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하루에서 수없이 스치는 무표정한 얼굴들, 그리고 얼굴에 떠다니는 우울의 기운들, 별의별 불안들, 피곤한 몸뚱이들, 퍼석한 얼굴들, 쏜살같이 회사 밖으로 탈출하는 발걸음이나 각자의 목적지를 향한 발걸음은 요란하지만 어디를 향하는지 길을 잃은 종종걸음 속 감정은 담기지 않았다. 어디를 가든 나를 둘러싼 사람들은 스마트폰 화면을 응시하며, 서로의 존재를 무시할 뿐이었다.
도시 속 늘어가는 건 커피 전문점과, 요양원, 뷰티숍, 그리고 고층의 삐까 번쩍번쩍한 빌딩, 더 장대하게 높아지는 아파트들 뿐이었다. 거대하고 화려한 도시 속 사람이 모이고 고이는 곳 어디에서든, 번잡하게 이동하고 떠드는 소리와 소음 속에서 진실된 소리는 단 한 톨도 찾아보기 힘들다. 진실하고 진정성 있는 소리는 퀴퀴하다 못해 고리타분해져 버렸다. 그저 자신이 투영한 욕망만 가득한 세상과 사람들 이야기로 가득 채워져 가고 있다.
세상은 갈수록 번듯하게 잘 딱이고 반짝거렸지만 그 이면에는 아슬아슬하게 황폐함의 잿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화려한 조명이 사람들의 시선을 붙들어 매었고, 핸드폰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보기에 바빴다. 풍경과 풍광대신해서 무한히 펼쳐진 스크롤, 화면 속에 갇힌 듯한 모습들... 그 순간만은 괜찮아 보이기까지 했다.
너무나도 괜찮았지만 동시에 인구절벽 상황에서 청년, 중장년, 노인, 심지어 어린이 가릴 것 없이 자살인구도 끝도 모르게 치솟아 올랐다. 마치 우상향 하는 주식 그래프처럼 말이다. 미친 듯한 변동성은 없었다. 그것만이 우리가 가진 안정성이 되었다. 한 때는 각박해진 각자도생 시대에 희망과 나눔을 이야기한 자들도 많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때 그 시절과는 차원이 다른 상황에 접어들었다. 인간성으로 공동선은 사라졌다. 나눔은 적선이 되었고, 복지는 도둑 심보가 되었고, 빚은 상식이 되었고, 화폐의 양이 지혜로 대체되었다. 부자는 곧 현인이었다. 이러한 세상을 맞이한 게 언제더라? 너도 나도 언제 어디서나 정신이 붙들려 가상 세계 자극에 빠져 들어가 현실에 눈 돌리고 있을 때 아마 그때 즈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