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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Aug 18. 2023

나의 2번째 퇴사기 : 계약 기간까지만 하겠습니다!

나의 2번째 퇴사기 : 계약 기간까지만 하겠습니다!


계약직이라고 다른 직원과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직원들과의 관계도 좋았고 평소 일과 속에서 느껴지는 차별은 전무했다.

단지 소소하고 미묘한 것들이 가끔 내 고용 형태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명절 수당, 선물 그리고 가끔 무언가를 나눠줄 때 소외가 된다는 것.


나에게 이모뻘이었던 청소년 공부방 선생님은 그런 것들에 많이 마음 상해하셨다.

그러면서 나에게 빨리 정규직으로 입사하라고 독려하셨다.

'샘이 저들보다 일을 못해? 뭘 못해?! 솔직히 00샘이랑 샘이랑 자격증 급수도 같잖아!

저렇게 일하고 200인데 샘은 이렇게 하고 100이 말이 돼?!'

그때 처음 알았던 것 같다. 와 정규직과 급여 차이가 내 생각보다 컸구나.


하지만 내가 가장 싫었던 점은 그게 아니었다.


계약직이라 재단에서 오는 모든 혜택에는 제외가 되는데 왜 재단 체육대회는 필참일까?
들어오는 온갖 물품 중 좋은 것은 그들이 나눠 가지면서 바자회 후원기업은 왜 10곳씩 필수적으로 뚫어오란 걸까?
그들은 토요일에 일하면 수당이 나온다지만 나는 수당도 없는데 왜 온갖 행사에 동원될까?


권리가 없는 것은 참 괜찮은데 의무를 나눠 가지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복지관 직원이 아닌 교육청에서 인건비를 지원하는 계약직인데….

왜 그들에게 필요할 때는 복지관 직원이되고, 아닐 땐 외부인력이 되는 걸까…?


토일 워크숍에 필참이었을 때가 가장 최악이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나에게는 일요일이 너무 소중했다.

그 소중한 주말을  알코올과 토 냄새, 아저씨들의 불쾌한 접촉(어깨동무 등), 술을 안 먹는 나에게 술을 가르쳐주겠다는 불편한 접근 등으로 괴롭게 보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처음 가는 워크숍이라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할거라 생각했던 건 나의 크나큰 오해였다.

버스에 타는 순간부터 배급되는 알코올에 목적지인 속초에 도착하자마자 이미 절반은 만취 상태였다.

그 상태로 먹고, 게임하고, 또 먹고, 게임하고….

반복되는 술 권유에, 불쾌한 접촉에, 중간중간 게워내는 모습까지 봐야하다니….

회사워크숍만 아니면 그대로 서울로 도망가고 싶었다.


그리고 그 끔찍했던 워크숍에서 돌아온 다음 날인 월요일, 

나는 다시 출근하여  풀로 한 주를 보내야 했다.

근데 정규직들은 1박 2일 워크숍에 대한 대체 휴무를 받았다고 한다.


이게 뭐지…? 내 주말은 누가 보상해 주지?


처음으로 현타가 오는 순간이었다.

나의 2번째 퇴사는 계약 기간 종료와 함께 찾아왔다.

연말이 다가오며 우리 방과후 교실에 안 좋은 소식들이 연이어 들려왔다.

교육청 예산지원으로 운영되던 야간 방과 후 사업에 내년부터 지원이 끊어진단 소식이었다.

팀 회의에서는 복지관 자체 예산으로 사업을 이어갈지 말지 매주 의견이 엇갈렸으며,

사업을 이어가더라도 인건비 절감을 위해 파트타임으로 시간을 줄이게 될 전망이었다.

간단히 계산해 봐도 60만원 남짓 되는 월급, 시간도 애매하게 잘려 다시 투잡으로 돌아가야 하는 수준이었다.


한동안의 혼란 끝에, 아이들이 있으니 방과후를 폐쇄하기보단 시간을 줄여 운영하는 방향으로 야간 방과 후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 회사에 남지 않기로 했다.

60만원의 적은 월급으로는 미래가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또다시 건강을 헤쳐가며 투잡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계약기간까지만 근무하는 게 좋겠다는 나의 결정을 회사에 전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한 합리적인 결정이기에 회사에서도 예견하셨는지 오래 잡진 않으셨다.

다만 정규직으로 다른 팀(노인 분야)에 들어가는 것을 제안하셨는데 그 제안은 바로 거절했다.

노인 분야는 내 일이 아니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계약기간까지 근무하고 퇴사하니 얼마간은 실업급여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는데 이런 상황이 미안했는지 회사에서 먼저 안내를 해주셨다.

그즈음 나는 진로에 대한 고민도 많았고, 또 1급 사회복지사 자격증 시험도 준비하고 있었기에 실업급여는 나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다음 스텝은 어디로 갈지 막막한 건 사실이었다.

그렇게 10개월의 계약기간 종료로 나의 2번째 퇴사가 마무리되었다.

아이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는 마지막 날,

아이들은 내게 물었다.


"그래서 선생님 몇 살이에요?! 이제 알려줘도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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