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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걱을 겁내지 말자

작은 흔들림 속에서 배우는 것들

by 김남정

삶을 살다 보면, 글을 쓰다 보면, 혹은 어떤 일로 시작할 때마다 우리는 자꾸만 멈칫한다. '이게 옳은 방향일까, 이걸 해도 괜찮을까'하는 망설임 속에서 시간이 흘러간다. 그러나 멈추는 순간, 생각은 더 많아지고 발걸음은 더욱 무거워진다. 나 역시 그런 시간을 여러 번 지나왔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는다. 일단 쓰자. 읽고, 배우고, 체득한 것을 내 안에 오래 담아두기만 하지 말고, 꺼내어 늘어놓자. 그것이 서툴더라도, 문장이 매끄럽지 않더라도 괜찮다. 쓰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낫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 삐걱거리며 성장하듯, 글도 삶도 삐걱이며 나아가는 것이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아침에 글을 쓰려고 책상을 마주 앉았는데, 아무리 손을 움직여도 한 줄이 채워지지 않았다. 괜히 메모장을 들춰보고, 커피만 마시다 시간이 흘러갔다. 그날은 글 대신 동네 뒷길을 걸었다. 그런데 길에 떨어진 낙엽을 보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풀렸다. 그 순간 느낀 작은 기쁨이 그날 저녁 글의 시작이 되어 주었다. 삐걱거린 하루가 오히려 새로운 재료가 된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억지로 하는 일은 오래가지 못한다. 하지만 정말 좋아하는 행위라면, 아무리 작은 시간이더라도 나를 기쁘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도스토옙스키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인간의 가장 위대한 행복은 자신이 쓸모 있음을 아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행위, 나를 살게 하는 행위가 글쓰기라면, 그것을 외면할 이유는 없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의 감각은 언제나 새롭고, 그 순간은 분명 나를 앞으로 끌고 간다.


사람과의 인연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만남은 가볍게 스쳐 지나가지만, 그 속에서 남는 울림이 있다. 가볍게 만나더라도 진심이 있으면 깊어지고, 뜻이 같은 사람은 결국 서로를 알아보게 된다. 글을 쓴다는 건 어쩌면 그 울림을 세상에 띄우는 또 하나의 방법인지도 모른다.


삶은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향해 올라야만 의미 있는 건 아니다. 끝까지 오르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궁리만 하다 멈추는 사람이 아니라, 직접 부딪히며 배우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즐기면서, 때론 삐걱거리면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쌓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자란 것을 발견한다.


알베르 카뮈는 말했다.

"겨울 한가운데, 나는 내 안에 꺼지지 않는 여름이 있음을 발견했다."

우리 삶도 조금 삐걱거려도 괜찮다. 조금 덜컹거리고 삐걱거리더라도 괜찮다. 그 속에서야 비로소, 내 안의 여름을 만날 수 있으니까.


나이가 들수록 나는 조금씩 알아간다. '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른 누구의 기준이 아니라, 내 안의 목소리를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그 길은 삐걱거리고, 때론 덜컹거리지만, 거기서 흘러나오는 소리야말로 나의 진짜 발자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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