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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진 Aug 03. 2019

도시, 살다 23화 - 용인 동춘 175

우리 동네 핫플레이스

비효율의 극치


클리블랜드에는 브라운스(Browns)라는 미식축구팀(편의상 풋볼팀이라 하자)이 있다. 이 풋볼팀이 홈 경기장으로 사용하는 경기장은 퍼스트 에너지 스타디움(FirstEnergy Stadium)으로 이리 호수 근처에 있어 경기장에 들어서면 매우 아름다운 풍경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FirstEnergy는 오하이주의 대표적인 전력 회사로서 클리블랜드의 전기를 거의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민간 회사이다. 아마 이 회사에서 네이밍 스폰 권한을 산 모양이다.


클리블랜드 브라운스는 정말 미국 풋볼 리그에서는 독보적인 존재이다. 잘해서가 아니라 못하는 쪽으로. 만년 하위 팀. 앞에서도 몇 차례 이야기한 대로 클리블랜드는 아이스하키를 제외한 미국의 4대 프로스포츠 - 야구, 농구, 미식축구 팀을 보유하고 있는 도시이다. 야구의 인디언스는 나름 중간은 가는, 스몰 마켓에서는 선전하는 팀으로 명성이 있고, 농구의 캐벌리어스는 르브론 제임스가 있을 당시 우승까지 거머쥔 전력이 있는 반면에, 브라운스는 그야말로 매년 꼴찌를 다툴 만큼 성적이 전혀 나지 않고 있다.


미국의 프로 풋볼팀은 1년에 총 16-17차례 경기를 한다. 원정과 홈경기가 나뉘므로 홈에서는 여덟 번 정도 경기를 하는 셈이다. 브라운스도 퍼스트 에너지 스타디움에서 1년에 총 여덟 번 경기를 하게 된다. 퍼스트 에너지 스타디움은 거의 7만 명에 육박하는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경기장이고 여덟 번의 경기는 예외 없이 매진된다. 경기가 있는 날, 스타디움 주변은 축제의 장으로 변한다. 들어간 사람이나 들어가지 못한 사람이나 이리 호수를 낀 공원에 모여 노래를 부르고, 고기를 구우며 맥주를 마신다. 할 때마다 진다는데, 뭐가 그리 좋은지 모두 흥을 주체 못 한다.  


생각해보면 경제적 관점에서 이 보다 더한 비효율이 없다. 일 년에 고작 8일을 제외하면 거의 놀고 있는 7만 명 수용의 대형 경기장, 관리비는 어마어마하게 소요될 것이다. 비용 대비 산출을 따져 보는 것 자체가 의미 없을 지경이다. 따라서 10년 정도의 주기로 브라운스 팀의 해체를 건의하는 주민 투표가 클리블랜드에서 시행되고 있는 것은 크게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막대한 지방세가 관리비에 쓰여도 클리블랜드 주민은 1945년 팀 창단 이후로 이 팀을 놓지 않고 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이 못할수록 그들에 대한 애정이 깊어 가고 있다. 효율성을 따지는 클리블랜드 시의회와 집행부 중 몇몇(주민 투표를 부치는 그들)은 이해할 길이 없을 것이다.


나는 같은 박사과정에서 공부 중이던 클리블랜드 출신 미국인 친구에게 클리블랜드에서 가장 사람들로 분비는 장소(핫플레이스)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 친구의 대답은, "경기 있는 날 브라운스 스타이움을 가봐."였다.


친구의 추천대로 찾아가 보니, 사람으로 정말 주변이 바글바글 했다. 단순히 입장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 나름대로 축제를 벌리고 있었다.


1년에 여덟 번 열리는 축제. 주민들이 흥에 겨워 모이는데 재정의 비효율이 문제랴.


우리 동네 핫플레이스, 동춘 175


대형 마트와 대형 쇼핑몰에는 늘 사람이 붐빈다. 사람들은 대형 마트에서 편하게 쇼핑을 즐기고, 푸트 코트에서 식사를 즐기며, 영화 상영관에서 영화를 즐긴다. 도시에 사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도시의 핫플레이스는 주로 대형 마트나 백화점 중심으로 생겨난다. 하지만 공장이 가동을 멈춘 자리, 학교가 문을 닫은 자리, 젊은 세대가 떠나버린 공간 등에 새롭게 창조되는 핫플레이스의 양상은 매우 흥미롭다.


용인시 동백대로 175번 길에 위치한 동춘 175는 비교적 최근에 문을 연 복합 쇼핑몰이다. 그냥 지나치면 흔하디 흔한 복합 쇼핑몰 중 하나일 수 있지만, 이 쇼핑몰은 세 가지 평범하지 않은 특징이 있다.


먼저 동춘 175는 의류 회사의 물류창고를 재활용하였다는 점이다. 인디언과 올리비아로렌으로 유명한 (주)세정의 물류창고였던 공간이 어뎁티브 리유즈 프로젝트를 통해 복합 쇼핑몰로 재탄생했다.


주차장에서 바라보면, 건물은 크게 두 공간으로 나뉜다. 다음 사진의 왼쪽 공간은 총 네 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층에서 3층까지는 (주)세정 브랜드의 의류를 만나볼 수 있고, 4층은 아이와 함께 뛰어놀 수 있는 놀이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 한편, 5층이라 할 수 있는 옥상은 루프탑으로 꾸며져 지친 마음과 몸을 쉴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춘 175는 의류 회사의 물류창고를 재활용하였다.


넓은 실외 주차공간이 있지만, 평소에도 워낙 이 곳을 찾는 사람이 많은 탓에 만차가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전혀 이용에 불편함이 없다. 주차 건물이 있기 때문이다. 주차 건물은 옥상까지 총 세 층의 넉넉한 주차 공간을 제공한다.


실외 주차장 저편에 주차 건물이 보인다. 옥상까지 총 세 층의 넉넉한 주차 공간을 제공한다.

 

둘째, 대기업이 만들었지만 전혀 대기업 냄새가 나지 않는 실내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이는 동춘상회의 존재 때문이다. 동춘 175의 핵심은 동춘상회이다. 동춘상회는 동춘상회가 위치한 로컬 업체들과 알려지지 않은 장인들 그리고 유망한 소상공인의 제품을 판매하는 일종의 팝업샵이다.


4층짜리 건물이 아닌, 낮은 건물로 들어서면 복층 구조의 실내 공간을 만나게 된다. 이 낮은 건물의 핵심에 동춘상회가 위치해 있다. 먹거리에서부터, 다양한 공방 제품, 가방이나 화장품 등 여성의 이목을 주목시킬만한 재품에 이르기까지 마치 매우 세련된 전통시장을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우리가 들어봤음직한 대기업 브랜드는 보이지 않고 지역 소상공인들의 제품으로 충만하다.


동춘 175의 핵심에 동춘상회라 할 수 있다.


용인을 포함한 다양한 지역 소상공인의 제품을 만나볼 수 있는 것이 동춘 175호가 추구하는 가장 큰 가치이다. 특히, 발달장애인에게 사회활동과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텃밭을 가꾸고 산출물로 비누를 만드는 우리나라 대표적 사회적 기업인 '동구밭'의 비누를 만날 수 있는 것도 매우 큰 기쁨이다.


용인을 포함한 다양한 지역 소상공인의 제품을 만나볼 수 있는 것이 동춘 175호가 추구하는 가장 큰 가치이다.

 

셋째, 문화로 어린아이와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고 있는 복합 쇼핑몰이라는 점이다. 먼저 이 복층 구조의 낮은 건물의 2층은 도서관이다. 1층에 위치한 카페에서 제주바다라테 2층에서 읽고 싶은 책을 고르면, 동춘 175는 북카페가 된다. 편안한 소파도 적지 않고, 잠시 컴퓨터 작업할 공간을 위해 찾은 프리랜서나 학생을 위해 콘센트 좌석도 여럿 준비해 놓은 센스도 돋보인다. 책장에 꽂힌 책들도 선정한 디렉터의 감각이 돋보일 만큼 다양한 분야의 좋은 책들이었다.


1층에 위치한 카페에서 제주바다라테 2층에서 읽고 싶은 책을 고르면, 동춘 175는 북카페가 된다.

 

동춘 175에는 문화 공연을 위한 작은 공연장이 있다. 저자가 네 번째로 방문한 날, 마침 열정과 재능이 넘치는 청년 예술가들의 '청춘마이크' 공연이 열렸다. 잠깐 방문해 제주바다라테 한잔과 함께 페이크 삭스(신발 밖으로 보이지 않는 양말) 몇 켤래를 구입한 후, 인근에 위치한 영화 상영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공연팀의 끼와 화음이 영화 예매를 취소하게 만들었다.


동춘 175에는 문화 공연을 위한 작은 공연장이 있다. 저자가 네 번째로 방문한 날, 마침 열정과 재능이 넘치는 청년 예술가들의 '청춘마이크' 공연이 열렸다.


동춘 175를 방문한 주민과 함께 호흡하는 마술쇼도 펼쳐졌다. 두 명의 어린아이가 앞으로 나와 마술쇼의 주인공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추억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우리 아이의 즐거움을 위해, 내 쉼을 위해, 내 배를 채우기 위해 멀리 갈 필요가 없는, 우리 동네 핫플레이스, 동춘 175의 즐거움이다.


동춘 175를 방문한 주민과 함께 호흡하는 마술쇼도 펼쳐졌다.


후기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 속에서 소중한 가치를 잊지 않는 공간을 제안합니다."라는 동춘 175의 생각. 우리 사회는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다. 동네 문구점은 사라지고 그 자리는 거대한 다이소가 점령해버렸다. 우리 어린 시절, 수 없이 봐왔던 보세 옷가게는 다 사라지고 그 자리는 유니클로가 대체하고 있다. 보세 신발가게, 수제화 가게 역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멸종되고 그 자리를 ABC 마켓이 차지해 버렸다.


어쩌면 우리의 소상공인과 로컬 샵이 빠르게 변하는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한 결과일 수 있다. 제품이 세련되지 못하고, 품질도 그다지이지만 가격은 비쌌던 결과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다.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장인이 차고 넘친다. 지역을 아끼고 사회적 약자를 위하는 우리의 브랜드. 그들과 함께하겠다는 동춘 175의 생각에 찬사를 보낸다.


그렇다고 동춘 175가 이 가치에 기대어 재방문을 호소하지 않는다. 셀럽이 갈만한 브런치 카페와 베이커리가 있고, (주)세정의 다양한 브랜드 의류 상품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높은 4층 건물의 5층, 즉 루프탑에 올라보자.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간지럽히고 우린 쉽게 잠에 빠져들 수 있다. 쉰다는 것이 별거인가. 커피 한잔 들고 이 곳에 올라 잠시 지친 마음을 내려놓는다면, 나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높은 4층 건물의 5층, 즉 루프탑에 올라보자.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간지럽히고 우린 쉽게 잠에 빠져들 수 있다


동춘 175에는 의류 기계 중 일부가 여전히 전시(?)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기계는 삭막한 이미지를 전달해 주지만, 동춘 175의 기계는 따뜻하다. 기계를 보고 아이들이 신기해하며 즐거워했으면 한단다. 동춘 175에게 기계는 '변화와 더 나아짐의 가능성'을 의미한단다. 기계에 부여하는 가치마저 따뜻한 곳, 우리 동네 핫플레이스 동춘 175이다.


동춘 175에는 의류 기계 중 일부가 여전히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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