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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Jun 12. 2024

혈기 왕성 스무 살

[울림의 몸 이야기]


갓 스무 살이 된 한 겨울 1월의 어느 날, 반소매 티셔츠에 얇은 후드 점퍼를 걸친 채 88 체육관 앞에서 떨면서 줄을 서 있었다. 주변에는 아예 반소매 티셔츠만 입고 잔뜩 소름이 돋은 맨 팔을 드러낸 채 입장을 기다리는 젊은이들도 많았다. 화려하게 컴백한 서태지의 밤샘 콘서트 입장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8시간 동안 서서 액세서리를 파는 아르바이트를 한 후 김밥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고 바로 콘서트장으로 온 참이었다. 춥지만 춥지 않았다. 코로 들어오는 공기는 차가웠지만 입으로 내뿜는 숨은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고3, 수능을 두어 달 앞두고 나의 우상, 그가 돌아왔다. 집 앞에서 열리는 컴백쇼에 직접 찾아간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는 나름 고3이라고 자제하는 마음에 집에서 TV로 컴백 무대를 지켜봤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서태지 컴백쇼를 한 시간이나 보면서 질질 짠다고 아빠는 화를 냈고 태어나 처음으로 맞았던 것 같다. 잘 기억이 안 나는 이유는 혼나면서도 눈과 귀는 TV의 내 님에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엔딩 자막이 다 올라간 뒤 시선을 아빠에게 돌리고 소리쳤다. “대학 가서 보면 될 거 아냐!”


수능이 끝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이제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었다. 내가 번 돈으로 꿈에도 그리던 내 님, 서태지 콘서트 표를 샀다. 아무 간섭이 없었던 걸 보면 그때 이미 특차로 대학 합격 소식을 받은 후였던 것 같다. 몸도 마음도 거리낄 것이 없었다.


두근두근 떨리는 가슴으로 입장하던 순간이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같이 서태지를 좋아하던 친구들은 아직 대입이 안 끝나서 함께 오지 못했다. 혼자 공연 보는 건 이미 중학교 때부터 하던 일이라 그리 어색하지는 않았지만, 이번엔 밤샘 공연이라 중간에 좀 심심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물론 기우였다. 심심할 틈 따위 없었다. 밤샘 콘서트를 혼자 채우긴 힘드니 오프닝과 중간에 게스트 뮤지션들이 공연을 했다. 피아, 디아블로 같은 인디밴드와 YG패밀리, CB Mass, 45 RPM 등의 힙합 뮤지션들이 흥을 돋웠다.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긴 했지만 매니아들에게는 쉬어가는 시간이었다. 대장이 나오면 발이 땅에 닿아있는 시간이 드물 정도로 방방 뛰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서태지 팬들은 서태지를 대장, 팬들을 매니아라고 불렀다. 솔로 컴백곡이었던 ‘울트라 맨이야'에서 따온 말이다. 대장이 “너희들은 ‘울트라 매니아'야”라고 하는 순간 우리는 매니아들이 되었다.)


소리를 지르고, 헤드뱅잉을 하고, 이리저리 힘껏 몸을 부딪히며 슬램을 했다. 건장한 남성들이랑 슬램을 해도 쉽게 나가떨어지지 않았다. 스무 살의 나는 무적이었다. 장시간 공연 중간에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어쩌나, 입장 전에 걱정을 했는데 그 역시 기우였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입장 때 나눠 준 생수는 이미 동난 지 오래였고 요의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공연 중간 휴식 시간에 간식이 제공됐다. 갑자기 공연장에 불이 켜지고 날뛰던 매니아들이 전부 바닥에 앉아 말없이 배급되는 빵과 우유를 서로서로 건넸다. 혼자 갔지만 같은 마음인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든든했다. 일행이 있는 사람들도 별다른 잡담을 하지 않았다. 다들 에너지를 아끼며 빵을 먹을 뿐이었다. 그 빵의 맛도 생생하다. 다 함께 열광하다가 다 함께 앉아 빵을 먹다니, 신기한 체험이었다.


다시 조명이 꺼지고 무대에 오른 대장은 먹었으면 뛰라고 말했고 모두는 금세 뜨겁게 환호하며 몸을 불살랐다.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느꼈던, 몸을 극한으로 쓰는 자유로움을 스무 살 서태지 공연장에서 다시 느꼈다. 그곳에서는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아무리 소리 내 울어도 괜찮았다. 아무리 높이 뛰어도 아무리 힘껏 옆 사람에게 부딪쳐도 괜찮았다. 커다란 손이 공연장의 나를 뚝 떼어 광화문 사거리에 옮겨놓았으면 딱 ‘미친년’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발광을 하고 있었지만, 그 안에선 모두가 그랬기에 내 발광은 보이지도 않았다. 내 님이 내 앞에, 손톱만큼 작게 보이지만 실물로 존재하고 있고, 그의 음악이 고막이 터지도록 울려 퍼지고, 그리고 그걸 온몸으로 느끼는 내가 있었다. 내가 뛰다 쓰러지면 주변의 매니아가 손을 내밀어 번쩍 일으켜주고는 다시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나 역시 누가 넘어지면 알아차릴 새도 없이 일으켜주고 다시 헤드뱅잉에 몰두했다. 대장과 나만 존재하는 동시에, 수많은 매니아들과 함께 존재했다.


드디어 공연이 끝났다. 모든 것을 다 불살랐다. 하얗게 지새웠다. 기나긴 줄을 기다려 화장실에 가서야 깨달았다. 아 맞다, 나 생리 중이었지. 집에 가서 뻗어 자고 일어나니 가르마 방향이 바뀌어 있었다. 밤새 헤드뱅잉을 한 결과물이었다.


그러고 보니 열흘 동안 서너 시간씩만 자면서 일한 여름 농활도, 한여름 2박 3일 지리산 종주도 전부 생리 중에 했다. PMS가 뭐예요, 생리통이 먹는 거예요? 하던 시절. 김동률, 이소은이 부른 ‘욕심쟁이’에서 “한 달에 한 번쯤은 모른 척 넘어가” 달라는데, 그게 왜 그런 건지 도통 이해가 안 되던 시절이다. 말 그대로 혈기 왕성 스무 살이었다.   




[울림의 몸 이야기] 혈기 왕성 스무 살


*'마니아'가 맞는 표기이지만 '울트라맨이야'의 중의적 의미를 살리기 위해 '매니아'로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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