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열심히 살아온 사람에게, 법정 스님이 던지는 질문

<스스로 행복하라>를 읽고

by 김남정

"즉시현금 갱무시절(卽時現今 更無時節).


바로 지금이지 다시 시절은 없다."


법정 스님의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늘 '나중'을 핑계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조금 더 안정되면, 조금 더 시간이 나면. 그렇게 미뤄둔 말과 행동은 어느새 습관이 되었고, 지금 이 순간은 늘 준비 단계로 남아 있다. 하지만 스님은 단호하다. 우리가 살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지금, 여기뿐이라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 역시 근원적인 질문 앞에 섰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나는 앞만 보고 달려오지 않았나. 베풀지 않은 삶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돌아보면 성실하게 살았다.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았고,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성실함이 늘 '나와 내 가족, 내 책임'안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닌지, 타인을 향한 마음은 늘 다음으로 밀려났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IE003560889_STD.jpg ▲책표지<스스로 행복하라 , 법정> ⓒ 샘터


<스스로 행복하라>(2021년 5월)는 답을 내리는 책이 아니다. 대신 질문을 던진다. 과거에 대한 미련도, 미래에 대한 과대한 기대도 내려놓고,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다. 그것이 후회 없는 삶이라고 한다.


말은 간단하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숨에 읽히기보다, 마음이 시끄러울 때, 삶이 어긋난 것처럼 느껴질 때, 나는 이 책을 다시 꺼내 든다. 그때마다 문장은 같지만, 질문은 조금씩 달라진다.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문득 떠오른다는 인도의 성자 카비르의 시가 책 속에 인용되어 있다.



"빛의 비가 내리네
보이지 않는 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질문과 대답이 이루어지고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없네....."


이 시를 읽으며 나는 '베풂'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베풀기를 종종 거창한 미덕으로만 여긴다. 큰돈을 내놓아야 하고, 대단한 헌신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법정 스님은 말한다. 삶에는 정답이 없으며,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는 기준도 없다고. 중요한 것은 처지와 환경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마음을 내는 일이라고 한다.


이 말은 지금의 우리 사회에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경쟁은 일상이 되었고, 비교는 습관이 되었다. 누군가는 너무 빨리 달려야 하고, 누군가는 출발선에 설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이런 사회에서 '베풀라'는 말은 때로 공허하게 들린다. 나도 버거운데 어떻게 남을 돌아보느냐는 반문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스님은 묻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마음을 열 수 있을까."


법정 스님은 진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눈 속의 눈으로, 귓속의 귀로, 마음속의 마음으로 받아들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은 서로 다른 종교와 생각 속에서도 하나의 진리를 발견하지만, 닫힌 마음은 하나의 진리 대신 차별만을 찾아낸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요즘의 풍경을 떠올렸다. 서로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조금만 다르면 등을 돌리는 사회.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능력이나 성취가 아니라, 마음을 내는 용기인지도 모른다.


아직 긴 인생사를 논하기에는 이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크게 베풀 수 있고, 누군가는 작은 친절 하나로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비교가 아니라 성찰이다. 오늘의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가, 지금의 나는 얼마나 타인을 향해 열려 있는가를 묻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삶이 잘못된 것 같아서가 아니라, 너무 열심히 살아왔기에. 늘 최선을 다했는데도 마음 한 편이 허전한 사람에게, 관계에 지치고 스스로에게 엄격해진 사람에게 이 책은 조용히 말을 건넨다. 잘 살고 있다. 다만, 잠시 멈춰 마음을 돌아보라고.


<스스로 행복하라>는 삶의 방향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속도를 늧추지 않아도 괜찮으니, 마음만은 놓치지 말라고 말한다. 베풀지 않는 삶은 과연 행복할까. 이 질문 앞에서 나는 아직 완전한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도 이 질문을 품고 살아간다. 아마 그 질문을 놓지 않는 삶, 그 자체가 법정 스님이 말한 '스스로 행복해지는 길'일 것이다.


#법정스님 #스스로행복하라 #샘터 #베품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91484


keyword
작가의 이전글승강기에서 시작된 작은 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