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과학은 어떻게 스토리텔링을 해야할까?
다큐 영화를 리뷰하려는 목적은 아니다. 이 글은 우리나라의 과학이야기는 어떻게 전달하는 게 좋을지를 생각해봤으면 싶어서이다. <Fireball: Visitors from Darker Worlds> 다큐를 보면 한국의 장보고기지가 소개된다. 사실 이 다큐가 만들어진 계기도 바로 그 기지의 한 과학자가 제공했다. 그런데 우리 중 누가 그 스토리를 알까?
<Fireball: Visitors from Darker Worlds>는 Apple TV+에서 제공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다. 그러니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보기가 어렵다. 설사 Apple TV+를 미국 계정을 이용해서 가입했더라도 다큐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어야 볼 수 있다. 그러니 확률적으로 이 다큐를 본 한국인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게 합리적인 추측일 것이다.
이 다큐는 독일 영화 및 오페라 감독 베르너 헤어초크(Werner Herzog)와 영국 캠브리지대학교 지질학과 교수인 클라이브 오펜하이머(Clive Openheimer)가 감독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2020년 제작되었다. 두 감독이, 내레이션은 헤어초크 감독이 하고 화면에 등장하여 인터뷰는 오펜하이머 교수가 분담, 운석과 관련된 세계 여러 지역을 찾아다니며 기록한다. BBC 다큐처럼 압도적인 영상미가 있지는 않지만 그냥 친근한 대화와 운석과 관련된 여러 스토리로 구성하여 시청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운석이 인류의 문화, 종교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조명하기도 하고, 운석을 연구하는 과학자를 방문하기도 한다. 그리고 운석이 지구에 남긴 상처를 비추기도 한다. 이 다큐에는 6개 대륙 12개의 장소와 이야기가 등장한다. 2020년 9월 10일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서 초연되었고, 2020년 11월 13일 Apple TV+에서 공개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남극에 2개의 과학기지를 운영한다는 걸 처음 제대로 알았다. 뉴스에서 보기는 했겠지만 관심이 크게 없어서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남쉐틀랜드 군도(South Shetland Islands)의 킹조지섬에는 세종기지가 있고, 남극대륙 북빅토리아 랜드의 테라노바 만 연안에는 2014년에 완공된 장보고기지가 있다.
그런데 장보고 과학기지에서 연구하는 분야 중 하나가 운석을 찾는 일이다. "남극에서 무슨 운석?"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남극은 빙하로 되어있어서 운석이 떨어지면 찾기가 쉽다. 또한 빙하 속에 묻혀있던 운석이 표면에 드러나기도 한다. 어쨌든 이 글의 목적이 운석을 이야기하려는 것도 아니다.
행성방위조정국(Planetary Defense Coordination Office)
2016년 미국 NASA에서 설립한 기구로 지구로 접근할 가능성이 있는 소행성 혜성을 탐지하는 역할을 한다. 간략히 설명하면 지구에 피해를 줄 수 있는 크기인 30~50m보다 큰 물체가 지구로부터 5백만 마일 이내로 근접할 가능성이 있는 물체를 조기 탐지하는 역할이다. 그리고 이러한 물체의 영향을 줄이기 위한 전략 및 기술 연구도 수행한다.
다큐를 보다가 후반부에 갑자기 남극의 장보고 과학기지가 등장했다. 헬기에서 비춰주는 기지는 자못 웅장했다. 카메라를 들고 내부를 비춰주는 데 식물공장이 보이고, 카페테리아에서는 랍스터가 준비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오펜하이머 교수는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바로 헬기로 이동한다. 그리고 장보고 기지에서 출발한 한국 탐사대를 만나러 간다.
오펜하이머 교수가 이 다큐를 만들게 된 계기는 이 연구책임자인 이종익 박사가 보내 준 영상을 보고 난 이후라고. 아래 장면 뒤에는 흐느껴 우는 장면이 바로 이어진다. 운석을 발견하고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오열 수준까지 고조된다. 오펜하이머 교수는 이 장면을 보고 운석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해졌다(3). 그게 이 다큐가 만들어진 배경이 되었다.
그런데 한국의 한 뉴스 기사에서는 이렇게 소개한다.
"가로 21cm, 세로 21cm, 높이 18cm, 무게 11kg의 이 운석은 3일 장보고과학기지 남쪽으로부터 약 300km 떨어진 엘리펀트 모레인 청빙 지역(Elephant moraine blue ice)에서 발견됐다. 3월 한국 진주에 낙하한 운석과 같은 종류인 ‘오디너리 콘드라이트(Ordinary Chondrite)’로 추정되고 있다. 이번에 확보한 운석을 포함해 한국은 총 282개의 남극 운석을 보유한 국가가 됐다.(2)"
위의 뉴스를 보고 어떤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왜 역사적인 운석을 발견한 그 영상을 우리는 볼 수 없는 것일까? 그게 무척이나 아쉬웠다.
이 다큐가 흥미를 끌기는 했지만 압도적인 영상미를 자랑하는 BBC 다큐와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한 명의 교수와 한 명의 감독이 6 대륙을 다니면서 날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과 스토리의 전개는 흥미를 충분히 이끌어냈다. 운석에 관해 인류와 연관된 여러 지식은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런데 오펜하이머 교수가 이 여정을 시작하게된 계기가 2014년 한국의 한 과학자가 보낸 영상에서 시작된다. 그의 여정을 통해 나는 남극에 과학기지가 두 개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그러면서 이런 아쉬움이 들었다.
역사적인 발견을 왜 저런 보도자료로 밖에 못만들까?
왜 이종익 박사는 기지의 가장 큰 성과인 꽤나 큰 운석을 발견하고 그렇게 눈물을 흘렸을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2014년 장보고 기지를 개소하고 처음 얻은 성과였기 때문이지 읺았을까? 첫해에 대박이라니 분명 길조처럼 생각할 수도 있었다.그렇지만 남극과 운석이라는 이런 멋진 주제에 대한 스토리텔링으로는 무척이나 아쉬웠다. 그리고 다른 나라의 장면에서처럼 인터뷰도 좀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싶은 아쉬움도 들었다. 아무래도 언어의 한계일까?
운석을 컬렉션하고 분석만 할게 아니라면 운석이 주는 무한한 영감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수는 없었을까? 운석은 <딥 임팩트>처럼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이슬람 종교의 가장 중요한 성물 중 하나이기도 하고, 나라의 흥망성쇠를 알려주던 예지몽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데 큰 운석의 발견되었는데 우리에게는 왜 아무런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했을까?
운석 하나가 지구의 탄생 비밀을 밝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과학연구를 지원한 국민들에게 어떤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지 않을까! 때로는 이게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희귀한 남극의 우주과학자들에게는.
(1) Fireball:visitors from darker worlds
(2) 극지연, 남극장보고과학기지 연구현장서 대형 운석 발견 (파이낸셜뉴스, 2014. 12. 5.)
(3) Werner Herzog & Clive Oppenheimer’s ‘Fireball: Visitors From Darker Worlds’ Is No Ordinary Doc: “There’s A Lot Of Wild Stuff In It”(Deadline. 2020. 10. 14.)
* 표제부의 사진은 "Fireball: Visitors From Darker Worlds" 다큐멘터리 리뷰 사이트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