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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May 22. 2024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 같은 여고생

[울림의 몸 이야기]


여고로 진학하자 중학교 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남학생을 의식하지 않게 되자 아이들이 좀 더 자유롭고 편하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교복 치마 입은 채 계단도 서너 칸씩 성큼성큼 뛰어오르고, 내려올 때는 계단 반쯤 왔을 때 그냥 뛰어내리기도 하고, 난간도 타고, 지각하면 담도 좀 넘고, 그러기 시작했다. 여전히 체육 수업을 싫어하는 여학생들은 많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정말 몸 움직이는 게 적성에 안 맞고 싫어서였지, 비웃음의 대상이 될까 걱정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나도 무언가에서 해방된 것 같아서 후련했다. 교복을 입으면 학교 밖에서 누구나 내가 어느 학교 학생인지를 알기에 행동을 조심하게 되지만, 학교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선생님의 눈만 피하면 자유로워졌다. 쉬는 시간에 선생님들이 교무실로 들어가고 나면 운동장을 내달리고 교실이나 복도에서 소리를 지르고 겅중겅중 뜀뛰기를 하고 춤을 추고 무슨 짓을 해도 아무 상관없었다. 



[울림의 몸 이야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 같은 여고생


또 한 가지 달라진 점은 10대 후반이 되자 다이어트에 관심을 갖는 아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살 빼자고 친구를 꼬드겨 점심시간에 탁구를 치기 시작했다. 어차피 2교시 지나면 도시락을 까먹고 4교시 끝나고 5분이면 친구들 도시락 한 입씩 얻어먹기도 끝나기에 탁구 칠 시간은 충분했다. 강당으로 뛰어가서 탁구대를 설치하고 친구와 더듬더듬 랠리를 이어가면 땀이 살짝 났다. 신나게 몸을 움직이고 종소리가 나면 교실로 뛰어가서 5교시엔 엎드려 잤다. 움직이지 않았더라도 5교시는 원래 자는 시간이 아니던가. 당시 짝사랑하던 선생님도 가끔 점심시간에 강당으로 탁구를 치러 오셨다. 선생님을 한 번 더 보는 것도 점심시간 탁구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공 주우러 다니는 시간이 더 길었지만 친구와 나는 쉴 새 없이 웃었다. 잘하지 않아도 되는 운동은 언제나 웃음을 불러온다. 인간은 동물이라 움직이는 게 자연스러워서 그런 모양이다. 



1년에 한 번쯤 학부모 상담 때문에 엄마가 학교에 오셨는데 담임들마다 한결같이 “애가 홍길동 같아요.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해요.”라고 말했다고 전해 들었다. 쉬는 시간은 10분밖에 안 되는데 옆 반 친구에게 편지도 전해줘야 하고, 또 다른 반 친구에게 할 말도 있고, 체육복도 빌려야 하고, 교과서도 빌려야 하고, 어쩌다 선생님 심부름도 해야 하고, 여기저기 참견할 일이 많아서 늘 바빴다. 그래서 뛰어다닐 수밖에 없었다. 학교가 커서 우리 학년에만 26개 반이 있었고 두 개의 건물에 1층부터 5층까지 교실이 빼곡했는데 몇 번이고 오르락내리락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대여섯 끼를 먹으면서도 살이 찔 겨를이 없었다. (살은 성인 되고 앉아서 술을 마시자 찌기 시작했다.)



[울림의 몸 이야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 같은 여고생



어느 정도로 뛰어다녔느냐 하면, 우리 학교는 중학교와 붙어 있어서 고등 2개, 중등 1개의 건물이 ‘ㄷ’자 형태로 자리하고 있었는데 3학년 때 왼쪽 건물 5층에 있는 교실에서 뛰어 내려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오른쪽 건물 지하에 있는 매점에서 빵을 사서 먹고 다시 운동장을 내질러 5층 교실까지 돌아오기를 10분 안에 해결했다. 당시에는 스티커가 들어있는 포켓몬스터 빵이 유행이었다. 고등학교 전교생 삼천 명에 중학생까지 그 빵을 사기 위해 쉬는 시간마다 매점으로 몰렸다. 따라서 매점에 가자마자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기다리기까지 했다는 뜻이다. 스티커를 주머니에 찔러 넣고 빵을 입안에 욱여넣으며 다시 교실로 질주를 해서 수업종이 치면 아슬아슬하게 제자리에 앉았다. 그제야 몰래 주머니 속 스티커를 확인하는데 이미 갖고 있는 몬스터가 나오면 친구를 주거나 버렸다. 그리고 가방에서 천 원을 꺼내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주먹을 꼭 쥐었다. 쉬는 시간 종이 치면 다시 매점으로 뛰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고3이 되자 그나마 일주일에 두 시간밖에 없던 체육마저 밖에서 수업을 안 하고 대부분 자습으로 바뀌었다. 한 해 행사 중 체육대회를 제일 기다렸는데 그런 재미도 3학년이 되자 없어졌다. 그래서 쉬는 시간 매점을 향한 달리기에 더 몰두했는지도 모른다. 나중에 대학을 가보니 이제는 주 2회 체육마저 없고, 체육 교양 수업은 수강신청 경쟁이 워낙 치열했다. 몸을 움직이고 싶으면 헬스장이든, 댄스 학원이든, 요가 학원이든 돈을 내고 어딘가에 혼자 가야 했다. 캠퍼스에 운동장도 농구장도 있었지만 팀으로 할 수 있는 운동은 남자들의 전유물이었고, 마음 맞는 여자 사람 친구를 만나지도 못했다. 과 체육대회가 있긴 했지만 여학생이 워낙 적은 과였기에 내가 참여할 수 있는 종목은 팔씨름뿐이었다.

 

지금도 가끔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어다니던 그때가 그립다. 여럿이 같이 하던 발야구, 피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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