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일일수록 솔직해야 하는 이유
고통과 슬픔을 밖으로 표출하는 사람이 있는 한편, 내 안으로 품어안는 사람이 있다.
그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각자가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니.
나 같은 경우에는, 안으로 품어안는, 그것도 온전히 깊숙히 품어안는 사람이다.
고통과 슬픔의 감정을 온전히 느낀 후에야 해소되었음을 느낀다.
그러나 최근 알게 된 나의 특징이 있다.
스스로 내가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을 때, 그것을 외부로 티내고 표출하였을 때에는 그 감정을 느끼는 과정은 고통스러우나 금새 해소된다.
그러나 오히려 내가 '괜찮아 별거 아닌걸'이라고 자기합리화하였을 때, 내 안으로 파고든 감정은 내 신체를 망가뜨린다.
최근에 불합격의 연타를 맞았다. 나는 나와 나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괜찮아 - 원래 떨어질 줄 알았어. 별거 아니야 하나도 안슬퍼'라며 괜찮은 척 합리화를 했다.
사실은 많이 속상하고 힘들었는데 말이다. 그걸 인정하면 내가 너무 초라해질까하는 그 자존심 때문에 인정하고 싶지 않았나보다. 남들에게, 가족들에게, 심지어 나 자신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진정으로 속상한 나의 진심은 갈 곳을 잃은 채 내 몸을 파고들고 있는 줄도 모르고.
생각해보니 작년 위경련으로 고생했던 때도, 쉐어하우스 옆 방 학생이 매일 새벽마다 소리를 지르며 욕설과 고함을 질러 잠도 못자고 두려움에 떨었을 때,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 그리고 이까짓거에 스트레스 받는 내가 나약해보일까봐 스스로 괜찮다고 적응했다고 합리화하였을 때 나타났다.
이전까지는 몰랐다. 나는 그냥 잘 딛고 일어나지만, 또 자주 몸이 아픈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근데 이번 불합격 이후 위장이 갈기갈기 찢기는 경험을 하며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살면서 정말 몸이 아파 앓아누웠던 순간들은, 내가 진짜 힘들다고 인정했을 때가 아니라 스스로 힘들지 않다고 합리화하였을 때라는 것을 깨달았다.
갈 곳 잃은 슬픔은 결국 내 몸을 파고든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든 외부로 나타난다.
이번엔 위경련이었지만, 다음에는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지 모른다.
그러니, 내가 먼저 외부로 표출하는 선수를 치는게 어쩌면 나를 위해, 나의 슬픔을 위해 좋은 일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