데 썼던 흙을 갈아 줄 때 버리는 흙 속에는 간택을 받지 못한 작은 버섯들이 함께 묻혀 버려진다. 그것을 아는 이 동네 사람들은 버섯 사 먹을 일이 없다. 계집아이는 자기보다 손이 큰 동네 언니들이 몰려올세라 통통하게 살이 오른 하얀 손으로 바쁘게 흙더미를 헤집는다. 갓을 온전히 쓴 잘생긴 버섯을 골라 소쿠리에 담을 때는 진지함마저 엿보인다. 살림꾼이라며 좋아할 어른들 생각에 잔뜩 부풀어 한 소쿠리를 채우고서야 뒤뚱거리며 개울을 건넌다.


 개울에 걸쳐 앉은 철로를 따라 어제도 찾아왔던 외로운 방랑객이 길게 여운을 남기며 떠난다. 방랑객이 지나간 자리, 학교를 마치고 놀거리를 찾아다니던 사내아이들이 철로 다리 밑으로 우르르 몰려든다. 계집아이는 자기 오빠가 그 무리에 있어서인지 뒤질세라 냅다 같이 뛴다. 기차가 지나 가면 다리 밑으로 여기저기 쇠붙이를 찾아 다닌다. 쇠를 줍는 일은 가난한 동네 아이들이 부모한테 욕을 먹지 않고 엿이며 설탕 발린 큼지막한 눈깔사탕을 사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돈벌이였다.


 갈바람에 개울가 지천에 깔려 있던 수초가 스러지고, 홑겹의 문풍지앞에서 음침한 곡 소리를 내며 지나갈 때쯤 계집아이는 방문앞에서 서성인다.


 계집아이 할머니의 기침 소리, 양은 깡통에 가래 뱉는 소리가 자지러지고, 북소리가 고막을 뚫는 굿판이 벌어지면서 작은 동네가 들썩거린다.


 허파와 심장의 모든 바람과 피를 다 게워 낼 듯 끊이지 않는 할머니의 기침 소리는 몇 해를 함께 산 손녀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연례행사였다.

 

 무당이 신옷을 입고 널뛰면 버선발 사이로 보이는 할머니의 퉁퉁 부은 시뻘건 얼굴은 흡사 저 세상 사람의 것이었다.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빌고 있는 부모를 보면서 계집아이는 인간에게 생과 사가 있다는 걸 어렴풋이 의식하는 듯 코를 훌쩍거리고 있었다.


 계집아이의 아버지는 장손 집안의 독자였다. 당신의 아들이 잉태된 줄도 모른 채 돈을 벌어 오겠다며 일본으로 떠난 할아버지는 아들이 결혼해 손주 셋을 낳을 동안 소식이 없었다. 할머니는 과부 아닌 청상과부가 되어 장손 집안의 며느리로 자기 아들보다 한 살 많은 시동생을 같이 업어 키우며 살았다.


출처: 고 박정희 대통령 생가

 할머니는 아버지의 얼굴조차 모르고 자란 아들이 군대에 가자 어미 혼자 편히 지낼 수 없다며 삼 년을 꼬박 찬밥에 한겨울에는 방에 불도 지피지도 않고 냉골에서 잤다고 한다.


 그후 가래 기침병은 가을 언저리쯤 시작해 한겨울이 되면 생사를 넘나드는 고질병이 되었다. 굿은 약으로도 고칠 수 없자 이를 보다 못한 아들 내외가 혹시 조상을 잘못 모신 탓인지 모른다는 이웃 말에 궁여지책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참꽃이 화사하게 피는 봄이 오면 할머니의 기침병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때쯤이면 여느 젊은 아낙보다 건강했던 할머니는 낮에는 남의 집 밭일을 해 주고, 밤에는 촉수 낮은 등불 아래서 비단 홀치기를 해 번 돈으로 생활했다. 평생 자식 돈을 받지 았고, 돌아가신 후에는 아껴 입던 코트에서 삼백만 원이 든 통장을 발견했다. 친척 말에 의하면 당신의 장례 비용이라며 몇 차례 귀뜸을 했다는 것이다.


 없는 장손 집안에 시집와 손주를 세 명이나 안겨준 며느리를 아들보다 끔찍이 위했다. 이웃의 말처럼 첫 손자를 남편 삼아서 때로는 아들 삼아 의지했다. 딸을 키워본 적 없는 할머니한테 손녀 또한 며느리와 같이 딸 같은 존재였다.


 마당에서는 할머니가 큰 솥단지를 내걸고 겨우내 쿰쿰해진 고구마를 다듬어 손주들한테 줄 엿을 정성 들여 고고 있다.


 엿 틀에서 쭉쭉 늘어날 엿이 언제 나올지 연신 마당과 방을 오가던 계집아이의 코끝에 버섯 향을 품은 구수한  흙냄새가 스친다.


 그때까지도 개울 한가운데 서 있던 여자는 복숭아뼈를 차고 올라 정강이를 철썩이는 것이 노란 소변이라는 것을 안 순간 소스라치며 잠에서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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