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 대하여
Fear is the main source of superstition, and one of the main sources of cruelty. To conquer fear is the beginning of wisdom.
두려움은 미신의 주 근원이자, 잔혹성의 여러 근원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지혜로워지는 첫걸음은 두려움을 정복하는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누구에게나 두려움은 있다. 인간에게 두려움은 가장 기본적인 감정이자, 인류가 생존을 지속해 온 이유이기도 하다. 두려움은 불안한 내적 상태를 나타내 주기도 하고, 반드시 극복해 나가야 하는 그 무엇이기도 하다.
현대 사회는 불안사회이자 피로사회로 명명되고 있다. 엄청난 변화의 속도에, 매일의 경쟁 속에 두려움의 정체를 넘어 불안의 일상화에 현대인 모두가 노출되어 있다.
불안, 우울, 낙심, 절망, 실패, 패배감, 무력감 등 두려움의 이면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불과 2-30년 전만 하더라도 정신의 두려움보다 귀신의 존재에 대한 공포가 일반화된 사회였다. 밤과 어둠은 보이지 않는 그 무엇에 휘둘렸고, 재래식 화장실은 귀신이야기의 단골 출몰 장소이기도 했다. 현대 사회로 오면서 이런 것들은 사라진지 오래고, 코미디의 소재로 희화화되는 현상에 시대의 변화를 실감하게 한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절망의 순간이 있다. 변하지 않는 현실, 그 무엇도 되지 않는 상황, 어떤 계획도, 판단도, 생각도 다 무너진 때가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마주할 때가 존재한다. 지금의 청년세대를 포기하는 세대라 한다. 취업도, 결혼도, 출산도 모두 포기를 넘어 그저 외면해 버린 절망의 세대라 한다. 기성세대도 다르지 않다. 고령사회로 평균수명은 과학적으로 점점 더 연장되고 있고, 유병장수로 부모봉양과 자녀양육의 이중고를 지속 경험하는 세대이며, 세대갈등의 일반화로 불안은 지속화를 넘어 일상화된 슬픈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인류에게 가장 절망의 순간은 죽음이다. 죽음을 인류는 극복하지 못했고, 죽음의 두려움 앞에 인류는 결국 마주한다. 언젠가 마주할 두려움이지만 일상적 삶을 최선을 다해 영위해 나가는 것이 그 극복의 첫걸음이자 자연의 이치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하지 않겠는가!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지혜의 첫걸음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어떤 삶을 사는 것보다 무엇을 할 지가 더 지혜로울 수 있다.
자연의 섭리를 따라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그 생활을 루틴화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매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운동장을 뛰고 나면, 가슴이 뛰는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된다. 24시간의 자연 섭리에 정확히 반응하여 일찍 일어나고, 규칙적인 식사를 하고, 규칙적인 취침을 시작해 보는 것이다.
신체를 단련하고, 수양한 것은 체력을 증진하기도 했지만 과학적으로 신경을 자극하여 반응하게 한다. 이는 뇌를 자극하여 신경호르몬의 작용을 활성화하게 되는데,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하는 신경전달물질(세로토닌, 도파민)을 분비시킨다.
이는 우리가 지금까지와 다른 일상을 알리는 중요한 문을 여는 시작이다. 규칙적인 일상을 살아내는 것, 지루한 일상의 프레임을 만들어 내는 루틴에서 나는 오늘 우리 현대 사회, 현대인의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의 열쇠를 찾았다.
규칙성은 반복적인 것이며, 지루한 과정의 연속과 같은 말이다. 자연 법칙이라는 것이며, 이는 예측가능한 과학이라는 말과 연결된다. 두려움과 불안은 예측불가능한 그 무엇이나, 우리의 일상을 규칙적으로 살아내는 것으로 그 무엇을 극복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시작이 반이다.
Try!!! Just Do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