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섬기면 훌륭한 인재가 찾아온다
[장자] <천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제 나라 환공이 누각 위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 아래에서 땀을 흘리며 수레바퀴의 굴대를 끼우던 윤편이 계단을 올라 임금에게 물었다.
“전하 지금 읽고 계신 것이 무엇입니까?”
“옛 성인의 책이니라.”
“그분은 살아계신가요?”
“죽었지”
“그렇다면 전하께서는 옛사람의 껍데기를 읽고 계신 거로군요.”
“환공이 화가 났다.
“네 이놈! 무엄하구나. 그 말이 무슨 뜻인가? 까닭이 있으면 살려 주려니와, 그렇지 않다면 살려두지 않으리라.”
윤편이 대답한다.
“저는 저의 일을 가지고 판단할 뿐입니다. 제가 바퀴를 끼운 것이 지금까지 수십 년입니다. 그런데 굴대가 조금만 느슨해도 금방 빠지고 조금만 빡빡해도 들어가질 않습니다. 느슨하지도 빡빡하지도 않은 것을 제 마음과 제 손으로 느껴 깨달을 뿐이지요. 그 이치는 제 아들 녀석에게도 가르쳐 줄 수 없고, 전하께도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옛 성인들이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해도, 그가 죽으면서 한 말은 다 없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전하께서 읽으시는 것은 옛사람의 껍데기일 밖에요.”
노인의 죽음은 도서관이 없어진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사람의 지혜가 책만큼 소중하다는 뜻이다. 공광규 시인의 <아름다운 책>은 사람이 책이 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어느 해 나는 아름다운
책 한 권을 읽었다
도서관이 아니라 거리에서
책상이 아니라 식당에서 등산로에서
영화관에서 노래방에서 찻집에서
잡지 같은 사람을
소설 같은 사람을
시집 같은 사람을
한 장 한 장 맛있게 넘겼다
아름다운 표지와 내용을
가진 책이었다
체온이 묻어나는 책장을
눈으로 읽고
혀로 넘기고
두 발로 밑줄을 그었다
책은 서점이나 도서관에만
있는 게 아닐 것이다
최고의 독서는 경전이나
명작이 아닐 것이다
사람, 참 아름다운 책 한 권
-<아름다운 책>, 공광규
연(燕)나라 소왕은 스스로 몸을 낮추고 사람들을 후대하여 어진 자를 불러들였다. 그래서 제나라에게 당한 수모를 설욕하고자 하였다. 소왕은 우선 곽외 선생을 찾아뵙고 물었다.
“제나라는 우리나라 내란을 틈타 침입하여 나라를 망쳤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우리 연나라는 작고 힘이 모자라 복수하기에 부족하다고 여기나 그래도 능력 있는 사람들을 모아들여 나라를 함께 일으켜 선왕의 치욕을 씻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어떻게 하면 될지 지도해 주십시오.”
그러자 곽외 선생은 이렇게 의견을 내세웠다.
“제왕은 스승과 함께 사귀고, 왕자(王者)는 친우와 함께 사귀며, 패자는 신하와 함께 사귀고, 나라를 망칠 자는 역부들과 함께 사귄다고 하였습니다. 몸을 굽혀 남을 스승으로 모시고, 제자가 되어 학문을 배우면 자기보다 백 배 나은 자가 찾아오는 법입니다. 그다음 먼저 달려 나와 일하고 나중에 쉬며, 먼저 묻되 나중에 아는 척하면 열 배 나은 자가 찾아옵니다. 남이 달려 나가 일할 때 나도 달려 나가 일하면 자기와 같은 자가 찾아옵니다. 의자에 앉아 거드름이나 피우고 눈을 부라리면서 일만 시키면 그저 마구간 잡역부 정도나 찾아오겠지요.
남을 미워하고 화를 잘 내고 교만하고 핑계 대며 꾸짖기만 할 줄 아는 자에게는 노예들이나 겨우 찾아오는 법입니다. 이상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것으로 도에 복종하여 선비를 모으는 방법입니다. 왕께서 진실로 나라 안의 현자를 널리 선택하시려거든 먼저 그 문하에 몸을 굽혀 찾아가십시오. 왕이 그렇게 겸손히 어진 자를 구한다는 소문을 듣게 되면 천하의 선비들이 틀림없이 우리 연나라로 달려올 것입니다.”
소왕이 물었다.
“그렇다면 제가 먼저 누구를 찾아보는 게 좋겠습니까?”
사람을 섬기면 훌륭한 인재가 찾아온다
곽외는 이렇게 비유를 들었다.
“제가 옛날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옛날에 어떤 임금이 1천 금으로 천리마를 구하려 하였지만 3년이 되도록 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때 궁중 청소를 하는 자 하나가 임금에게 ‘청하건대 제가 구해 오겠습니다.’ 하더라는 겁니다. 왕이 그를 보냈더니 과연 석 달 만에 천리마를 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죽은 말이었는데도 그자는 5백 금에 말의 머리를 사서 돌아와 임금에게 보고하더랍니다.
임금은 크게 노하여 꾸짖었습니다. “나는 살아있는 말을 구하는데, 죽은 말을 어찌 5백 금이나 주고 사 왔단 말이냐?” 그러자 그자의 대답은 이러하였습니다. ‘죽은 말도 5백 금이나 주고 사는데, 하물며 살아 있는 말이야 어떻겠습니까? 천하가 틀림없이 대왕은 말을 살 줄 안다 여기고 곧 좋은 말들이 모여들 테니 두고 보십시오.’ 과연 일 년이 지나지 않아 천리마가 세 필이나 들어왔습니다. 지금 대왕께서 진실로 선비를 모으고 싶거든 저부터 시작하십시오. 저 같은 자도 섬김을 받는다면 하물며 저보다 어진 자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어찌 천 리를 멀다 하겠습니까?”
이에 소왕은 곽외 선생을 위해 집을 지어 주고 스승으로 모셨다. 그때부터 과연 악의가 위나라에서, 추연이 제나라에서, 극신이 조나라에서 찾아들고, 숱한 선비들이 다투어 연나라로 몰려들었다. 연왕은 사람이 죽는 일이 생기면 일일이 찾아가 조문하고 유족을 위문하는 등 신하들과 함께 기쁨과 고통을 같이했다. 그러자 나라는 부강해지고, 군대는 안락하면서도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을 갖게 되었다. 이에 연나라는 악의를 상장군으로 삼고 제나라에 복수할 기회를 엿보았다.
‘몸을 굽혀 남을 스승으로 모시고, 제자가 되어 학문을 배우면 자기보다 백 배 나은 자가 찾아오는 법입니다.’라고 한 곽외 말은 <아름다운 책>과 의미가 통한다. 진 소왕이 처음 범저를 만나는 광경을 떠올려 보자. 소왕이 무릎을 꿇은 채 범저에게 사정을 하는 장면이 기억날 것이다.
“우리 진나라는 멀리 떨어져 있고 과인은 어리석고, 똑똑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선생께서 욕됨을 무릅쓰고 와 주셨으니, 이는 하늘이 과인에게 선생의 도움을 받아 선왕의 종묘를 이어가도록 한 것입니다. 과인이 선생의 가르침을 받게 된 것은, 하늘이 우리 선왕을 위해 고아인 과인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생께서는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앞으로는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위로는 태후에 관한 일로부터 아래로는 대신에 관한 일까지 모든 것을 과인에게 가르쳐 주시고 과인을 의심치 말아 주시오.”
하급 관리 윤처관이 좌의정 박원형의 집을 방문했다. 이름 적은 종이를 청지기에게 내밀었지만 대감이 낮잠을 잔다고 하여 만나지 못했다. 온종일 기다리며 밥도 먹지 못한 윤처관은 집에 와서 아들 윤효손에게 열심히 공부하여 아비와 같은 수모를 당하지 말라고 일렀다. 이튿날 윤처관이 다시 방문해 좌의정을 만났을 때 좌의정은 이름을 적은 종이 뒤쪽을 보았다. 여기에는 아들 윤효손이 쓴 시가 있었다.
재상이 달게 자는데 해는 중천에 있으니
문 앞에서는 이름 적은 종이에 보푸라기 이는구나
꿈속에서 주공을 만난다면
옛날 주공이 음식을 뱉고 또 머리를 쥐던 일을
모름지기 물어보시지요.
이 시를 읽은 좌의정은 감탄했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가 꿈속에서 주공을 만나고 싶어 하는 이야기와 주공의 삼토포 삼악발(三吐哺 三握髮)을 절묘하게 비유해 섞은 시였기 때문이다. 권력이 있을수록 겸손해지라는 교훈을 윤효손이 정승에게 이른 시였다. 윤처관은 아들이 장난으로 썼다고 했으나 좌의정은 윤효손을 만나 사위로 삼았다.
[한시외전]에 이와 관련한 이야기가 나온다.
주(周)나라는 무왕이 은(殷)나라 주왕을 멸하고 세운 나라로, 무왕 치세에 혼란하던 정세를 점차 회복해갔다. 무왕이 질병으로 죽고, 나이 어린 성왕이 제위에 오르자, 반란이 일어나기도 하며 천하 정세는 아직 안정된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무왕의 아우이자 성왕의 삼촌인 주공단이 섭정하며 주 왕조의 기반을 굳건히 다졌다.
주공은 주 왕실의 일족과 공신들을 중원의 요지에 배치하여 다스리게 하는 대봉건제를 실시하여 주 왕실의 수비를 공고히 했다. 이때 아들 백금도 노(魯)나라 땅에 봉해져 떠나게 되자,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었다.
“나는 한 번 씻을 때 세 번 머리를 거머쥐고[一沐三握髮:일목삼악발], 한 번 먹을 때 세 번 음식을 뱉으면서[一飯三吐哺:일반삼토포] 천하의 현명한 사람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머리를 감고 있는데 귀한 손님이 찾아오면 다 감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지 않고 머리를 감다 말고 세 번씩이나 머리를 거머쥐고 나가고, 입안에 음식을 넣고 씹고 있는데 손님이 찾아오면 씹던 음식을 뱉어내고 맞이한다는 뜻이다. 주공은 아들에게 나라를 위해 정무를 잘 보살피려면 잠시도 편히 쉴 틈이 없다는 사실과 훌륭한 인물을 얻기 위해서는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말해주려는 것이다. 공자는 주나라 무왕의 동생인 주공을 매우 존경했고, [논어]에 “오랫동안 꿈속에서 주공을 만나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는 구절로 존경을 표시했다.
우리 조상들은 공부할 때 여택(麗澤)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여택은 인접해 있는 두 연못이 서로 물을 윤택하게 한다는 뜻으로, 벗끼리 서로 도와 학문과 덕행을 닦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공자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반드시 스승이 있으니(三人行, 必有我師焉) 그중에 선한 사람을 따르고(擇其善者而從之) 선하지 못한 사람을 보면 자신 잘못을 고쳐라(其不善者而改之)” 사람이 책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당신 곁에는 사람 책이 얼마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