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이 말을 꺼낸 후 정확히 일주일 뒤에 찾아왔다. 항상 밤에 찾아와, 슬그머니 새벽녘에 내주위를 가득 채운다. 나는 밤에 눈을 떠버렸다. 내일의 출근과 나를 배신하는 파괴적인 일탈이었다.
‘이렇게까지 했다고? 내가 그 때 진짜 미쳤구나.’
이미 선잠에서 깨버린 나는 한숨을 쉬며 방 정리를 시작했다. 옷장에 걸쳐있는 옷들을 이리저리 개며 과거를 떠올렸다. 옷장은 옷을 넣는 공간이 아니라 현대 산업디자인으로 재해석한 거대한 마네킹이다. 수많은 옷들과 가방, 스카프와 목걸이들을 걸치고, 구기고 말아 주인의 삶의 양식을 표현하는 거대한 조각상이다. 그래서 이 표현물의 해체주의적 해석을 통해 나의 살갗에 밀접해있던 그것까지도 찾아갈 수 있었다.
‘참 지독하게 굴었지. 그런데 그 때로 돌아가도 똑같을 거 같아.’
나는 한숨을 쉬며 옷을 개었다. 나도 변했고 이것도 이미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과거의 기억들을 늘어지도록 틀어봤자 오히려 선명해질 뿐 변하는 것은 없었다. 항상 약간의 두려움과 호기심, 설렘 등이 일정 비율로 섞인 감정을 동반한다. 이 비율은 사람마다 다르고 각각의 경험에 따라 다양하다. 하지만 항상 언젠간 모두에게 찾아오고, 가까이 다가올수록, 셔츠 안쪽으로 슬며시 들어온 그것에 대한 미래를 그려본다. 나는 이번엔 다를 거라고, 좀 더 교활하고 똑똑해질 거라고.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그것에 지독하게 얽힐 것 또한 알고 있다.
오지 말라고 소리지르고, 문을 잠그고 동굴 속으로 파고들어도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온다. 길을 걷다가 소나기처럼 내리치기도 하고, 새벽녘에 스르르 내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들기도 한다. 지독하게 열병에 시달리다가 어느 순간 흔적까지도 깔끔하게 정리한 듯 사라져버린다. 날카로운 돌가루로 긁힌 쇳자국처럼 지워지지 않는 아련한 그리움만을 남기고 증발할 것이다.
‘결국 지나가겠지.’
얼추 옷을 다 개었다. 다행히 옷을 그 전에 모두 빨아버려서 다행이었다.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것 같아도, 내 몸과 습관은 반복되는 주기에 차츰차츰 적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핸드폰을 켜고 날씨를 검색했다.
‘내일 25도까지 떨어진다고? 입을 옷도 없는데.
나는 옷장에 고시원처럼 꾸역꾸역 자리를 끼어 앉은 옷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지독한 여름 공기가 찾아왔다.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에어컨을 틀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