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의 몸 이야기]
초등 시절 몸을 자유자재로 쓰며 뛰어놀던 나는 중학교에 진학한 후 충격에 빠졌다. 친구들이 더 이상 운동이나 몸을 쓰는 놀이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남녀공학이었지만 반이 나뉘어 있었다. 홀수 반은 남자 반, 짝수 반은 여자 반이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 어울려 생활하던 아이들에게 한 쪽에는 치마, 한 쪽에는 바지 교복을 입히고 반을 나누어버리자 갑자기 상대성별을 의식하게 되었다. 2차 성징이 와서 이성에게 관심을 갖는 게 아니라, 못 만나게 막아 놓으니 더 관심이 가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찌 됐건, 반은 나뉘었지만 운동장은 공유했기에 체육 수업 시간이면 남자 몇 반, 여자 몇 반이 동시에 수업을 받았다. 체육 선생님은 진도에 따라 수업을 했지만 우리 반 아이들은 어떤 오빠가 달리기를 멋지게 하는지, 어떤 남학생이 농구를 잘 하는지에 더 관심이 가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엔 바뀐 또래 문화의 분위기를 모르고 전처럼 열심히 체육 수업에 참여하기도 하고,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운동장이나 놀이터에서 놀자고 이야기도 해보았는데 호응하는 친구가 없었다. 곧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우리가 운동장에서 남학생들을 곁눈질로 보았듯이 그들도 여자 반 아이들이 달리기를 하거나 운동을 할 때 쳐다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온 힘을 다해 달리면 가슴이 출렁거린다고 키득거렸고, 실수를 하거나 넘어지면 비웃었다. 운동을 잘하는 남학생과는 달리 여학생이 체육을 잘해서 선망의 대상이 되는 일은 없었다. 점점 체육 시간에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열외 되어 구석에 앉아있거나 ‘이런 거 정말 싫어’를 온몸으로 뿜뿜 내뿜으며 슬렁슬렁 임하는 게 멋진 태도라는 분위기가 퍼졌다.
또래 문화에 맞추고는 싶고, 동시에 몸을 실컷 움직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나는 체육 실기 시험만 손꼽아 기다렸다. 실기 시험 핑계를 댈 때만큼은 친구들도 밤늦게까지 운동장에서 같이 연습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친구들도 시험 때문에 할 수 없이 운동을 한다는 듯 연기를 하며 그 시간을 즐겼을지도 모른다. 3년 동안 체육 실기 시험 종목은 다양했겠지만 줄넘기와 농구 연습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학교 끝나고 가방 던져놓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집 앞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그때는 학교 운동장을 늘 개방했기에 오후에 동네 아이들이 와서 놀기도 하고, 저녁에 어른들이 운동을 하기도 했다. 한쪽 구석에서 줄넘기 연습을 하다가 바닥에 주저앉아 수다를 떨기도 했다. 서서 뛰는 시간보다 앉아서 입 운동하는 시간이 더 길었음은 물론이다. 초등학교 때는 오히려 X자(엇걸어 풀어) 뛰기나 2단 뛰기, 일명 '쌩쌩이'를 할 줄 아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여중생이 되어 체육을 기피하고 앉아만 있어서인지 줄넘기가 훨씬 어렵게 여겨졌다. 그래도 그런 기술 하나쯤 성공하면 체육 실기 점수를 잘 받을 수 있기에 몇 년 전에 어떻게 했었는지 되짚어가며 연습을 했다. 가슴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제자리에서 뛰는 줄넘기가 더 부담스러워졌던 건지도 모른다. 그때는 가슴이 나오기 시작하면 엄마나 이모가 "어디 보자"며 묻지도 않고 만지기도 했고 남자아이들이 놀리기도 했기 때문에 뛸 때마다 출렁거리는 가슴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몸의 변화가 당연한 것이고, 부끄러울 게 하나도 없다는 교육을 받았으면 좋았겠지만, 가슴 발육에 대해 받은 교육이라곤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으면 '학주'에게 '등짝 스매시'를 맞으니 조심하라는 말이 다였다.
체육 시간에 농구를 배우게 됐을 때는 정말 기뻤다. 당시 만화 <슬램덩크>에 푹 빠져 있었기에 "왼손은 거들 뿐"이 대체 어떤 의미 있지, "놓고 온다"는 어떤 느낌인지 내 몸으로 직접 체험해 보고 싶었다. 평소 운동장의 농구 골대는 남학생들 차지이기에 한 번도 진짜 골대에 공을 던져본 적이 없었다. 농구공조차 없었다. 딸 둘인 집에서 한철 체육 시험 때문에 농구공을 사지는 않던 시절이었다. 친한 친구가 연년생 오빠의 농구공을 가지고 나왔다. 친구 오빠의 공으로 같이 번갈아가면서 드리블과 슛 연습을 하기로 했다. 농구공을 튕겨본 것도 처음이었는데 공이 생각보다 크고 손에 닿는 느낌이 거칠고 단단해서 놀랐다. 과연 피구할 때 만져본 배구공과는 촉감과 탄성이 달랐다. 운동장에 농구공을 몇 번 튕겨보는 것만으로 제법 신이 났다.
드리블 연습을 할 때는 체육 선생님이 알려준 자세보다는 <슬램덩크> 속 드리블 연습 장면을 떠올렸다. 기본자세로 계속 반복해야 된다던데,라며 엉거주춤 허리를 숙인 채 공을 튕겼다. 슛 시험은 골밑 점프슛이었다. '놓고 오는' 레이업은 드리블이 웬만큼 되어야 할 수 있는 기술인 걸, 만화로 농구를 배웠기에 몰랐다. 시험 종목은 아니지만 그 느낌이 뭔지 궁금해서 친구 오빠 공을 만질 수 있을 때 괜히 레이업슛을 시도해 보기도 했다. 골밑 슛도 만화로 배운 것과 현실은 달랐다. 농구공이 운동 부족인 여중생 손에는 꽤 크고 무거워서 한 손으로 중심을 잡고 '왼손은 거들 뿐' 자세로 골대 높이까지 슛을 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양손으로 공을 가슴 앞에 쥐고 뛰면서 높이 던져서 슛을 하는 게 당시 우리에게 맞는 자세였다. 강백호 같은 자세로 슛을 하지 못한다는 게 조금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그 자세를 할 수 있을 때까지 애를 쓸 생각은 없었다. 안 되는 거구나, 하고 3초쯤 생각했을 뿐이다.
여중생 치고 키가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농구 골대는 생각보다 높았다. 계속 위를 보며 무거운 농구공을 던지니 목덜미와 어깨가 뻣뻣해져왔다. 그렇게 반복해서 연습을 해도 골 성공률은 낮았다. 친구와 번갈아 가면서 자세를 봐주기도 하고, 몇 번 시도 중에 몇 번 골이 들어갔는지 세어주기도 했는데 우리 둘 다 성공률이 반도 안 되었다. 그나마도 친구는 집에 가면서 오빠를 만나서 코치를 받기도 하고 몇 번 더 슛을 쏘아볼 수 있었지만, 친구와 함께 연습하는 시간이 전부였던 나는 연습량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시험 시간에는 세 번 던져서 들어가는 횟수로 점수를 매겼는데 친구는 두 골을 성공했고 나는 연습이 무색하게 한 골만 넣는 데 그쳤다. 체육 실기만큼은 늘 100점이었는데 농구에서 처음으로 그 기록이 깨졌다. 시험 이후로는 다시 농구공을 잡을 일이 없었다. 그저 프로 농구 시즌이 되면 중계방송을 챙겨보거나 이상민 선수의 경기를 관람하러 갈 뿐 직접 해볼 생각은 안 했다. 농구는 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