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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정환 Aug 23. 2023

지독하게 속이면 내가 곧 속고 만다

‘반복하여 거짓말을 하면 뇌가 거짓말에 덜 반응하게 되고, 

                      나를 잘 아는 사람은 누구일까? 나 자신일 것이다. 다음은 가족, 그중에서도 배우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가족에게 거짓말하여 속일 수 있더라도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이 가능할까?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Dan Ariely)는 ‘반복하여 거짓말을 하면 뇌가 거짓말에 덜 반응하게 되고, 점점 자신의 거짓말을 믿기 시작한다.’고 했다. 지독하게 속이면 자신도 속고 만다는 말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언론에 비치는 유명인사들 거짓말 모습을 보면 스스로 자신에게조차 속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낯 뜨거운 거짓말을 시치미 뚝 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김수영 시인의 <성(性)>은 이런 면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그것하고 하고 와서 첫 번째로 여편네와 

  하던 날은 바로 그 이튿날 밤은

  아니 바로 그 첫날밤은 반 시간도 넘어 했는데도

  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

  그년하고 하듯이 혓바닥이 떨어져 나가게 

  물어 제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지간히 다부지게 해줬는데도 

  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 

  이게 아무래도 내가 저의 섹스를 개관(槪觀)하고 

  있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똑똑이는 몰라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나는 섬찍해서 그전의 둔감한 내 자신으로 

  다시 돌아간다 

  연민의 순간이다 황홀의 순간이 아니라 

  속아 사는 연민의 순간이다      

  나는 이것이 쏟고 난 뒤에도 보통 때보다 

  완연히 한참 더 오래 끌다가 쏟았다 

  한 번 더 고비를 넘을 수도 있었는데 그만큼 

  지독하게 속이면 내가 곧 속고 만다 

                                                        <>, 김수영     



  민망하고 눈에 거슬리는 단어들, 특히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들은 다른 기회에 다시 논의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위선과 거짓에 초점을 맞춰보자. 우리는 인생을 살며 남에게 완벽하게 속을 때도 있지만, 때로는 알면서 속아주기도 한다.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이해하고 넘어갈 때도 있다. 위 시에서도 화자의 아내가 알면서 속아주는 모습이다. 아내는‘똑똑이는 몰라도 어렴풋이 느껴지’지만 따지지 않고 속아준다는 사실을 화자도 안다. 이 순간은‘연민의 순간이다 황홀의 순간이 아니라/속아 사는 연민의 순간이다’ 사실 오래 산 부부는 그런 관계일 수 있다. 서로 불쌍하고 가련하게 느끼는 미운 정 고운 정들며 그렇게 사는 것이다.     


  엄경희는 <현대시의 발견과 성찰>에서 이 시를 이렇게 평해 놓았다.      

  이 시의 초점은 ‘그년’하고 외도를 하고 온 나의 기만적이고 위선적인 상태를 드러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기만적이고 위선적인 나를 의식하고 나의 자의식을 드러내는 데 있다. (중략) 시인은 자기 위선과 기만을 반성으로 이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의 마지막 구절 ‘지독하게 속이면 내가 속고 만다’라는 표현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남을 속이는 것이 곧 자기를 기만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앞글에서 이사가 탄식하는 장면을 다시 생각해 보자. 이사는 걸왕이 관용봉을, 주왕이 비간을, 부차가 오자서를 죽인 일을 예로 들며, 세 신하가 충성을 다 바쳤지만 죽은 이유는 충성을 받을 만한 군주가 못 되었기 때문이라고 탄식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충성했지만 죽는 이유는 2세 황제가 충성을 받을 만한 군주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2세 황제가 ‘자기 형제들을 죽이고 스스로 즉위했고, 충신을 죽이고 미천한 자를 귀하게 여기며, 아방궁을 짓느라고 천하 백성들에게 세금을 징수’했지만 ‘직언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가 나의 말을 듣지 않았을 뿐’이라고 강변한다. 이사를 보면 자신을 타인이라고 생각하는 리플리 증후군이 아닌가 생각한다. 리플리 증후군이란 말은 미국의 작가 퍼트리샤하이스미스(Patricia Highsmith)가 1955년에 출간한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 씨]에서 따왔다. 리플리는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집도 없고 직업도 없는 빈털터리로 사는 불우한 청년이지만 타인을 흉내 내는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리플리는 이탈리아에서 부유하게 사는 디키를 부러워한 나머지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리기 위해 디키를 살해하고 스스로 디키가 되어 살아간다. 


  자신의 약점이나 안 좋은 환경을 감추기 위해 외국 명문대를 졸업하고 번듯한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타인을 속이고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연극하는 삶이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면 위에서 언급한 댄 애리얼리의 말이 사실이다.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면 뇌가 덜 반응하게 된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거짓말에 무뎌지면서 망설임이나 죄책감 따위조차 없어진다는 뜻이다. 점점 심해지면 자기 자신도 거짓말을 믿게 된다는 사실이 끔찍하다. 지나친 위선과 거짓은 자신마저 속이게 되고 결국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에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사소한 약속을 안 지켜 왕위를 잃었다 

  사소한 약속을 어겨 자리에서 쫓겨난 왕이 있었다. 본래 제(齊)나라 양공은 연칭과 관지보로 하여금 규구라는 변방에서 국경을 수비하도록 했는데, 기간은 오이가 익을 때쯤 갔다가 다음 해 오이가 익을 때쯤 교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 년이 되어 오이가 익을 때가 지났는데도 양공은 교대할 군사를 보내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그들을 위해서 교대해 줄 것을 청하였으나 양공은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노여워하여 공손무지를 통하여 반란을 도모했다. 연칭에게는 궁녀로 있으면서 총애를 받지 못한 사촌 여동생이 있었는데, 연칭은 여동생을 시켜 양공의 상황을 살피게 하였다. 그러면서 약속을 했다.

  “일이 성공하기만 하면 너는 공손무지 부인이 된다.”

  12월 초에 양공은 고분에 놀러 갔다가 패구까지 사냥을 나갔다. 양공의 시종이 멧돼지를 보고 말했다. “팽생입니다.”

  양공이 노여워하여 멧돼지를 쏘니, 멧돼지가 사람처럼 서서 울었다. 양공은 일순 두려움을 느끼며 수레에서 떨어져 발을 다치고 신발도 잃어버렸다. 공손무지, 연칭, 관지보는 양공이 상처를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 곧 무리를 이끌고 궁을 습격하여 양공을 시해하고, 공손무지는 제나라 임금이 되었다.      

  왕은 변방 국경을 수비하는 일이 사소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멀고 낯선 곳에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당사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불편하다. 그래도 연칭과 관지보는 ‘일 년만 버티면 되니까 조금만 참자.’라는 마음으로 기다렸을 것이다. 그런데 일 년이 지나도 교대해 주지 않으니 마음이 상했다. 임금에게는 사소한 일이지만, 연칭과 관지보에게는 얼마나 기다리던 일인가. 결국 양공은 약속을 지키지 않아 왕위까지 빼앗겼다. 반면 약속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도 있었다.   

   

  증자 아내가 시장에 가는데, 아들이 따라오며 울자 이렇게 말했다. 

  “너는 돌아가거라. 시장에서 돌아오면 너에게 돼지를 잡아 주마.”

  증자 아내가 마침 시장에서 돌아왔을 때, 증자가 돼지를 잡으려고 했다. 그러자 아내는 만류하며 말했다. 

  “단지 아이를 달래려고 한 말일뿐입니다.” 

  증자가 말했다. 

  “아이는 거짓말 상대가 아니오. 아이는 지식이 없으므로 부모에게 기대어 배우고, 부모의 가르침을 듣소. 지금 아이를 속이면, 이것은 아이에게 거짓말을 가르치는 것이오. 어머니가 아들을 속이면 아들은 그 어머니를 믿지 않을 것이오. 이것은 자식을 올바로 가르치는 방법이 아니오.” 

  그러고는 돼지를 잡아 삶았다.     



  위(魏)나라 문후(文侯)가 우인(사냥터를 돌보는 관리)과 사냥 가기로 약속해 놓고 있었다. 마침 그날 잔치가 벌어져 즐거운 데다가 비까지 내렸다. 그런데도 문후가 나가려고 하자 좌우가 물었다. 

 “오늘 주연이 이렇게 즐겁고 비까지 내리는데, 공께서는 그래도 나가시려고 합니까?”

  문후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우인과 사냥을 약속하였는데 노는 것이 더 즐겁다고 하더라도 어찌 한 번 맺은 약속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

  그러고는 나서서 몸소 우인에게 사냥 약속을 미루고 돌아왔다. 위나라는 이때부터 강성해지기 시작했다.      

  두 이야기는 신의가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증자 아내는 시장을 쫓아오는 아들을 돌려보내기 위해 순간을 모면하려는 생각으로 돼지를 잡아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런 약속은 대개 건성으로 하는 것이라 바로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증자는 결국 돼지를 잡았다. 


  또한 위나라 문후가 사냥터 관리인과 한 약속은 그리 중요한 약속이라고 볼 수 없다. 이럴 때 아랫사람을 시켜 사냥 약속을 뒤로 미루겠다고 전해도 될 일이다. 그러나 문후는 손수 찾아가서 약속을 미루고 왔다. 약속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사람이다. 그 이후부터 위나라는 강성해졌다고 하니 신뢰가 갖는 힘이 얼마나 큰지 잘 보여준 이야기다. 알면서 속아주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한 이불 쓰는 배우자나 가능한 일이다. 단지 신뢰를 잃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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