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의 몸 이야기]
잊고 있던 겨울 한 조각
5학년이었던가, 겨울방학에 동네 친구들과 스피드 스케이트 방학 특강을 다녔다. 무려 태릉 야외 스케이트장에서 진행되는 수업이었다. 그때는 엄마가 일러준 장소에서 동생과 친구들과 셔틀버스를 타고 가서 잘 몰랐지만 크고 나서 생각해 보니 태릉 야외 링크에서 스케이트를 배우다니! 대단한 일이었다.
당시 우리 집은 하계동에 새로 지어진 아파트 단지의 13층이었다. 시간 맞춰 동생과 스케이트 가방을 챙겨 엘리베이터를 타면 12층에서, 8층에서, 5층에서 스케이트 가방을 든 친구들이 인사를 건네며 탔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면 다른 동에 사는 친구들도 스키복에 스키장갑을 끼고 스케이트 가방을 들고 나왔다. 야외에서 찬바람 맞으며 타기 때문에 다들 두꺼운 솜바지를 입고 두툼한 장갑을 꼈다. 털모자도 깊숙이 눌러썼다. 작은 승합차 안에 간이 의자까지 내려서 꽉꽉 채워 타고 태릉까지 이동했다. 키 큰 나무들이 뻗어있는 도로에서 유턴을 했던가, 좌회전을 해서 빙상장으로 들어갔던 것 같다.
꿈별이의 재활치료를 위해 공릉동에 있는 다운복지관으로 처음 향하던 날, 어디서 많이 보던 길이 나왔다. 이 지역을 내가 운전해서 온 적이 없는데 왜 낯이 익지, 이상하다, 하고 둘러보니 태릉 선수촌 앞이었다. 그래서 그 겨울이 생각났다. 기억 속에 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그 길이 스케이트를 배우던 겨울을 불러왔다.
시작은 언제나 어렵다
빙상장에 도착하면 차에서 내려 어기적어기적 걸어가서 삼삼오오 벤치에 앉아 낑낑대며 스케이트를 신었다. 아이들이 추울세라 엄마들이 잔뜩 껴입혀 보냈기에 상체를 숙여 발에 꼭 맞는 스케이트를 신고 끈을 단단히 조이려면 안간힘을 써야 했다.
방학을 몇 주 남긴 어느 날, 엄마가 도화지를 바닥에 펼치더니 나와 동생에게 한 명씩 종이 위에 서라고 했다. 올라서자 색연필로 우리의 발을 따라서 그렸다. "간지러워!" 킥킥. "잠깐만 가만히 서 있어!" 얼마 후 우리 발에 꼭 맞는 스피드 스케이트화가 도착했다. 까만 가죽으로 된 날렵한 신발 밑에 번쩍번쩍 단단하고 날카로운 날이 달려 있었다. 고무로 된 날 커버를 씌운 채 집 안에서 스케이트를 신고 걸어봤다. 엉거주춤 중심을 잡기 힘들었다. 동생과 나는 설레는 마음에 잔뜩 들떠서 방학이 될 때까지 수시로 스케이트화를 신고 방 안을 걸었다.
빙상장에는 스케이트 날을 갈아주는 곳이 있었다. 천 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매일 갈 필요는 없고(있는데 아끼느라 안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며칠에 한 번씩 스키복 바지 주머니에 꼬깃꼬깃 천 원을 접어 가서 스케이트화와 함께 내밀었다. 가게 아저씨는 숫돌에 날을 갈고 돌아가는 기계에도 갈고 헝겊으로 닦아 깨끗하게 한 뒤 돌려주셨다. 기계 소리가 제법 귀에 거슬렸지만 호기심과 신기함이 거슬림을 이겨서 고개를 빼 밀고 지켜보곤 했다.
날도 갈고 끈도 단단히 묶었으면 빙판으로 달려갈 준비는 다 마친 것이다. 야외 링크는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두근두근 했다. 그러나 바로 빙판으로 달려갈 수는 없었다. 스케이트 선생님은 우리를 빙판이 아닌 공터에 두 줄로 서게 했다. 아이들은 스케이트에 날 커버를 씌운 채 팔을 벌리고 가까스로 중심을 잡으며 두 줄로 서서 휘청댔다. 우리는 그 상태로 준비 운동도 하고 앉았다 일어섰다도 해야 했다.
몸풀기가 끝나고 나면 자세를 배웠다.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숙이고 고개는 앞을 보고 다리를 한쪽씩 옆으로 뻗었다가 뒤를 찍었다가 다시 제자리로 가져오기를 배웠다. 한 발로 중심 잡기는 더 어려웠다. 다리 동작을 잘 따라한 다음에야 손을 휘젓는 방법을 배웠다. 처음 며칠은 링크에 발도 못 들여놓고 자세만 배웠던 것 같다.
스케이트를 타고 싶은데 땅에서 쭈그리고 자세 연습만 하니 영 재미가 없었다. 발에 꼭 맞는 스케이트화를 꽁꽁 묶었더니 발뒤꿈치에 물집이 잡히기도 했다. 동생과 내가 집에 돌아오면 엄마는 "재미있었니?"하고 물으셨는데 "아니!!!!!"를 크게 외쳤다. 자세 배우기는 힘들기만 하고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피아노 배울 때 <하농>을 싫어했듯 스케이트도 처음은 지겹기 그지없었다.
마침내 첫 발을 내딛다
드디어 빙판에 서는 날이 왔다. 선생님의 허락이 떨어지자 아이들은 다들 잔뜩 들떠서 성큼성큼 링크로 걸어갔다. 자세 연습과 준비 운동을 며칠 했더니 이제 스케이트를 신고 보폭을 크게, 무릎을 들어 올리며 땅에서 걷는 것에도 익숙해진 차였다. 마침내 링크에 도착해서 날 커버를 벗고 딱딱한 얼음에 스케이트 날이 닿았을 때의 새로운 감각이 아직도 생생하다. 바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기에 잊을 수가 없다. 우당탕탕. 넘어진 건 나만이 아니었다. 이제는 얼음에 익숙해질 차례였다.
몇 번 더 미끄러지다 얼음에서 엉거주춤 서있게 되자 이번에는 링크 위에서 한 번 더 자세 연습을 해야 했다. 빨리 씽씽 달리고 싶어 마음이 조급했다. 빙판에 들어선 날 이후로는 셔틀이 빙상장에 도착하면 다들 경쟁하듯이 뛰어내렸다. 선생님이 수업을 시작해서 다시 자세 연습을 시키기 전에 잠시라도 얼음 위를 자유롭게 미끄러지고 싶은 마음에 숨이 차도록 내달렸다. 후다닥 스케이트화를 신고 링크로 들어갔다. 발을 내 멋대로 앞으로 옆으로 슥슥 밀었다. 그 시간에는 어떤 자세로 타고 기고 놀아도 선생님은 별말을 하지 않으셨다.
연습을 거듭해서 마침내 직선으로 타기를 배웠다. 그렇다고 씽씽 달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줄을 지어서 한 명씩 다리를 옆으로 찼다가 뒤로 보내 날 앞부분을 찍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아주 천천히 하다 보면 서서히 스케이트날이 앞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마음이 앞서서 빨리 가고 싶어지면 허리가 떴다. 그럼 선생님의 "허리 숙이고 다시!"를 들어야 했다. 느리게나마 얼음 위에서 앞으로 나간다는 건 땅에서 연습할 때와는 천지 차이였다. 그때부터는 정말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빙판에서 넘어지면 엉덩이가, 무릎이, 손바닥이 아팠지만, 찬바람에 코끝이 빨개졌지만 즐거웠다. 동생과 나는 아침에 눈 뜰 때부터 잠이 들 때까지 스케이트 이야기만 했다.
직선 타기를 배워서 속도를 내기 시작할 때쯤, 또 멈춰야 했다. 곡선 부분에서 발을 엇갈려서 타는 방법을 배울 차례였다. 이번에는 처음처럼 조급하지 않았다. ‘스케이트를 더 잘 타고 싶다’, ‘선생님처럼 멋지게 타고 싶다’는 욕심이 이미 생겼기에 누구도 불평하지 않고 열심히 자세를 익혔다.
하늘을 달리다
스피드 스케이트의 모든 자세를 익힌 건 아니지만 방학 특강의 목표를 달성할 무렵, 우리는 더 이상 넘어지지 않고 쌩쌩 달릴 수 있게 됐다. 잠실이나 목동의 실내 링크와 달리 태릉 야외 링크는 크고 넓었다. 그 시간대에는 우리밖에 없었기에 인파와 부딪칠 일 없이 정말 원 없이 달릴 수 있었다. 수업 막바지로 갈수록 선생님은 자세를 지적하는 대신 실컷 달리도록 내버려 두었다. 우리는 다 취미로 한 철 배우러 온 아이들이기에 즐길 수 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바람을 가르며 얼음 위를 미끄러져 달리는 기분은 정말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훗날 스키도 스노보드도 배워봤지만 눈 위를 타고 내려오는 것과 얼음판에서 쌩쌩 달리는 건 조금 다르다. 발을 힘껏 찰수록 더 빨리 나간다. 발도 팔도 쭉쭉 뻗으면 점점 더 빨라진다. 발과 땅의 마찰이 없는 곳에서 내 몸을 최대로 뻗어서 속도를 내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다. 숨이 찰 때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다 멈춰 서서 숨을 몰아쉬면 찬바람과 내 뜨거운 입김이 만나 눈앞에 잠시 뿌옇게 됐다.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몸을 움직이는 순수한 즐거움. 그걸 충만하게 느낀 겨울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던 어느 오후. 그날은 유난히 눈이 부셨다. 막바지라 결석한 친구들이 많아서 더 여유롭게 탈 수 있었다. 마침내 선두에 서자 내 앞에 빙판과 하늘과 햇살만 보였다. 그리고 나는 새처럼 날았다. 하늘을 달렸다.
잊을 수 없는 한 장면
취미로 배운 일회성 방학 특강이었기에 이후로 태릉 빙상장에 갈 일은 없었다. 엄마는 나와 동생을 실내 링크장으로 데려가곤 했는데 사람이 너무 많고 쭉 뻗은 링크를 길게 달릴 수 없어서 이내 재미가 없어졌다. 발이 자라서 아끼던 스케이트화도 더 이상 신을 수 없게 되어 동네 누군가에게 물려주었다.
계절이 바뀌고 나이를 먹으면서도 문득문득 하늘을 달렸던, 날았던 순간이 떠올랐다. 어릴 때부터 하늘을 날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고, 어른이 되고도 계속 하늘을 나는 꿈을 꾸곤 하는데 내가 상상하기에 나는 것과 가장 가까운 경험이 그 겨울 스케이트장에서의 질주이기 때문인 것 같다.
살다 보면 나를 나로 만드는 순간이 있다.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이 그것들이다. 촌스러운 스키복을 입고 스키장갑을 끼고 엉거주춤, 그렇지만 맹렬히 빙판을 달리던 어린 나. 그날의 파란 하늘과 얼음에 반사된 햇살과 얼굴에 와닿는 찬바람과 등 뒤로 흐르던 땀과 쭉쭉 뻗던 내 팔과 다리. 그 순간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나를 만드는 중요한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