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울림 Jun 19. 2024

낯선 땅에서 만난 전성기

[울림의 몸 이야기]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나는 살이 안 찌는 체질인 줄 알고 살았다. 고등학교 때는 하루에 5~6끼씩 먹었지만 하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뛰어다니느라 살찔 틈이 없었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술을 먹기 시작하자 체질이 바뀌었다. ‘안주발’을 너무 세워서 임계치를 넘겨 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술 배가 나오기 시작했고 몸무게 앞자리 숫자가 6으로 바뀌었고 백화점 여성복 매장에 맞는 옷이 없어졌다. 여성복을 살 수 없다니, 살찐 여자는 여성이 아니라는 뜻이냐며 분개했지만, 안 판다는데 우긴다고 옷이 나오는 건 아니었다. 그때는 인터넷 쇼핑이 지금처럼 보편화되기 전이라 큰 옷을 어디서 사야 하는지도 몰랐다. 유니섹스 브랜드에서 트레이닝복이나 면바지, 청바지를 사서 입고 다녔다.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지만, 술 먹는 즐거움이 입는 즐거움을 간단히 이겼다.

 

술을 많이 마셨다. 대학 때 별명은 술 먹고 개 된다고 ‘개세’, 쓰레기같이 산다고 ‘쓰세’였다(이름에 ‘세’가 있기 때문). 적성에 안 맞는데 점수 맞춰서 간 대학이라 전공 수업을 들으면 외계어가 난무했다. 공부에는 흥미를 잃었고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고 연애도 하고 주야장천 술을 마셨다. 3학년이 되자 동기들은 학점 관리와 취업 준비를 시작하는데 나는 뭘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기에 뒤늦은 사춘기를 겪으며 휴학을 했다. 휴학까지 하고 술만 마시자, 한 선배가 호주에 가면 농장에서 일해서 돈 벌고 영어 공부도 할 수 있는 워킹 홀리데이라는 게 있다고 알려주었다. 호주 맥주가 끝내준다며 나를 설득했다. 

 

23살, 호주로 떠났다. 홈스테이에서 지내며 3개월 동안 어학당에 다녔는데 한국에서는 여성복조차 못 입는 뚱뚱한 여성이었던 내가 거기서는 ‘slim(날씬하고)’, ‘small(몸집이 작다)’이라는 말을 들었다. 돈을 아끼면서 3개월 동안 영어 공부만 했더니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가져온 옷이 안 맞아서 옷을 사야 할 정도가 되었다. 가끔 호스트 패밀리나 반 친구들과 술을 마시기도 했지만 한국에서 즐겨 먹던 감자탕, 족발 같은 안주를  먹지 않으니 살찔 틈이 없었다.

 

어학 코스를 마치고 영어도 배우고 여행도 할 겸 '자연보호 자원 활동(CVA, Conservation Volunteers Australia)'을 시작했다. 숙박비 정도만 내면 국립공원 등지로 가서 자원 활동을 하면서 여행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데 세계 각지에서 호주에 여행 온 젊은이들이 주로 참가하기에 친구를 많이 사귈 수 있었다. 첫 프로젝트는 공원 나무 주변에 친환경 비료 주기(멀칭, mulching)였다. 비료를 삽으로 퍼서 외발수레에 싣고 나무 근처까지 끌고 가서 쏟은 후 갈고리 같은 도구로 고르게 펴주면 되는 일이었다. 팀원들은 국적이 다양한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었는데 백인 여성들은 삽질도, 외발 수레 끄는 일도 남자들과 똑같이 했다.

 

힘이 약한 편은 아니라고 자부했기에 자신 있게 일을 시작했지만 두 시간도 되지 않아 대(大) 자로 뻗고 말았다. 수레가 너무 무거워 팔이 덜덜 떨렸다. 십 대 때까지 몸을 자유자재로 쓰던 나였지만 몇 년 동안 앉아서 술만 마셨더니 저질 체력이 된 것이었다. 처음 며칠은 몸살처럼 끙끙 앓았다. 여성복을 못 사 입을 때보다 더 자존심이 상했다. 남자들은 하는 일인데, 같은 또래의 서양 여성들은 하는 일인데, 나는 못하다니. 크는 내내 몸 쓰는 데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삽질도 제대로 못하는 내 모습에 크게 실망했다.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자원 활동이기 때문에 할당량이라든지 업무 압박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정해진 오전 간식 시간, 점심시간 외에는 농땡이 피우지 않고 온 힘을 다해서 일을 했다. 일을 마친 오후, 씻고 빨래를 하는 등의 정비를 한 후에는 숙소 주변을 산책하며 몸을 풀었다. 손에 굳은살이 생기기 시작하고 몸에 근육이 붙는 게 점점 느껴졌다. 5주가 지난 뒤 일반 관광객에게 공개되지 않은 깊은 산속으로 나무 심기 자원 활동을 갔을 때, 달라진 내 모습을 보고 팀원들이 “You,  little machine!”이라며 감탄했다.



[울림의 몸 이야기] 낯선 땅에서 만난 전성기




내 몸은 마침내 전성기를 맞이했다. 술과 안주로 불어났던 군살은 다 빠졌고 육체노동을 통해 근육이 강해졌다. 자원 활동이 끝난 후부터는 농장에 가서 일을 하다 돈이 모이면 여행하기를 반복했다. 호주 일주가 목표였지만 느긋하게 여행하다 보니 1년 동안 동해안과 내륙의 아웃백(호주 사막)까지 반 바퀴를 돌았다. 바나나, 포도, 토마토, 가지, 살구, 아몬드 등 십여 가지 작물을 재배하고 포장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었고, 여행할 때는 주로 숲 트레킹을 하거나 산행을 하거나 수영을 했다. 태평양에서 1인용 카약을 타고 하루 종일 노를 저어 떠다니기도 했고, 열대우림 속을 걷다가 계곡이 나오면 훌렁훌렁 옷을 벗고 수영을 하고, 다시 젖은 수영복 위에 옷을 대충 걸친 채 산행을 마저 하기도 했다. 가난한 워홀러였던 내가 단화를 신고 앞장서서 산을 오를 때 등산 장비를 고루 갖춘 돈 많은 여행자들이 한참 뒤처져 따라왔다.

 

에너지가 넘치는 20대, 의도하는 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전성기였다. 보기에 예쁜 몸매, 타인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몸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활동을 할 수 있는 건강과 힘을 가진 몸이었다. 몸을 써서 돈을 벌고 몸을 써서 세상을 만나고 사람들을 만났다. 영혼과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되는 충만함을 매일 느꼈다. 살아있음을 매 순간 느꼈다.

 

얼마 전 호주 사진을 보며 추억에 빠져 SNS에 “리즈 시절!”이라는 문구와 함께 반바지를 입고 해변에서 V를 하고 웃고 있는 내 사진을 올렸는데 지인이 “다리는 리즈가 아닌데”라고 댓글을 남겼다. 나는 몸에 비해 다리가 굵은 편이다. 군살이 없을 때도 다리는 늘 굵었다. 내 몸이 최상의 컨디션이었던 그때를 누군가는 다리가 굵다는 이유로 전성기가 아니라고 평한다. 그 댓글을 보며, 남 보기에 좋은 몸이 아닌 자유롭고 활력이 넘치는 몸으로 전성기를 기억하는 스스로가 기특했다. 남들 보기에 예쁘고 멋진 몸을 위해 젊은 날을 보내지 않았음에 안도했다.

 

내 굵은 다리는 태평양 대산호초 위를 떠다니며 수영을 하게 해 주었고, 해변을 말 타고 달리게 해 주었으며, 수억 년 전 형성된 암반 위로 등반을 하게 해 주었고, 아름다운 산 정상의 경치를 감상하게 해 주었다. 농장에서 햇볕에 그을려 새카매진, 다리가 굵고 가슴이 작고 턱이 ‘두 턱’이고 뒤통수가 납작하고 코가 낮은 20대 초반의 내 몸은 누가 뭐래도 전성기였다.   

이전 08화 혈기 왕성 스무 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