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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정환 Aug 17. 2023

천적이 없는 새는 다시 날개가 사라진다지

가장 이상적인 변화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

                 진화생물학자인 존 엔들러(John Endler)는 1970년대에 열대어 구피를 처음 연구하면서 흥미로운 패턴을 목격한다. 폭포 아래 웅덩이에 사는 구피들은 색이 단조로웠지만 상류의 웅덩이에 사는 구피들은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색을 띠었다. 엔들러는 원인을 다음과 같이 가정했다. 즉 구피는 폭포를 거슬러 상류로 헤엄쳐 갈 수 있지만 구피를 잡아먹는 사나운 물고기 파이크 시클리드는 그러지 못하므로 상류의 웅덩이에는 파이크시클리드들이 살지 않았다. 하류의 구피는 위험한 환경 속에서 몸을 위장할 수 있도록 색깔이 단조롭게 진화했다. 반면 상류의 구피는 폭포 덕분에 파이크시클리드의 위협이 없는 안전한 구피 낙원에서 살았고, 따라서 화려한 색깔은 이성의 관심을 끄는 데 효과적이었다.


  엔들러는 좀 더 통제된 환경에서 이 가설을 실험해보기로 하고 넓은 온실 안에 10개의 구피 연못을 만들었다어떤 연못에는 바닥에 조약돌을 깔고 다른 연못에는 더 고운 모래를 깔았다엔들러는 몇 개의 연못에 위험한 파이크 시클리드를 풀고 나머지 연못에는 그보다 순한 포식자를 집어넣거나 아예 포식자를 집어넣지 않았다. 14개월 후 10세대가 지나면서 구피 개체들이 환경에 적응했다


  위험한 연못에서는 가장 지루한 색깔의 구피들만이 살아남아 번식을 했다그뿐만 아니라 구피의 위장술은 연못의 환경과 일치해 조약돌을 채운 연못에서는 큼직큼직한 무늬의 구피가고운 모래를 깐 연못에서는 자잘한 무늬의 구피가 나왔다이보다 안전한 연못에서는 화려한 점박이 구피들이 새끼를 더 많이 나았는데 암컷 구피들은 알록달록한 반점 무늬의 수컷에 더 끌리는 듯했다.


  엔들러 교수의 구피 실험은 진화생물학의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파이크 시클리드의 등장과 같은 새로운 문제에 개체가 어떻게 적응하는지 보여주는 놀라운 사례다적응은 신속했을 뿐만 아니라 상황에 민감하게 이루어졌다팀 하포드가 지은 [어댑트]에 나오는 이야기다반칠환 시 <날개>의 주제도 변화와 적응이다.          



  저 아름다운 깃털은

  오솔오솔 돋던 소름이었다지

  창공을 열어 준 것은

  가족이 아니라 무서운 야수였다지

  천적이 없는 새는 다시

  날개가 사라진다지

  닭이 되고키위가 된다지

                                     -<날개>, 반칠환     


  언제 변화해야 할까?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느끼는 순간이 변화를 꾀할 시기다. 시기를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부정적으로 변화 시기가 찾아올 때다. 사업이 망하거나 직장에서 실직할 때 같은 경우다. 이런 부정적인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는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 대부분 좌절하거나 두려움에 빠진다. 그러나 이때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구피도 환경이 바뀌면 생존을 위하여 자신을 바꾸며 적응했다. 


  둘째는 긍정적으로 변화 시기가 찾아올 때다. 문제는 없지만 지루함과 회의를 느낄 때가 있다. ‘이 길이 내 길이 아닌데’, ‘이제는 나의 인생을 살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은 없을까?’와 같은 생각이 들 때다.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냥 안주하며 ‘이만하면 됐지’하는 순간 날개는 퇴화한다. 닭이나 키위처럼.  

    

  조(趙)무령왕은 마음이 불편했다. 자신의 치세에 나라의 존재감이 형편없이 몰락했기 때문이다. 특히 진(秦)나라의 괴롭힘이 컸다. 일전에 한 ․ 위와 연합하여 진나라를 공격했지만 대패하고 군사 8만을 잃었다. 그 와중에 제나라 공격을 받아 패퇴했다. 다음 해에는 진나라에 중도와 서양을 빼앗겼다. 2년 후 진나라 침략에 다시 인읍을 빼앗겼다. 진나라는 장군 조장마저 사로잡아갔다. 상황이 점점 나빠지자 이러다가 나라가 멸망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무령왕은 불안했다. 그렇다고 걱정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리더라면 모름지기 해결책이 있어야 한다. 무령왕의 고민은 깊었다.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그동안 선왕들이 쌓아온 공적을 이어 나라를 부흥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병사가 필요했다. ‘강한 병사’를 향한 고민이 무령왕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때 번뜩하고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이에 누완을 불렀다.  


 “지금 중산 나라는 우리나라의 복심(腹心)에 있으니 북쪽으로는 연나라가 있고 동쪽으로는 동호(東胡)가 있고 서쪽으로 임호, 누번(樓煩), 진(秦)나라, 한나라의 변경이 있으며, 우리에게는 강력한 병사들이 없어 나라가 멸망하게 되었으니 어찌하면 좋겠는가? 세상 사람을 높이 뛰어넘는 명성은 반드시 세상의 습속을 어긋난다는 꾸짖음을 받기 마련이니, 나는 호복(胡服,오랑캐옷)을 입고자 한다.”

  누완이 말했다. 

 “옳습니다. 하지만 신하들이 호복 입는 것을 원치 않을 겁니다.”

  이때 비의가 왕을 모시고 있었는데, 왕은 호복의 필요성을 다시 강조했다.

  “내가 호복을 입는 이유는 적을 약하게 하여 힘은 적게 들이고 공을 많이 얻게 할 수 있으니, 백성들은 모두 수고롭게 하지 않고도 지난날의 업적을 계승할 수 있소. 무릇 세상에서 뛰어난 공을 세운 사람은 세속의 습속을 위배했다는 모함을 받게 되며, 홀로 지혜롭고 사려가 깊은 사람은 오만한 백성들의 원망이 따르기 마련이오. 이제 나는 장차 호복을 입고 말 타고 활 쏘면서 백성을 가르치려고 하는데, 세상에서는 반드시 과인을 두고 논의할 것이니 과인은 어찌해야 하오?”

 갑작스러운 변화는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혔지만 설득하여 돌파했다. 조나라는 드디어 호복을 입고 병사를 불러 모아 말타기와 활쏘기를 배웠다.          


 

자신감을 지니고 자신을 칭찬하라

  무령왕이 호복 부대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무령왕은 개혁과 함께 일관된 전략이 있었다. 바로 북방개척이다. 특히 중산을 얻고자 했다. 중산은 산악지대에 있었다. 중산을 정복하려면 전차로는 불가능하다. 조무령왕은 산악지대 전투에 유리한 기마부대를 창설하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 무령왕은 중산을 공략하여 영가에 이르렀고, 서쪽으로 호(胡)땅을 공략하여 유중에 이르렀다. 임호왕은 말을 바쳤다. 대(代)땅의 재상 조고가 호땅을 다스리며 병사들을 불러 모았다. 다음에 또 중산을 공격한다. 이때 중산국이 성읍 4개를 바치며 강화하기를 원하자 군대를 철수했다. 그 이후에도 지속해서 중산을 공격하여 빼앗은 땅이 북쪽으로는 연과 대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운중과 구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무령왕의 변화가 빛나는 것은 단지 호복을 입고 강한 병사를 만든 것에 있지 않다. 이것은 수단이었다. 무령왕의 진짜 목적은 다른 데 있다. 비록 실행하지 못하고 죽었지만 본심은 진(秦)나라를 공략하는 것이었다. 진은 상앙을 받아들인 후 전국시대 절대강자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특히 진나라의 외교정책의 기본은 원교근공 전략이다. 먼 나라와는 친하게 지내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해서 합병하는 전략이다. 진나라와 가까운 조나라로서는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공원국의 [춘추전국이야기 8]에서 무령왕의 본심을 읽을 수 있다. 재위 27년이 되던 해에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호를 공격하는 동시에 호의 기병을 이용하여 진을 직접 칠 계획을 세웠다. 이것은 산동 국가들이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다. 진으로 들어가는 좁은 길목인 함곡관을 의미 없는 곳으로 만들고 북쪽에서 일거에 함양으로 들이치겠다는 획기적인 계획이었다. 전차나 우차가 다닐 길이 잘 닦여 있지 않더라도 기병이라면 극복할 수 있다. 기병은 속도가 관건이다. 기병으로 성을 공격할 수는 없으므로 일거에 들이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 관중의 지형을 확실히 익히고 있어야 하기에 거짓으로 몸소 사자가 되어 진나라로 들어갔다. 진나라 소왕은 처음엔 이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 얼마 있다가 모습이 매우 위엄이 있어 신하 된 자의 풍모가 아님을 이상하게 여겨 사람을 보내어 뒤쫓게 했다. 무령왕이 이미 진나라 관문을 벗어난 뒤였다. 


  무령왕은 조나라의 부흥을 위해 과감한 변화를 시도했다. 비록 오랑캐의 방법이나 제도라 해도 자신들에게 적용하여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으면 받아들이는 유연성을 갖춘 것이다. 결국엔 중산을 멸한다.      

  당신 앞에 어떤 위기가 있는가? 위기 순간에 어떻게 대처하는 게 옳은 방법일까? 무엇을 준비하더라고 방법을 알고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이다. 자신감이 있어야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자신감이 있어야 위기를 헤치고 미래를 준비할 힘을 얻을 수 있다. 두 번째로 할 일은 자신을 칭찬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만 칭찬할 줄 알지 정작 자신의 잘한 일이나 재능에는 칭찬이 인색한 사람이 있다. 수시로 자신을 칭찬해보자 ‘이렇게 해결했으니 정말 잘했어.’, ‘너니까 가능한 일이야.’, ‘너는 능력 있으니 앞으로 더 잘 할 수 있을 거야.’처럼 자신을 위해 칭찬한다면 변화에 두려움을 느낄 때 용기를 낼 수 있다.    

  

  역경은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도록 충격을 준다. 구피가 파이크시클리드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 자신의 색을 바꾸어가듯 말이다. 그러나 가장 이상적인 변화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 편안하다고 느낄 때, 이만하면 됐지, 하는 순간에 시도하는 것이다. 키위처럼 개를 잃을지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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