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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정환 Aug 21. 2023

다시 끌러 새로 채우면 되는, 단추 같은 삶을

인생은 길고 채울 단추는 많다

                  살다 보면 후회할 때가 많다. ‘그때 이렇게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며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면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텐데 한다. 글도 여러 번 고쳐 써서 더 좋은 글을 만들어내듯 인생사도 고치어 더 좋은 인생으로 다시 사는 방법은 없는 걸까? 잘못 채운 단추를 끌러 다시 채우듯 인생도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소망을 담은 시가 이정하 시인의 <단추>다.           


  1

  삶이 말이야

  단추 같은 것이라면 좋겠어     

  어쩌다 잘못 채워져 있을 때

  다시 끌러 새로 채우면 되는     

  2

  다시 채울 수 없다고

  억지로 잡아떼지 마     

  단추가 무슨 죄인가

  잘못 채운 나를 탓해야지

                     -<단추>, 이정하          



   이사(李斯)는 초(楚)나라 상채(上蔡) 사람이다. 젊은 시절 고을 하급 관리를 지냈다. 어느 날 관청 변소 안에서 쥐가 오물을 먹다가 사람이나 개가 가까이 가면 자주 놀라며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사가 창고에 들어갔다가 창고 안 쥐를 보니 쌓아 놓은 곡식을 먹고 큰 집에서 살며 사람이나 개를 보고도 겁을 내지 않았다. 이에 이사가 탄식하며 “사람이 잘나고 못 나는 것이 쥐와 같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달려 있구나!”하고 말했다.

  이에 순경에게서 제왕의 학술을 배웠다. 학업을 마치자 초(楚) 왕은 섬기기에는 부족하고, 여섯 나라는 모두 약해서 공을 세울 수 없다고 생각하여 서쪽 진(秦)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순경에게 작별 인사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이사가 듣기에 때를 얻으면 게으르지 말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제후들이 다투고 있는 때라 유세가들이 일을 주도합니다. 지금 진나라 왕은 천하를 합병하여 ‘제’라고 칭하며 다스리려고 합니다. 이는 평민들이 내달릴 때이자 유세가들이 활약할 시기입니다. 비천한 자리에 있으면서 계획을 세워 실행하지 않는 것은 짐승이 고기를 바라만 보는 것이고, 사람 얼굴을 하고 억지로 살아가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 비천함보다 더 큰 부끄러움은 없고, 곤궁함보다 더 심한 슬픔은 없습니다. 오랫동안 비천한 자리와 곤궁한 처지에 있으면서 세상을 비난하고 이(利)를 미워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남자의 마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서쪽 진나라로 가서 왕에게 유세하고자 합니다.”     


  진나라에 이르자 때마침 장양왕(莊襄王)이 죽었다. 이사는 바로 진의 재상 문신후(文信侯) 여불위(呂不韋)의 사인(舍人, 문객)이 되기를 청했다. 여불위는 이사를 유능하다 보고 낭(郞)에 임명했다. 이사는 기회를 얻어 진왕에게 이렇게 유세했다.


“기다리기만 하는 사람은 기회를 놓칩니다. 큰 공을 이루는 사람은 틈을 놓치지 않고 마침내 그것을 견디어 내는 데 있습니다. (중략) 지금 제후들이 진에 복종하여 마치 진의 군현과 같습니다. 대저 진의 강대함, 대왕의 현명함으로써 부뚜막의 먼지를 청소하듯 제후들을 없애고 제업을 이루어 천하를 통일할 수 있으니 이는 만년에 한 번 얻을 기회입니다. 지금 게으름을 부리며 급히 이루지 않고 있다가 제후들이 다시 강해져 서로 모여 합종을 맹약하게 되면 비록 황제의 현명함이 있더라도 합병할 수 없습니다.”


  진왕은 이에 이사를 장사(長史)로 삼고, 계책을 듣고 은밀하게 모사들에게 금과 옥을 가지고 제후들에게 유세하게 했다. 제후국 명사 중 재물로 굴복할 수 있는 자에게는 후한 예물을 보내 결탁했고, 받으려고 하지 않는 자들은 날카로운 칼로 찔렀다. 군신을 이간질하는 계략과 함께 진왕은 훌륭한 장수에게 뒤를 따르게 했다. 진왕은 이사를 객경에 임명했다.


  결국 진은 천하를 통일했으며, 왕을 높여 황제라고 했고, 이사를 승상으로 삼았다. 군과 현의 성벽을 허물고 무기들을 녹여서 다시는 사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사의 맏아들 이유는 삼천군의 군수가 되었고, 여러 아들은 모두 진의 공주에게 장가들고, 딸들은 모두 진의 여러 공자에게 시집을 갔다. 삼천군의 군수 이유가 휴가를 얻어 함양으로 돌아오자, 이사는 술잔치를 베풀었다. 백관의 우두머리가 모두 참석해 이사에게 장수를 기원했는데, 대문과 뜰에는 수레와 말이 수천이나 되었다        


  

인생은 길고 채울 단추는 많다

  이사는 ‘어쩌다 잘못 채워’ 진 단추를 ‘다시 끌러 새로 채우’며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했다. 뛰어난 능력과 전략으로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는데 1등 공신이 되었다. 진시황이 공신들에게 땅을 떼어주고 다스리게 한 제후제를 폐지하고 군현제를 실시하며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한 정책도 이사의 설계와 구상에 따른 것이었다. 통일 후 군과 현의 성벽을 허물고 한 자의 땅도 신하들에게 봉하거나 황제의 자제들을 세워 왕으로 삼지 않았으며, 공신들을 제후로 삼지도 않았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이후 이사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인생은 길고 채울 단추는 많다. 그러다 보면 단추 한두 개쯤은 잘못 채우게 마련이다. 잘못 채운 단추를 이사는 억지로 잡아떼려 했지만 실패하고 만다. 이사가 잘 못 채운 단추는 무엇이었을까? 


  진시황은 전국을 순행하던 중 길에서 죽었다. 이때 이사는 조고와 짜고 호해를 황제로 만들었다. 이때부터 이사와 조고는 권력 싸움을 시작하고 결국엔 이사가 패한다. 이사의 마지막 장면을 보자.      

  2세 황제는 이미 예전부터 조고를 신임했던지라, 이사가 그를 죽일까 두려워 남몰래 조고에게 이를 일러주었다. 조고가 말하기를 “승상 이사의 걱정거리는 오직 조고뿐이며, 제가 죽으면 승상께서는 곧 전상처럼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앉으려 할 것입니다.”고 모함을 했다. 이리하여 2세 황제는 “이사를 조고에게 넘겨 조사하라!”고 명을 내렸다. 조고가 이사의 죄목을 심문했다. 이사는 구속되어 묶인 채 감옥에 갇히자,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했다.


 “아, 슬프구나! 도리를 모르는 군주에게 무슨 계책을 말할 수 있으랴! 옛날 하 걸왕은 관용봉을 죽였고, 은 주왕은 왕자 비간을 죽였으며, 오왕 부차는 오자서를 죽였다. 이 세 신하가 어찌 충성을 바치지 않았겠는가? 그럼에도 죽음을 면치 못한 것은 충성을 받을 만한 군주가 못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의 지혜가 그들 세 사람보다 못하고, 2세 황제의 무도함은 걸왕, 주왕, 부차 등보다 더 심하니, 내가 충성했기 때문에 죽는 것도 당연하도다. 그리고 2세 황제의 다스림이 어찌 어지럽지 않겠는가? 지난날 그는 자기 형제들을 죽이고 스스로 즉위했고, 충신을 죽이고 미천한 자를 귀하게 여기며, 아방궁을 짓느라고 천하 백성들에게 세금을 징수했다. 내가 직언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가 나의 말을 듣지 않았을 뿐이다.


  무릇 옛날의 성왕들은, 식사할 때도 예절을 지녔고, 수레나 물건에도 일정한 수를 따졌으며, 궁궐을 짓는 데도 한도가 있었다. 조칙을 내려 어떤 일을 함에는 비용을 들이며 백성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는 것을 하지 않았으므로, 오랫동안 평온하게 다스린 것이다. 그는 지금 형제에게 도리에 어긋난 행위를 하고도 그 허물을 돌아보지 않고, 충신을 죽이면서 재앙을 생각하지 않는다. 크게 궁실을 지으며, 백성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부과하고, 비용을 아껴 쓰지 않는다. 이 세 가지가 이미 자행되고 있는 한 천하의 백성들은 그에게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반역자가 천하의 반을 차지했건만, 황제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조고를 보좌관으로 삼고 있다. 내가 반드시 도적이 함양에 이르고 고라니와 사슴이 조정에서 노는 꼴을 보겠구나.”     


  2세 황제는 조고에게 승상을 하옥해 처벌하게 했다. 이사는 아들 유와 함께 국가 모반죄를 추궁당했고, 친족과 빈객들이 모두 구속되었다. 조고가 이사를 심문하면서 1천여 번이나 매질하며 고문하자, 이사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허위로 자백하고 말았다. 이사가 자살하지 않은 까닭은 공로가 있고 실제 모반의 마음이 없었다는 자기 변명과 다행히 황제에게 스스로 진정서를 올리면 황제가 사실을 깨닫고 자기를 사면해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사는 옥중에서 글을 올렸지만 조고가 담당 관리에게 폐기하라고 시켰다.      


  조고가 자기의 식객 10여 명을 시켜 거짓으로 어사·알자·시중인 것처럼 꾸며, 번갈아 이사를 찾아가서 심문하게 했다. 이사가 번복해 사실대로 대답하면, 사람을 시켜 다시 매질했다. 나중에 2세 황제가 사람을 시켜 이사를 심문하자 이사는 예전처럼 하리라 생각하고 끝내 감히 무고함을 번복하지 못하고 굴복하고 말았다. 판결이 황제에게 아뢰어지자, 2세 황제는 기뻐하며 “조고가 아니었다면 승상에게 속을 뻔했구나.”하고 말했다.

  이어서 2세 황제는 삼천군의 군수를 조사하려고 사자를 파견했다. 그러나 반란군 항량(項梁)이 이미 그를 공략해 죽인 뒤였다. 사자가 돌아오자, 승상은 형리(刑吏)에게 넘겨졌고, 조고는 모반죄의 진술서를 모두 날조했다.


  2세 황제 2년 7월에 이사에게 오형(五刑)을 내린 뒤 함양의 저자거리에서 허리를 자르도록 했다. 이사가 감옥에서 나오며, 함께 투옥된 둘째 아들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내가 너와 함께 다시 한번 누런 개를 끌고서 고향 상채(上蔡)의 동쪽 변두리로 나가 토끼 사냥을 하려고 했는데, 어쩔 수가 없게 되었구나!”하며, 마침내 부자가 서로 울음을 터뜨렸다. 이 사건으로 삼족이 모두 사형을 당했다.


  이사가 죽고 나서, 2세 황제는 조고를 예우해 중승상(中丞相)으로 삼았고, 일이 크든 작든 모두 조고에게 결정하게 했다.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이사를 이렇게 평가했다. 


“이사(李斯)는 빈민 출신으로 제후들에게 유세하다가 진으로 들어가서 섬겼는데, 열국들이 서로 다투는 기회를 틈타 진 시황을 보필해 결국 황제의 대업을 이루게 했다. 이사는 삼공(三公)이 되었으므로 높게 등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사는 육예(六藝)의 귀결을 알면서도 군주의 결점을 보완하는 공명정대한 정치에 힘쓰지 않았다. 작위와 녹봉의 중대함을 유지하고 군주에게 아부하면서 구차하게 영합했다. 조칙을 엄히 하고 형벌을 혹독하게 했으며, 조고의 간사한 말을 듣고서 적자를 폐하고 서자를 즉위하게 했다. 제후들이 이미 반란을 일으킨 뒤에 이사가 직언하려고 했으니, 어찌 늦지 않았으랴! 사람들은 모두 이사가 극진하게 충성했으나 오형(五刑)을 당해 죽은 줄로 안다. 그러나 본말을 살펴보면 세속의 공론과 다르다. 그렇지만 않았더라면 이사의 공은 주공이나 소공과 같은 대열이었을 것이다.”     


  분명 이사는 단추를 잘못 채웠다. 그럴 수 있다. 긴 인생에서 채울 단추가 얼마나 많은가? 그중 한둘 정도 잘못 채울 수 있다. 단추를 잘못 채웠다고 생각할 때 단추를 끌러 다시 채우면 된다. 반성하고, 사과하고, 되돌릴 수 있으면 원상복구 하는 게 순리다. ‘다시 채울 수 없다고/억지로 잡아떼’면 문제만 키운다. ‘단추가 무슨 죄인가/잘못 채운 나를 탓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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