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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여정의 시작은 나를 아는 일

by 김남정

여정은 늘 멀리로 떠나는 일이라 여겼다. 낯선 도시의 골목을 걸으며, 이름 모를 바다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길이란 반드시 밖으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나를 향한 길도 있다는 것을 그날 깨닫게 되었다.


"나를 찾는다'는 말엔 어쩐지 긴박함이 깃들어 있다. 잃어버린 나를 되찾지 못하면 모든 게 어그러질 것 같은 조급이 있다. 하지만, '발견한다'는 말은 다정하다. 이미 내 안에 있었지만 미처 보지 못한 나를, 햇살이 한 점 스며드는 순간처럼 우연히 마주하는 일. 그때의 놀라움과 고요함이, 내가 말하는 여정의 시작이다.


길 위에서는 늘 예기치 않은 일들이 생긴다. 예상치 못한 비에 발이 젖고, 돌아서던 골목에서 뜻밖의 풍경을 만난다. 삶도 그렇다. 돌아가야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있고, 멈춰 서야만 들리는 마음의 목소리가 있다. 그때 비로소, 나는 내가 얼마나 많은 나를 품고 살아왔는지를 깨닫는다.


엄마의 손끝에 남은 계절의 냄새 속에서,

아이들이 떠난 빈방의 오후 햇살 속에서,

나는 낯설도록 익숙한 나를 다시 만난다.

여정은 결국 세상을 빙 돌아 다시 나에게 닿는 길이었다.

내가 걸은 모든 길의 끝에는, 늘 내가 서 있었다.


이 책은 그 여정의 기록이다.

지도에도, 시간표에도 없는 길을 걸으며 조용히 나를 발견해 온 순간들의 이야기다.

나는 여전히 길 위에 있다.

그리고 그 길은 오늘도 나를 조금 더 깊이 나에게로 데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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