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심감을 찾는 방법
‘위를 보지 말고 아래를 보고 살라’는 말이 있다.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며 살라는 뜻이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절망하는 삶은 정신 건강에 좋을 까닭이 없다. 한편 빈부 격차가 큰 자본주의 사회에서 체념하며 살라는 말 같아 썩 마음에 드는 말은 아니다. 나보다 좋은 환경, 좋은 조건에서 태어나 평생 돈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을 보면 얼마나 부러운가. 기가 막히게 좋은 머리를 타고나 1등을 놓치지 않고 의사 판사 변호사로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박탈감을 느낀 적이 있지 않나? 재벌 2세, 3세는 또 어떤가? 아무리 달려도 제자리인 삶, 아무리 달려도 자꾸 뒤처지는 삶, 아예 출발선부터 다른 삶을 살며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인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핍이 동기부여가 되는 것은 맞지만, 좌절감과 패배 의식 속에서는 동기가 생기지 않는다. 처한 상황에서 용기를 얻으려면 때때로 아래를 내려다봐야 하지 않겠는가.
-아버지 송지호에서 좀 쉬었다 가요
-시베리아는 멀다
-아버지 우리는 왜 이렇게 날아야 해요
-그런 소리 말아라
저 밑에는 날개도 없는 것들이 많단다
-<기러기 가족>, 이상국
부정적인 일은 부정적인 생각을 몰고 온다. 이때 많은 사람이 자신감을 잃는다. 위기의 순간에 상반된 결과를 낳은 사례를 앞에서 여러 건 살펴보았다. 범저, 오자서, 소진 같은 인물이다. 이 사람들이 어떤 굴욕을 당하고, 어떻게 반성하고, 무엇을 준비했는지는 앞에서 자세하게 다뤘다. 운도 따랐고, 다른 사람의 도움도 있었고, 노력도 열심히 했다. 무엇보다 자신감이 있었다. 자신감으로 치욕을 지렛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실패를 견디고, 반성하고 준비했다. 자신감이 없다면 이런 순간을 견디고 멋지게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반면 항우는 부정적 상황이 닥치자 자결하고 말았다. 자살은 도전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감이 있다면 자살할 이유가 없다. 항우에게 자신감 없다니? 그에게 있는 자신감은 오만이었다. [사기] <항우본기>에서 항우의 마지막 모습을 들여다보자.
항왕(항우)의 군대는 해하에 방어벽을 구축하였는데, 군사는 적고 양식은 다 떨어진 데다 한의 군대와 제후의 병사들이 몇 겹으로 에워싸고 있었다. 밤이 되자 한의 군대 사방에서 초 나라 노랫소리가 들렸다. 항왕이 깜짝 놀라며 “한이 이미 초를 손에 넣었단 말인가!”하고 말했다. 항왕이 밤중에 일어나 군막에서 술을 마셨다. 항왕은 우를 예뻐하여 늘 데리고 다녔고, 추라는 준마를 늘 타고 다녔다. 이윽고 항왕은 복받쳐 오르는 비통한 심정으로 시를 지었다.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고도 남건만
때가 불리하고 추 또한 달리려 하지 않는구나!
추가 달리려 하지 않으니 어찌할까나
우여, 우여! 그대는 또 어찌할까나!
몇 번이고 노래를 부르니 미인도 이에 화답하였다. 항왕이 눈물을 흘리며 울자 좌우 모두 눈물을 흘리며 차마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였다. 그러고는 항왕이 바로 말에 올라타니 휘하 장사 중 말을 타고 따르는 자가 800명이 넘었다. 그날 밤으로 이들은 포위를 뚫고 남쪽으로 내 달렸다. 날이 밝고서야 이 사실을 안 한의 군대는 기장 관영에서 기병 5,000기를 이끌고 뒤쫓게 하였다. 항왕이 회수를 건널 무렵, 그를 따르는 기병은 100여 기에 지나지 않았다.
실패나 좌절을 극복하려면 자신의 능력을 믿어야
항왕이 음릉에 이르러 길을 잃었다. 한 농부에게 물으니 “왼쪽으로 가십시오.”하고 거짓말을 하였다. 왼쪽으로 갔더니 큰 늪에 빠졌고 이 때문에 한이 바짝 뒤쫓아 오게 되었다. 항왕이 다시 병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가서 도성에 이르니 겨우 28기만 남았다. 뒤쫓아 오는 한의 기병 수는 수천 기에 달했다. 항왕은 벗어나지 못하리라 판단하고 기병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병사를 일으키고 지금까지 8년이다. 몸소 70여 차례 전투를 치렀다. 맞선 자는 격파하고 공격한 자에게는 항복을 받으면서 패배를 몰랐기에 마침내 천하를 제패하였다. 그러나 지금 갑자기 이곳에서 곤경에 처하였으니, 이는 하늘이 날 망하게 하려는 것이지, 내가 싸움을 잘못한 죄가 아니다. 오늘 정녕 죽기를 각오하고 그대들을 위해 통쾌하게 싸워 반드시 세 번 승리함으로써 포위를 뚫고 적장의 목을 베고 깃발을 쓰러뜨릴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들이 하늘이 날 망하게 하려는 것이지 싸움을 못 한 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하겠노라.”
곧 기병을 네 부대로 나누어 사방으로 돌진하게 하였다. 한의 군대가 여러 겹으로 포위하였다. 항왕이 기병에게 “내가 그대들을 위해 저 장수를 베리라.”하고는 기병들에게 사방으로 말을 달려 내려가 산 동쪽의 세 지점에서 만나자고 약속하였다. 이어 항왕은 고함을 지르며 말을 아래로 몰아 달려가니, 한의 군대는 엎어지고 쓰러졌다. 마침내 한의 장수 하나를 베었다. 이때 적천후가 기장이 되어 항왕을 뒤쫓았는데 항왕이 눈을 부라리며 꾸짖으니 적천후의 사람과 말이 모두 놀라 몇 리 밖으로 줄행랑을 쳤다. 항왕은 세 지점에서 기병들과 만났다.
항왕이 간 곳을 놓친 한의 군대는 군을 셋으로 나누어 다시 항왕을 포위하였다. 항왕이 말을 달려 다시 한의 도위 하나를 베고 수백 명을 죽였다. 그러고는 다시 기병을 모으니 단 두 명이 죽었을 뿐이었다. 이에 기병들에게 “어떠냐?”하고 묻자 기병들이 모두 엎드려서 “대왕의 말씀 대로입니다.” 하였다. 항왕은 동쪽으로 오강을 건너려고 하였다. 오강의 정장이 배를 강 언덕에 대고 기다리다가 항왕에게 “강동은 작기는 하지만 땅이 사방 천 리요, 백성 수가 수십만이니 왕이 되시기에충분한 곳입니다. 원하옵건대, 대왕께서는 서둘러 건너십시오. 지금 저에게만 배가 있으니 한의 군대가 온다 해도 건너지 못합니다.”하고 말했다. 항왕은 웃으며 말하였다.
“하늘이 날 망하게 하려는데 내가 건너서 무얼 하겠는가! 게다가 강동의 젊은이 8천 명이 나와 함께 강을 건너 서쪽으로 갔다가 지금 한 사람도 돌아오지 못하였다. 설사 강동의 부형들이 불쌍히 여겨 나를 왕으로 삼는다 한들 내가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대하겠는가? 그들이 말하지 않아도 이 항적의 마음은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고는 정장에게 말했다.
“그대가 장자라는 것을 안다. 내가 이 말을 5년이나 탔는데 당해낸 적이 없었다. 하루에 천 리를 달렸다. 차마 녀석을 죽일 수 없으니 그대에게 주겠다.”
곧 기병들에게 말에서 내려 걷게 하고 짧은 무기만 들고 싸우게 하였다. 항적 혼자 한의 군대 수백 명을 죽였다. 항왕 역시 열 군데가 넘게 부상하였다. 한의 기사 여마동을 돌아보며 “네 놈은 예전의 내 부하가 아니더냐?”하고 묻자, 여마동이 항왕을 정면으로 바라보더니 왕예에게 “이 자가 바로 항왕입니다.”하고 지목하였다. 그러자 항왕은 “듣자 하니 내 머리에 천금과 읍 1만 호가 걸려있다고 하니, 내가 너를 위해 덕을 베풀겠다.”하고 말한 뒤 스스로 목을 찌르고 죽었다.
사마천은 항우를 이렇게 평가했다.
자신의 전공을 자랑하고 사사로운 지혜만 앞세워 옛것을 배우지 못하였다. 패왕의 대업이라며 힘으로 천하를 정복하고 경영하려 하니 5년 만에 나라를 망치고 몸은 동성에서 죽으면서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자신을 책망할 줄 몰랐으니, 이것이 잘못이다. 그런데도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지 내가 싸움을 잘못한 죄가 아니다’라고 하며 핑계를 대었으니, 어찌 황당하지 않겠는가?’
‘하늘이 망하게 한다'는 말은 운이 없다는 말 아닌가? 어려운 상황을 만나면 이렇게 운 탓을 하는 사람이 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데 일이 풀리지 않을 때 꼭 운이 없다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깨닫지 못하고 자신을 책망할 줄 모르는’ 처사다. 오만이다. 자신감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능력을 믿는 것이다. 실패나 좌절 따위로 나락에 떨어져 있지만, 어찌 됐든 자신에게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진정한 자신감을 찾으려면 자신의 과거와 현재 모습에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 자신을 깎아내리는 말이나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나는 못 해’, ‘내 주제에’처럼 자기를 비하하는 말이나 ‘내 주제에 그게 가능하겠어?’, ‘내가 뭘 하겠어?’ 같은 부정적인 질문은 얼마 남지 않은 자신감마저 깡그리 긁어 버린다. 비록 마음속에서 자신감이 사라지는 순간이라도 ‘의도적’으로 자신감을 불어넣는 말을 중얼거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자신감 있게 행동해야 한다. ‘의도적’인 자기 암시는 생각보다 강한 영향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