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아빠와의 관계는 어려우면서 간단하다.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에서 비롯되었다는 점 참고 바란다. 적어도 우리아빠와 나의 관계는 이러하다.
딸의 생애주기별로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어린 아이일 때 아빠는 그 누구보다 크고 대단한 존재이다. 괴물이 나타나도 아빠가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냥 이유없이 아빠를 사랑한다.
사춘기 시절에는 여자가 되며 가끔 아빠라는 존재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버지의 옛날 사고방식을 사춘기 소녀의 몸과 마음이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아빠를 사랑한다.(하지만 그런 낯간지러운 말은 하지 못하는 때이다.)
어른이 되면 비로소 아빠가 이제껏 살아왔던 세상이 조금씩 보인다. 이때부터는 아빠를 사랑하는데에 이유가 생기기 시작한다.
아빠의 생애주기별로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어린 아이일 때는 너무나 사랑스럽다.
사춘기 시절에는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사랑스럽다.
어른이 되면 아직도 사랑스럽다.
비로소 아빠가 이제껏 살아왔던 세상이 조금씩 보이며, 이런 세상을 어떤 마음으로 견뎌왔을지 그 무게가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아빠의 흰머리와 주름, 그리고 작은 몸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아빠의 키가 이렇게 작았던가. 이렇게 작은 몸으로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막아왔던건가.
자기 자신을 돌보고 자기를 위한 삶을 살기보다는, 가족을 위해 늘 희생하는 삶을 살아온 아빠에 대해
딸의 시선으로 기록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