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포자의 수학 극복기
행렬.
선형대수학의 근간이지만 고등수학에서는 개정 교육과정 전에는 수학 I에 있던 가장 첫 단원으로 고등수학을 끝내고 수학 I을 접하는 입장에서 “뜬금없이 얘는 뭐야…?” 하는 단원이었다.
그도 그런 것이 중학 수학, 그리고 고1 수학 때까지 미친 듯이 고대부터 쌓아온 기하학이나 기초 대수학만 배우다 고2가 되어서야 근대에 탄생한 선형대수학의 근간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내게 행렬은 수능에서 점수 그냥 주는 문제 하나와 역행렬과 행렬의 성질을 기반으로 엿 먹으라고 하는 극악의 ㄱ,ㄴ,ㄷ 선택지 문제로 수험생들을 롤러코스터 타게 만들던 단원으로 기억한다.
교육과정 개편으로 빠졌다고 들었는데 여전히 그러한지 요즘은 또 어떤지 모르겠다.
나는 수학 고수님을 만나면서 차분하게 내가 공부하던 당시 교육과정 상의 중학 수학, 고등수학의 목차를 살펴보았다. 수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큰 그림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물론 그것은 고수님을 만나기 전에도 홀로 시도했던 것이지만 그땐 알지 못했는데 수학사를 공부해 보고 나서야 왜 목차가 그렇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행렬의 이론은 1750년 무렵부터 만들어졌다. 행렬의 탄생은 선형대수학의 시작을 알렸다.
왜 고2가 되어서야 행렬을 배우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그보다도 이것이 궁금해졌다.
‘그런데…. 대체 행렬을 왜 배우는 거지? 무엇 때문에 등장하게 되었을까?’
이전에 배웠던 것들 하고도 또 다르게 생긴 도구였기에 그 필요성이 너무나도 궁금했다.
행렬의 정의는 아주 간단하다.
수나 식을 직사각형 모양으로 배열한 것.
…. 그래서 이게 대체 뭔데? 이게 뭐 어쩌라고?! 대체 이걸 어디에서 쓰려고 배우는 거지? 숫자는 수학이니까 그렇다 쳐도 문자를 왜 굳이 직사각형 모양으로 배열하지?
나는 수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그냥 직관적으로 인문학적으로 행렬에 대해 고찰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행렬은 인간이 어떤 문제에 대한 여러 소스들을 간단하게 상징화해서 최적의 선택을 하는 생각을 하거나 판단할 때의 ‘머릿속’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인공지능을 모델링할 때 행렬을 활용하는 것을 보고 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인공지능 관련한 식들을 보면 행렬식을 쓰고 그 기반을 선형대수에 두고 있는데 ‘지능’을 모델링하는데 이를 활용한다는 것은 우리 인간의 사고방식이 이처럼 그려질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잘 생각해보면 행렬은 우리 인간이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서로 관계가 있는 정보를 받아들일 때 옆으로 일일이 나열하는 것보다 표를 그려 거기에 정보를 배치할 때 우리는 시각적으로 정보를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다.
실제로 현실세계의 문제를 추상적으로 표현하여 수학의 세계에 끌고 오면 행렬식으로 다 표현이 가능하다고 한다.
행렬은 현실의 문제를 수학의 세계로 끌어와 주는, 현실 문제의 추상화를 위한 도구였던 것이다.
현실의 문제는 너무도 복잡하다. 인간은 한정된 자원에서 최적의 시나리오를 판단해내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내야 한다.
인간의 최적의 선택을 위한 전략을 세우는데 ‘시각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탄생한 것으로 보이는 행렬. 이러한 행렬은 근대에 탄생한 개념이다.
행렬과 효율성은 상당히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그 효율성이 인공지능 하고도 연결이 되고 말이다. 이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