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환승하다 문뜩 지하철 한 구석에 있는 나무들을 보게 되었다.
자작나무도 스파트 필름도 맥문동도 밑에 있는 꽃잔디도 모두 조화였다.
엄밀히 말하면 자작나무는 절반만 조화입니다. 자작 나무줄기는 진짜 나무의 줄기를 자른 것이고 잎과 가지만 조화였다.
친구를 만나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실내를 장식한 커다란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역시 반만 조화였습니다. 나무줄기는 진짜이고 잎과 가지는 조화였습니다. 실제 수목을 낮은광도의 실내에 식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마찬가지로 생화를 심어도 관리하기가 어렵습니다.
요즘에는 조화의 퀄리티가 굉장히 좋아져 거리를 두고 보면 실제 식물과 구별하기 힘들기 때문에 저런 조화들이 굉장히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푸른 식물의 모습을 보기 위하여 조화로 실내를 장식합니다.
하지만 일 년 내내 변함없이 항상 푸른 것은 진짜가 아닙니다.
일 년 내내 낙엽이 지지 않는 상록수도 관엽식물도 자세히 보면 조금씩 잎이 낙엽이 져서 떨어집니다.
진짜 살아있는 식물이라면 잎색이 변하기도 하고 낙엽이 지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계속 변화합니다.
살아있는 생물이라면 변하지 않을 수가 없겠지요.
우리의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살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일들이 생기고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많은 고난들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지치게 합니다.
세상의 무대에 나설 때 꿈을 가지고 푸르렀던 우리의 마음은 메마르고 찢기고 갈라집니다.
하지만 추운 겨울의 비바람을 견디고 따스한 햇살 속에서 새싹이 나오듯 우리의 삶에도 따스한 순간이 돌아옵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항상 푸를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또 살아있기 때문에 다시 푸르름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항상 푸르를 수가 없는 것이 진짜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