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키스

가슴으로 우러나오지 않을 때

by Rx
내가 65년을 살아오면서 배운 것이 한가지 있다면, 그건 가슴에서 우러나올 때에만 주라는 것입니다



인생은 만남과 이별의 반복이라고 한다. 우연히 만난 관계에서도 우리는 의미를 찾는 목적성을 갖고있다. 그것은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자기 인생을 완전히 살아가려는 의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에게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인연복이라고 한다.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얻는 것이 만족스럽고, 인생의 다양한 경로에서 길을 찾게 해주는 사람을 만날 때 '인연복이 있다', '귀인을 만났다'라고 한다.


얼마전 귀인의 소개를 받아 어떤 분과 만나게 되었다. 사전 정보가 부족한 탓에 목적도 기대도 내려놓고 만남을 가졌다. 첫만남의 탐색 과정에서 종교 신념 차이가 명확했다. 물러날 수 없는 지점이 발견되자 나는 나를 드러내야 했고, 예상 밖으로 상대방은 우리의 만남을 더욱 기대하는 기색이었다. 나는 두달간 지속될 이 만남에 대해서 성급한 판단이 들었다. 과연 내가 이 만남에서 얻을 것이 무엇이 있을까?


나는 사람에게 실망을 많이 한 삶을 살았다. 부모나 형제나 선생님이나 종교인이나 동네 사람들에게도 실망을 했다. 대한민국에서 보는 모든 얼굴을 그들의 말을, 그들의 행동을 환멸하기까지 이르렀다. 내가 뒤늦게 영어공부를 하게된 이유 중 하나도 한국말 속에 묻어나는 역겨움을 듣지 않기 위해서였다. 모국어가 나를 힘들게 했다.


가슴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만남을 나는 어떻게 이어가다 그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본다. 내 속에 들어있는 관계의 셈법이 방망이질을 한다. 그 분의 착해보이는 의지 속에서 찾아낼 나의 욕구가 보이지 않는다. 기대없는 만남이었는데 부담이 들러붙었다. 하루에도 몇십번씩 세상 변하는 얘기를 손바닥에서 볼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세상에서 갖는 모든 만남에 목적을 지향할 수 밖에 없다. 정서적인 교류든, 재화의 교환이든. 나 같은 전업주부도 목적없이 흘려보내는 시간 같은건 없다. 결국 나의 시간을 할애하느냐 마느냐의 선택이다.


나의 남편은 사랑없는 결혼 앞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일하듯 하면 되지" 그 무심한 말도 나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남편이 우리 관계를 청산하고 아버지의 삶만을 선택했을 때의 처참함이 떠오른다. 가슴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관계를 나에 대한 연민으로 일방적으로 끌고 온 결과는 돌고 돌아온 예정된 이별이었다.


삶의 마디 마다 만남과 이별이 있다. 오래 이어가는 만남 속에 따뜻함이 있었으면 좋겠고, 안녕은 쿨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정서적 결핍자에게는 따뜻함도 쿨함도 어색하다. 표현되는 모든 것들이 나의 바람과 다르게 부자연스럽다. 확실한 거절은 극단적인 관계의 단절로 이어진다. 한편 애매한 거절은 적당한 때를 수시로 엿보며 안녕이라는 카드를 꺼낼 준비를 하는 자의 인내다. 정말 쿨해지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다. 안녕의 기회를 노리는 자의 불성실함의 죄책감은 관계를 얼룩지게 한다. 눈치 없는 상대방은 자신의 바람이 강요가 되는줄 모르고 있다. 나의 가슴과 상대방의 가슴이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어떤 관계 맺음이 가장 이상적인 걸까. 나도 당신도 상처받지 않는 관계, 선순환으로 작동하는 관계는 어떻게 해야 맺어질 수 있을까.

작은 호의라도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해야한다면 거절의 선택을 했을 때에 동반되는 죄책감, 수치심, 분노, 두려움 등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상처를 주고 받는 필연이 있다고 밖에 결론을 못내리겠다. 그저 상처주고 싶지 않은 이 마음도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고의가 아니었다는 힘없는 변명을 해본다. 그 힘없는 변명이 상대방에게 쉽게 위로가 되지 않기에 거절하는 자는 거절에서 좀처럼 자유로워지지 못한다.


어떤 만남도 결국 이별을 만나야 한다. 출생과 죽음까지 확장되는 이 만남에서 이 한정된 시간을 인식하는 것이 숨통을 틔워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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