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우리 부엌으로 가지 않았다

by simon

유튜브를 보다 보면 광고가 재생될 때가 있다. 아프리카의 아이, 난민촌의 얼굴, 숫자로 환산된 배고픔. 손가락이 스킵 버튼을 찾기도 전에 시선이 영상에 붙잡힌다. 그리고 어디선가 기억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다섯 살이었는지 여섯 살이었는지, 정확한 나이는 지금도 모른다. 기억이란 연도보다 감각으로 남는것이어서 그 시절 내가 아는 건 그냥 어떤 큰 집이었다는 것뿐이다. 집 전체가 우리 것인 줄 알았다. 우리가 쓰는 방이 구석진 이유는 그냥 구석을 좋아해서인 줄 알았다.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게 세상의 기본값인 줄 알았다.


어느날 오후, 밖에서 무언가를 하다가 방으로 들어왔다. 공놀이였는지 제기차기였는지 그것도 이제는 흐릿하다. 방 안엔 놀 것이 없었다. 가만이 앉아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배가 고팠고, 배가 고프자 머리가 어지러웠다. 방이 천천히 기울기 시작해 나는 옆으로 누웠다.


엄마를 찾았다.


눈에 눈물이 고인 채로 배가 고프다고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은 배고픔에 관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 같다. 어린것이 말할 수 있는 언어가 그것밖에 없었을 뿐이고.


엄마는 우리 부엌으로 가지 않았다.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 밥과 계란 두 개를 손에 들고서 그리고 계란 볶음밥을 해주었다. 기름 두르는 소리, 달걀 깨지는 소리, 밥알 볶이는 소리 그 소리들이 방안으로 흘러들었을 것이다. 나는 아마 소리를 들으며 기다렸을 것이다. 배고픔이 무엇인지는 알았지만 엄마의 마음이 무엇인지는 몰랐던 나이다.


그 기억은 30대가 넘어서야 밥을 먹다 문득 떠올랐다. 기억이란 때로 그렇게 충분히 자란 다음에야 나타나기도 한다. 마치 그때서야 비로서 보일 만한 크기가 되었다는걸 인정하는듯이.


지금의 나라면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이가 어지러워 옆으로 누웠을 때. 옆집 문을 두드리는 손이 어떤 감각이었을까. 나는 그 상상을 오래 하지 못한다. 너무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식탐이 없는 편이다. 약 한 알로 배를 채울 수 있다면 기꺼이 그것을 고를 사람이다. 음식은 먹되 즐기는 일에는 별로 집착하지 않는다. 그런데 계란 볶음밥만은 가끔 먹고 싶어진다. 딱히 맛있어서가 아니라 왠지 모르게.


어떤 만화에서 읽었다. 사람은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정보를 먹는다고. 맛이 아니라 그 음식에 얽힌 기억, 감각, 관계를 먹는다고. 그렇다면 나는 계란 볶음밥에서 무엇을 먹고 있는 걸까. 허기짐인가, 온기인가, 아니면 그날 옆집 문을 두드리던 엄마의 뒷모습인가.


밥알 하나에는 새겨진 것들이 있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들. 나는 아직도 그것을 씹고 있는지 모른다. 삼키지 못하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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