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해본 콜센터 업무이지만 전공 관련 법과 정책을 설명해 주는 일이라 나름의 자부심을 느끼며 일하게 되었다.
입사해 보니 동갑내기 친구와 20대 동기 언니도 있어 직장생활이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9시 업무 개시 6시 칼퇴가 철저하게 지켜지니 이보다 편할 수 없었다.
기본급은 이전직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여기엔 다양한 수당이 존재했다.
처음엔 거기까진 욕심이 없었다.
그냥 공부하고 훈련받으며 즐겁게 직장생활을 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대상과 범위가 확실한 콜센터라 콜센터 치고 진상이 없기도 했다.
그렇게 첫 달 수습이 끝나고 실적발표가 났다.
내가 2번째라고…?!
입사 첫 달, 더듬더듬 일을 배워나가던 중이라 생각했는데….
요령 피우지 않고 열심히 했더니 예상치 못한 좋은 결과가 나왔다.
첫 월급을 받아보니 수당이 50만원 이상 나왔다.
당시로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생각보다 짭짤한 대가였다.
수당과 더불어 한 줄로 전달되는 그달의 성적표에 나는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 뒤 회사생활은 갑자기 치열해졌다.
무조건 상위권에 랭크되기 위해, 가장 높은 수준의 수당을 받기 위해 나는 매뉴얼을 달달 외우기 시작했고 웬만한 문의는 책을 펼칠 필요 없이 바로 안내가 가능했다.
한 콜을 끝내면 쉬지 않고 바로 콜을 받았고 매일 출근하면 화장실을 가는 척 움직여 벽에 붙어있는 전날의 실적표부터 들여다보곤 했다.
TOP 3안에 들지 않은 날이면 물 마실 틈도 없이 전화만 받았다.
성과가 바로 수입과 연결되다니….
내가 속해있는 업계의 특성상 그 후로 지금까지 다시는 그런 직장을 만나지 못했다.
힘든 게 없었던 것은 아니다.
때때로 진상을 부리는 분들의 콜이 유입되기도 했다.
대놓고 불법적인 방법을 요구하거나, '아몰랑 니가 해줘~!', 상황에 대한 설명없이 화부터 내는 사람까지….
참 다양한 진상들을 만났던 것 같다.
(이런 분들이 기관장급이니 내 사회생활이 지금까지도 평탄치 않은 건가?)
그런 분들을 상대하며 전화기를 1시간 넘게 붙잡고 있다 보면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나….'
현타가 오기도 했다.
정책이나 시스템도 수시로 바뀌니 숙지해야 하는 내용도 참 많았다.
책상은 온통 메모지로 가득했다.
게다가 변화가 생길 때마다 밀려 들어오는 민원은 다 우리의 몫이었다.
지난달에 A로 안내했는데 이번 달부터 B라니….
성난 민원인에게 정책이 오늘부로 바뀌었다 아무리 설명해 봐야 그저 우리의 잘못일 뿐이었다.
내가 받는 전화가 수시로 모니터링되고 있다는 것도 스트레스 요인 중 하나였다.
상담 내용뿐 아니라 목소리와 말투, 응답 속도까지 모든 걸 신경 써야 했다.
가끔 무언가 잘못된 날, 하필 누군가 그 콜을 모니터링하게 된다면 바로 불려 가 시정 요청을 받아야 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누군가 불려 갈 때마다 나까지 덩달아 심장이 쫄깃해졌다.
하지만 당시 열심히 다듬은 덕분에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전화 목소리와 민원 응대 솜씨는 어느 직장에서도 인정받는다.
진상을 다루는 솜씨 역시 전화로는 수준급이다.
덕분에 진상에게 전화 좀 대신해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는 게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이지만.
하지만 높은 수당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 아니다 보니 일에서 의미를 찾기가 쉽진 않았다.
직접 무언가를 해주는 게 아니라
그저 정책이나 시스템을 안내만 해주는 역할이다 보니 자동응답기가 된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성과로 인정받는 시스템….
그거 하나만으로도 당시 나에겐 정말 매력적인 직장이었고,
온 힘을 쏟을만한 가치가 있게 느껴졌었다.
어느새 돈의 맛을 알아버린 사회생활 3년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