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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Jun 05. 2024

몸에 찾아온 불청객

[울림의 몸 이야기]


엄마가 일하셔서 어린 시절 나를 주로 돌봐준 사람은 할머니셨다. 할머니는 매일같이 밖에서 놀다 다쳐서 들어오는 나에게 "왈가닥"이라든가 "실수로 고추 놓고 나온 아이"라고 부르셨다. 남자로 태어났어야 하는 애가 여자로 잘못 태어났다고 할 정도로 과격하게 놀았다. 초등학교 때도 가방 놓고 온종일 놀이터나 학교 운동장에서 놀았는데 저녁마다 엄마가 '빨간약'을 발라주며 "옆집 언니처럼 안 다치고 '다녀왔습니다' 하면서 들어오면 안 되니? 어떻게 하루도 안 다치는 날이 없어"라며 꾸중을 하셨다.


다치는 경위와 부위도 다양했다. 미취학 시절에는 바퀴 달린 장난감 말을 밖에서 타다가 인도에 돌출되어 있는 철판에 턱을 찢기기도 하고 화단 울타리에서 장난치다 주저앉아서 사타구니를 다치기도 했다. 그네에서 누가 더 멀리 뛰어내리나 시합을 하다가 착지를 잘못해 기절한 적도 있고 높은 곳에 올라갔다가 떨어지며 다친 적은 셀 수도 없다. 무릎이나 팔꿈치 까지는 건 예삿일이었다. 성인이 된 지금도 턱, 발목 등에 꿰맨 흉터가 남아있다.


과격하게 노는 여자애가 나밖에 없었던 것도 아닌데 늘 '여자애가 왜 저러냐'라는 말을 들었다. 장난감도 인형보다는 장난감 칼이나 무전기, 총, 로봇 등이 더 갖고 싶었기에 스스로도 남자 같다는 말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여자친구들 중에서도 아기자기하거나 꾸미는 데 관심 있는 친구보다는 밖에서 뛰어노는 친구들과 어울렸고 자연스럽게 남자아이들과도 같이 놀았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호감이 생기는 건 남자 친구들이었고, 남자처럼 되고 싶다거나 그런 차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엄마가 사주는 치마를 군소리 없이 입었지만, 행동을 조심하거나 '여성스럽게' 보이려고 한 적은 없었다. 나는 그저 편한 대로 하고픈 대로 움직일 뿐인데 "여성스럽지 않다"라는 평가를 자꾸 들으니 나에게 '여성스러움'은 점점 부정적인 것이 되어갔다.


초등 고학년 때 학교에서 인기 있었던 여학생은 긴 파마머리를 풀거나 반묶음 하고 단정한 원피스를 즐겨 입고 눈이 크고 예쁘게 웃는 친구들이었다. 지금의 기준으로 생각해 봐도 예쁘장했던 것 같다. 그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마음속 동경의 대상은 따로 있었다. 전교 어린이 회장이었던 공부 잘하는 여자 선배, 중학생 언니가 있어서 옷을 멋지게 입고 춤을 잘 추던 여자친구, 꽤 큰 편인 나보다 키가 더 크고 운동을 더 잘하던 여자 체육부장. 내 마음속에서는 '여성스러운 여자'와 '멋진 여자'로 카테고리를 나누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어른들이 예뻐하고 남자친구들이 좋아하는 얌전한 여자아이는 나와 다른 부류라고 그때 이미 정해버렸다.






5학년 때 친구들과 주말 자유 수영을 갔다. 다들 수영을 몇 년씩 다니고 있었기에 주말에 자유수영을 가면 매점에서 사 먹을 만두 값 정도만 챙기면 충분했다. 그날도 수영을 하다가 나와서 꼬깃꼬깃 접은 천 원을 매점 카운터에 내고 고향만두를 데워 자리에 앉았다. 갑자기 친구가 내 가슴을 보면서 말했다. "너 꽤 가슴이 있구나. 말랐는데 의외네." 그때까지 나는 내 가슴이 나오고 있다는 걸 인지조차 못했기에 놀랐고, 친구들 앞에서 갑자기 가슴이 주목되니 부끄러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확연히 티가 나게 나오기 시작했고 엄마는 나를 데리고 백화점에 가서 주니어 브래지어를 사줬다. 그날 저녁 식사 중에 아빠가 "축하한다"라고 말했는데 이제 뭔가 달라진다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축하받으면서 브래지어를 입기 시작한 게 당시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을 텐데 기쁘지 않았던 건 집 밖에서 어떤 일을 당하게 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여자아이들이 더 빨리 성장한다. 초경 전까지 키나 몸집이 남자아이들보다 더 크고 힘이 더 셀 때도 많다. 고학년이 되자 키 큰 아이들 중에 하나둘 브래지어를 하고 학교에 오기 시작했는데 짓궂은 남자아이들이 그걸 가만둘 리 없었다. 수업 중에도 브래지어를 한 아이의 목덜미에서 시작해서 허리까지 등을 자신의 손가락으로 훑었다. 브래지어를 찬 등을 손으로 훑으면 중간에 덜컥 걸리는 지점이 있는데 그 순간 손을 댄 아이도, 당하고 있는 아이도 '브래지어 착용 중'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확인하게 된다. 만지는 남자아이에게는 놀림의 재미를 주는 순간이었고, 당하는 여자아이에게는 수치심을 새기는 순간이었다.


쉬는 시간에는 더 대담하게 브래지어 끈을 뒤에서 잡아당겼다가 탁 놓아서 아프게 하는 남자아이들도 있었다. 잘못한 건 남자 애들인데 우는 건 당한 여자아이였다. 선생님이 혼을 내도 놀림과 괴롭힘이 멈추지는 않았다. 그때는 성교육이랍시고 남자, 여자아이들을 다른 반으로 분리한 뒤 여자아이들을 모아놓은 반에서는 생리대를 어떻게 잘 접어서, 감싸서 버려야 하는지 연습하고, 브래지어를 잘 챙겨 입으라는 당부 등을 들었을 뿐이다. 남자아이들은 무슨 교육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괜히 어색해서 성교육 시간 이후에는 짝과 이야기도 잘 안 했다. 먼저 이차성징이 시작된 여자아이들을 놀리면 안 된다든가, 성희롱이나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배운 적은 없었다. 기분이 나쁜데 뭐가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왜 나쁜 행동인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저 가슴이 나오고 브래지어를 하면 놀림감이 된다는 걸 학습했을 뿐이다.    


우주소년단에서 학기 중 주말에 '뒤뜰 아영'이라는 이름으로 운동장에서 텐트 치고 1박을 하거나 방학 중에 캠프를 갈 때가 많았는데 밤마다 여자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있었다. 호기심 많을 나이의 아이들이 '언니도 브래지어 했냐', '생리하면 피가 난다는데 안 아프냐' 등의 질문을 던졌고 언니들이 초경 당시 상황을 자세히 묘사해서 궁금하면서도 두려워지기도 했다. 한 언니는 여름에 하얀 반바지 체육복을 입고 뛰다가 피가 흐르기 시작해서 반 아이들이 다 봤고, 너무 부끄럽고 끔찍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제발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속으로 빌었다.


6학년 여름방학에 이사를 가게 되어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네 가족과 함께 외식을 하던 날이었다. 저녁 약속을 앞두고 외출 준비를 하는 중 화장실에 갔다가 팬티에 뭐가 묻어있는 걸 발견했다. 엄마에게 말하니 '생리가 시작된 것'이라며 씻고 속옷을 갈아입으라고 하셨다. 장롱에서 생리대를 꺼내 어떻게 착용하는 건지 알려주셨다. 당시 내 옷은 엄마 취향인지 대부분 쫄바지, 레깅스 형태였다. 두툼한 생리대를 하고 무릎 위까지 오는 레깅스 쫄바지를 입고 식당으로 갔다. 더워서 땀이 차고 불편해서 자꾸 엉덩이 쪽을 만지게 됐다. 나중에 친구가 딱 붙는 바지를 입고 있어서 생리대가 다 티 났다고 알려줬다.


설상가상 아빠는 친구네 가족들에게 축하해 달라며 내 초경 사실을 알렸다. 친구 오빠도 같이 있는 자리에서 굳이 그런 말을 하다니, 화가 났다. 숨길 일도, 부끄러운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동의 없이 가족 아닌 사람들에게 알려지길 원하는 건 아니었다. 브래지어도 초경도 크게 축하를 하는 게 뭔가 깨어있는 아빠라고 여겼던 걸까. 아빠에게는 큰 변화를 겪고 있는 내 마음보다 '멋진 아빠'로 보이고 싶은 아빠의 마음이 더 중요했나 보다.


어리고, 매일 뛰어놀아서 건강했기에 월경량이 상당했다. 여름에 친척들과 다 같이 놀러 갔다가 숙소 이불을 다 적셔서 엄마랑 이모가 화장실에서 힘들게 손빨래를 한 적도 있다. 엄마와 이모에게 미안한 마음보다는 다들 가는 수영장을 나만 못 가는 게 억울했다. 옆집에 놀러 갔다가 입고 있던 청바지까지 다 젖는 느낌에 깜짝 놀라 인사도 제대로 못한 채 황급히 집에 돌아온 기억도 있다. 처음에 쓰던 생리대는 날개형이 아니어서 새는 일이 잦았다. 중, 고등학교 때부터는 요즘도 판매하는 '화이트'니 '좋은 느낌'이니 하는 날개형 생리대가 나오기 시작해서 당황스러운 일이 줄었다.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씩 입고 있는 옷에, 이불에 피가 새진 않을까 불안해하게 됐다. 한 달에 한 번씩, 일주일 동안 불쾌하고 불편하고 짜증 나고 냄새나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게 너무 싫었다.


'완전 남자애 같다'라는 말을 듣다가 갑자기 여성임이 분명한 변화들을 겪게 되니 혼란스러웠다. 이제는 '남자애처럼' 뛰어놀면 안 되는 건가? 뭐가 달라지는 건가? 왜 여자는 이렇게 불편한 일을 많이 겪어야 하지? 가슴이 커지는 것도 월경을 하는 것도, 무엇 하나 내가 원한 게 없는데 왜 내가 겪어야 하지? 가족에게 지지받는 환경이었지만 그걸로는 불쾌함을 가리기에 부족했다. 이차성징이 오면서 시작된 몸의 변화는 내게 그저 불청객일 뿐이었다.   



[울림의 몸 이야기] 몸의 변화. 6학년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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